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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유다와 다말(창38:1~30)

by 비앤피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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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 오난이라 하고
5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 다말이더라
7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12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 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그가 그 과부 의복을 벗고 너울 얼굴을 가리고 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 베레스라 불렀고
30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 세라라 불렀더라
(창38:1~30)

성경 본문 새기기

- 이 낯선 이야기가 왜 요셉의 이야기 한 가운데에 들어 있다고 보나요?

그림 감상하기

마르크 샤갈, "유다와 다말", 1960, 종이에 석판화, 52.5x38cm, 프랑스 니스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미술관

- 그림과 성경 본문을 다시 견주어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보세요.

미술작품에서 성경 본문 읽기

요셉의  이야기가 창세기 37장에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37장은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는 장면에서 끝맺습니다. 독자들은 당연히 이집트로 끌려간 요셉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이어지는 장에서 완전히 새롭고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삽입됩니다.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는 한 장 건너 뛰어 39장에서 계속됩니다. 이 이야기가 왜 요셉의 이야기 사이에 끼어들어 있을까요? 더군다나 내용 자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아들 유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다가 가나안인이었던 수아라는 사람의 딸과 결혼한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건은 가나안 사람과 결혼을 금지한 아브라함의 뜻과 반대됩니다.(창24:3~4)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라면 왜 유다가 이런 일을 했을까,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유다 부부는 엘(에르)와 오난과 셀라, 아들 셋을 낳습니다. 엘(에르)이 장성해서 다말이라는 여성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가나안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엘(에르)와 오난에 대한 평가는 혹독합니다. 한 마디로 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하다는 겁니다. 엘(에르)은 이내 죽습니다. 당시 법에 따라 다말은 엘(에르)의 동생 오난과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오난은 형수와 낳은 아이가 결국 자기 아이가 되지 않을 것을 내바도고는 아이 갖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다 오난도 죽습니다. 졸지에 두 남자의 과부가 된 다말에게 남은 선택은 유다의 셋째 아들인 셀라와 결혼하는 일이지만, 그러기에 셀라는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유다는 다말을 일단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세월이 지난 뒤 반유목민이었던 유다는 양털 깎는 일을 위해 다말의 친정 근처로 오게 됩니다. 그 사이 유다의 아내도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여전히 과부의 복장을 하고 있었던 다말은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는 너울을 씁니다. 그리고는 잘 알아보지 못하게 몸을 가리고 샘이 둘 있었던(에나임(히)) 성문 사이에 앉습니다. 유다는 이런 다말의 모습을 보고 직업여성(조나(히))으로 여기고는 관계를 맺자고 합니다. 화대로 염소 새끼를 약속하지만, 다말은 신분을 밝혀줄 수 있는 담보로 유다가 몸에 지니고 있던 줄 달린 도장과 지팡이를 요구합니다. 결국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의 아이를 갖습니다. 매우 당혹스러운 장면입니다. 아무리 대를 잇겠다는 의지라지만 다말의 행동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직업여성을 찾은 유다의 행동입니다. 유다는 결국 성욕의 해소를 위해 직업여성을을 찾은 인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본문을 읽어나가다 보면 더 이율배반적인 유다의 모습을 봅니다. 화대를 주고 담보물을 찾기 위해 염소 새끼를 다른 이를 통해 보내지만, 21절에 따르면 유다는 정작 직업여성(조나)이 아니라, 신전 여사제(크데샤(히))를 찾으라고 합니다. "크데샤"는 신전에서 제의의 일환으로 제사 참여자와 성행위를 하던 가나안의 여사제를 말합니다. "조나"를 찾아야 할 데서 "크데샤"를 찾으니 있을리 만무합니다. 유다는 처음부터 자신이 만난 "조나"를 찾을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유다가 크데샤를 찾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단순한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찾았던 직업여성이 아니라, 크데샤를 자신의 행위를 덮으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유다를 정당화시켜 준 인물은 다름 아닌 다말이라는 점입니다. 다말의 임신이 자신에게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모른 유다는 임신한 다말을 화형시키려 합니다.(레21:9, 신22:24, 요8:4~5) 하지만 다말이 시아버지에게서 받은 담보물을 내놓자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38장 26절)

그리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다말은 유다의 자손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의 잘못을 덮어주고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자손까지 이어준 귀한 존재가 된 겁니다.

샤갈이 1960년에 이 본문을 그린 그림과 샤갈의 삶을 보면, 샤갈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 샤갈은 재혼한 상태였습니다. 1944년 그토록 절대적 존재감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아내 벨라가 병으로 죽고 나서, 인생의 큰 축을 잃은 샤갈은 벨라에 이어 자신의 새로운 뮤즈가 되어줄 사람이 절실했습니다. 벨라가 죽은 뒤 샤갈은 버지니아라는 영국 여성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여 아들 다비드까지 낳았지만, 버지니아와는 결국 파경으로 치닫고 맙니다. 버지니아와 가슴시린 파경을 경험한 샤갈은 1952년 그해 자신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계 유대인이었던 발렌티나 브로드스키를 만납니다. 그리고 발렌티나에게서 샤갈은 드디어 벨라의 자리를 채울 새로운 뮤즈를 발견합니다. 샤갈은 발렌티나를 바바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이 둘은 그해 결혼을 합니다. 몇 년 뒤 샤갈은 바바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마르크 샤갈, "바바의 초상", 1955, 캔버스에 유채, 95x73cm, 개인 소장

우리는 앞서 샤갈이 리브가를 벨라로 그려서 본문에 자신의 존재를 이입하였음을 보았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봅니다. 너울을 쓴 다말은 현대식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샤갈이 리브가를 그릴 때와 같은 생각으로 그렸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바바의 초상과 똑같은 구도로 그렸습니다. 바바오 같은 자세 같은 자리에 샤갈은 다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샤갈 자신은 유다로 그립니다. 바뀐 점이라면 바바 옆에 꽃이 놓여 있는 반면에 다말에게는 너울이 있습니다. 샤갈의 인생을 놓고 보자면, 바바에게 바친 꽃은 결국 첫 뮤즈 벨라를 대신한다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꽃을 다말의 너울로 이어간 것은 바바에 대한 죄의식은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뮤즈 벨라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고, 버지니아와의 파경에서 오는 상실감의 대리만족이 바바였으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유다에게 다말이 자신의 잘못을 덮어주고 자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존재였다면, 샤갈에게 바바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을 언급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왜 요셉 이야기 사이에 끼워져 있을까요? 물론 이 유다의 자손에게서 다윗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 자체의 정당성은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자리일까요? 이 질문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요셉과 유다가 제각각 차지하는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분열 이후 북 왕국의 주된 세력이었던 지파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당연히 남 왕국을 뜻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긍정적으로 그려진 요셉의 이야기와 부정적으로 그려진 유다의 이야기는 새롭습니다. 결국 늘 옳다고, 의롭다고 여기며 북 왕국을 늘 싸잡아 매도하던 남 유다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샤갈은 바바에 대한 모든 마음,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며 반성하는 뜻으로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에 자신을 대입했던 것을 아닐까요? 샤갈의 이 그림에서, 그리고 본문 이야기에서 우리 스스로를 들어다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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