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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야곱과 에서의 만남(창33:1~17)

by 비앤피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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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 요셉은 뒤에 두고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야곱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3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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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 두 형체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보나요?

그림 감상하기

귀스타프 도레, "야곱과 에서의 만남", 1866, English Bible 삽화

- 도레의 그림에서 본문의 어떤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나요?

미술작품에서 성경 본문 읽기

야곱 이야기의 절저이자 결말은 형 에서와 만나는 장면에서 이루어집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그 속임수로 하나님의 약속을 가로채려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과 맞았지만, 어리석고 성급한 선택은 결국 할아버지 아브라함 때와 마찬가지로 부작용을 낳고 말았습니다.

어리석고 성급했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냈듯, 야곱은 형 에서와의 관계 단절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리석고 성급한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가르쳐 가며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약속의 이야기를 이어 가신 것은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곧 앞선 32장에서 야곱의 치열한 내면적 고민과 갈등을 씨름으로 형상화하여, 무릎 꿇는 "복"(베라카)의 과녜, 경외와 순종 대 인정의  관계로 그간 야곱이 아등바등 가지고 살았던 욕심의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답답함 대신 사죄의 마음만 가지고 형을 만나러 갑니다. 야곱의 이런 마음은 본문 3절에서 야곱이 일행의 맨 앞에 나서서 형을 향해 입곱 번 절하는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사백 명의 용사를 데리고 오는 형에게 일행보다 앞서 나아간다는 것은 죽을 각오까지 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황은 의외로 쉽게 해결됩니다. 야곱에게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에서가 적어도 잘잘못이라도 따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에서는 야곱을 향해 달려와서 야곱을 품에 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에서와 야곱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간 긴 세얼의 한과 송구함을 담아 울기 시작합니다. 야곱이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 용서의 마음을 가득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 감격스러운 장면은 19세기 프랑스 출신의 귀스타프 도레(1832~1883)가 그린 그림이 유명합니다. 도레는 당대 매우 성공한 삽화가요 판화가이자 화가, 조각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생전에 100,000장 정도의 스케치를 했는데, 이는 하루에 평균 여섯 장 이상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살피는 이 그림은 도레가 삽화를 그려서 1866년에 출간된 영어성경에 들어간 그림입니다. 이 성경에는 200점 이상의 삽화가 들어 있습니다. 도레는 이 본문의 4절을 소재로 삽화를 그렸습니다. 4절 이전의 긴장과 이후의 감격스러움이 전환하는 장면을 도레는 매우 잘 포착했습니다. 여기저기 솟아 있는 창은 자칫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었을 본문 이전의 상황을 드러내 준다면, 주위 인물들의 담담하고 평온한 분위기는 이후 가족상봉의 기쁨과 감격을 예고해 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레의 그림에서도 보듯 에서의 용서는 어떻게 가능했었던가요? 야곱의 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까지 두 번 하나님과 직접 맞닥뜨렸습니다. 이 두 번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한자락의 욕심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곧 야곱이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그 순간 이미 주위의 모든 세상은 변하였습니다. 설사 에서가 아직도 남은 감정의 앙금을 가지고 야곱에서 나왔더라도, 이렇게 달라진 야곱의 모습은 에서의 모든 감정을 눈 녹이듯 녹였을 것입니다. 그 바탕에서 하나님과 만난 야곱의 경험이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위의 세상을 변하게 하는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곧 내가 변하면 세상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세상이, 다른 이들이 내가 바라는 대로 변하기를 기다린다면 결코 변화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변하는 비결은 야곱이 그러했듯,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우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신의 교만함을 겸허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는 잘못할리 없다는 생각은 우리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모든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결과를 빚고 말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가 얼싸안고 있는 도레의 그림에서 아직도 교만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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