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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하갈과 이스라멜 이야기(창16:1~16, 21:8~21)

by 비앤피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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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아브람 아내 사래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 하갈이라
16:2사래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16:3아브람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으로 준 때는 아브람 가나안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16:4아브람 하갈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16:5사래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16:6아브람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16:7여호와의 사자 광야 물 곁 곧 술 길  곁에서 그를 만나
16:8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16:9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 복종하라
16:10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6:11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6:12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6:13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6:14이러므로 그 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6:15하갈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16하갈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21:8아이가 자라매 을 떼고 이삭 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21: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21: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21:11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21: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21:13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21: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21:15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21:16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21:17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21:18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21:19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1:20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21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성경본문 새기기

- 아브람과 사래, 하갈 세 인물이 이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생각을 먼저 하였고, 어떤 자기 반성을 했으리라고 생각하나요?

그림감상하기

카미유 코로, "광야의 하갈", 1835, 캔버스에 유채, 41.1x32cm, 프랑스 파리 G. Renand 컬렉션

- 이 그림의 구도와 색채에서 성경 본문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미술작품에서 성경 본문 읽기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질가요? 창세기는 약속의 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처음 부르셨을 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후손과 땅입니다.(창12:2, 7, 13:14~17)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게 없습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래는 여전히 불임 상태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1:30에서 이미 언급되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불임은 씨족의 미래가 걸린 치명적임 흠입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씨받이를 두도록 법으로 명시하였습니다. 가령, 주전 22세기의 메소포타미아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에서는 이런 경우를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제5조] 만일 종이 (조건적인) 자유민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을 경우, 종은 그 아들을 주인에게 주어야 한다. 주인을 섬겨야 하는 그 아들은 아버지 재산의 반을... 자유민 어머니를 둔 그 밖의 자식들은 임금의 허락없이 종살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인용, 채홍식 <고대 근동 법전>, 40페이지)

사래는 아마도 이런 고대 사회의 관습에 따라 아브람에게 이집트에서 사온 자신의 몸종 하갈을 씨받이로 들이도록 제안한 듯합니다. 창세기에서 하갈의 이야기는 창세기 16장과 21장에서 두 번 나옵니다. 처음에는 사래의 계획대로 되는 듯했습니다. 아브람과 잠자리를 한 하갈이 이내 임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래는 당연히 하갈이 여주인을 대놓고("눈앞에서") 업신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씨받이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성경에서는 직접 찾아 볼 수 없지만, 고대 근동의 성문법으로 가장 유명한 고대 바벨론 제국의 함무라비 법전에서 이런 경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정을 제시합니다.

[제146조] 만일 한 시민이 나디투-여사제와 혼인했는데 그 부인이 남편에게 여종을 주어 그 여종이 아이를 낳고는 자신이 부인과 같은 지위를 갖겠다고 할 경우, 부인은 그 여종이 아이를 낳아 주었기 때문에 여종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인은 여종을 노예시장에서 사온 종처럼 부려도 된다.(인용, 채홍식 <고대 근동 법전>, 102페이지)

이런 관점에서 사래는 하갈을 팔아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분을 삭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이 상황을 두고 푸념하기에 이릅니다. 더군다나 상황이 여기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던 아브람도 사래의 푸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람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보시오. 당신 여종은 당신 수중에 있으니, 당신 보기에 좋을 대로 그 여종을 대하시오(5절 일부분, 개인 번역)

남편의 이 말에 사래는 하갈을 학대한다. 결국 사래의 조급한 계획은 돌이키기 어려운 가정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만 겁니다. 이에 하갈은 여주인을 피해 광야의 한 샘 가로 도망칩니다. 거기서 하갈은 야훼의 사자(말르아크 야훼(히))를 만나는데, 16장 나머지 부분은 세 가지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하갈이 임신한 아들의 이름입니다.

야훼의 사자는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의 "이쉬마엘"로 지으라고 일러주는데(11절), 하나님께서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해설을 붙여줍니다. 둘째 이름은 하갈이 만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엘 로이" 곧 "나를 보시는(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13절) 더불어 셋째로 하갈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그 샘의 기원론을 들을 수 있는데, 앞선 구절의 이름과 연관된 "브에르 라하이 로이", 곧 "나를 보시는(살피시는) 분, 살아계신 분의 샘"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관습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해결하려 했던 사래와 아브람의 계획에서 하갈은 희생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이 이 희생양에게도 가 있으심을 봅니다. 마치 독자를 향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합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답시고, 약한 사람들, 연약한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버리며,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을 보고 본받으라고 소리 없이 말해 주는 듯합니다.(사42:1~4)

21장에 가면 하갈을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이 이어집니다. 사실 이야기의 비슷한 구성이나 사용된 용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어진 이야기라기보다는 같은 소재에 대한 독자적 전승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그 사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이름이 바뀐 두 부부에게 귀한 아들 이삭을 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친자식이 태어난 마당에 씨받이의 아들 이스라멜은 어떤 처지일까요? 부담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위험을 안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당장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독촉합니다.(10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아이 이스마엘을 향한 은총을 약속하십니다. 비록 관습의 희생양이지만, 민족을 이루도록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13절)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최소한의 양식을 주어 내보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좋아 내보낸 것이지 사실상 내쫓은 겁니다. 실제로 광야로 나간 하갈과 이스마엘은 이내 마실 물이 떨어져 죽음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한 아브라함과 사라는 관습의 희생양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은 이 희생양을 챙기십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눈앞에 두고 소리 내어 우는 하갈에게 이번에도 하나님의 사자(말르아크 엘로힘(히))가 하갈을 위로하고, 아브라함에게 했던 이스마엘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며, 샘물로 이끌어줍니다.(17~19절) 본문은 이스마엘이 "활 쏘는 자"가 되어 결혼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앞서 감상한 장 바리스트 카미유 코로(1796~1875)의 그림 "광야의 하갈"은 21장의 장면을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 코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풍경화가입니다. 생전에 코로의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모호한 표현을 즐겼는데, 이런 특징을 모방한 위작이 다른 어느 화가들보다 많이 양산되었습니다. 사후의 그의 명성은 인상파(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조, 소재의 일상성, 빛과 색의 조화, 대상과 면의 구성 실험, 세잔,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등) 화가들에게 가려졌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은 새로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린 이 그림은 특히 15~16절을 담고 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광야의 풍경과 하갈이 있는 곳의 그림자가 인상 깊은 대조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그림자는 하갈을 어둡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뙤약볕을 가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아들을 두고 슬픔과 고통에 절규하는 하갈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그린 대부분의 그림에 천사들이 크게 등장하는 데 비해 이 그림에서는 풍경과 하갈, 이스마엘이 앞에 있고 천사는 뒤편에 작게 그리고 있어서 하갈의 고독감이 더 잘 표현되었습니다. 그만큼 그림자로 표현된 하나님의 세심한 보살피심도 돋보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관습에 따르며, 약자를 무시하는 아브라함 부부와 그들의 행동 때문에 희생양이 된 하갈 모자를 세심하게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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