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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창39:1~23)

by 비앤피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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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그 후에 그의 주인 아내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39:1~23)

성경 본문 새기기

- 본문에서 되풀이 되는 말을 찾아보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그림 감상하기

렘브란트 반 레인, "요셉을 고발하는 보디발의 아내", 1655, 캔버스에 유채, 98x106cm, 미국 워신턴 National Gallery of Art

-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에 주목하여 그림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미술작품에서 성경 본문 읽기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가 이제 본격적으로 이어집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신하 보디발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포티파르"(히)라는 이름은 뒤에서 "포티 페라"(히)라는 이름으로 달리 소개되는데(창41:45~50, 46:20) 이 이름은 전형적인 이집트 이름으로 "레(태양신,Re)가 주신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셉의 특별한 외모에서 비롯합니다. 37장에서 요셉의 특별함이 아버지의 편애와 특별한 꿈구기였다면, 39장에서도 요셉의 특별함은 조금 모습을 달리하여 이어지는 셈입니다. 외모가 특별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는 끊임없이 요셉을 유혹하지만, 요셉은 단호히 이를 거부합니다.

끝내 요셉은 앙심을 품은 보디발 아내의 덫에 걸려들고 맙니다. 곧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거부하다 도망치는 중에 겉옷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도리어 자신이 성폭행을 시도하였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보디발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매우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는 독자 어느 누구도 요셉의 신세와 운명을 두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 앞뒤에 강조되어 등장하는 두 표현에 있습니다. 곧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다는 말과 그래서 요셉은 어딜 가든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2~3절에서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처음 갔을 때도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 노예 신세였지만, 보디발의 눈에 들어 집안일을 총괄하는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디발의 아내가 놓은 덫에 걸려 결국 요셉은 감옥에 갇히지만 23절에서도 이 말이 되풀이됩니다. 그리하여 감옥에서는 간수장의 눈에 들어 감옥의 사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요셉의 이야기는 눈으로 보기에 거듭 억울하고 좌절된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기에 어떤 상황이건 이겨나가는 요셉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매우 뚜렷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떤 장면을 그리는 것이 적절할까요? 대부분의 화가들은 12절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강하게 유혹을 하고 요셉이 그 유혹을 뿌리치며 뛰쳐나가는 장면을 그립니다. 더욱이 이런 그림 대부분은 매우 선정적입니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누드화는 역사화에서만 허용되었던 분위기가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곧 화가들은 성경의 이 극적인 장면을 통해서 누드화를 합법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로 꼽을 수 있는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의 그림을 득특합니다. 부유함과 명성을 누렸던 젊은 시절과 파산에 이은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던 노년을 모두 경험한 렘브란트는 다른 어느 화가보다도 자신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성찰이 깊었다는 말도 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렘브란트의 고뇌와 성찰은 성경을 그리면서, 그 답을 찾으려는 듯 많은 의미를 새길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렘브란트에게 성경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영원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파이퍼, <위대한 전통>, 424) 특히 카라바조의 영향으로 보이는 키아로스쿠로도 여기에 한몫을 합니다.

렘브란트는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이야기에서도 여느 화가와 달리 12절이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에게 요셉에 대해 거짓말하는 장면을 포착해서 그렸습니다. 렘브란트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인 듯 본문을 형상화했습니다. 침대에 걸터앉은 보디발의 아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입술에 힘을 주고 남편에게 요셉에 대해 거짓말을 합니다. 침대 모서리에는 요셉의 것으로 보이는 빨간 겉옷이 걸려 있습니다. 보디발은 놀라운 눈으로 아내와 요셉을 번갈아 보며, 왼손은 허리를 짚어서 분노에 찬 심정을 드러냅니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요셉의 묘사입니다. 미소년인 요셉은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어떤 말도 소용없음을 벌써 깨달은 듯합니다. 미간에는 근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체념하거나 절망하는 표정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말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안타깝게 보는 듯합니다. 사실 노예로서 요셉이 처한 이 상황이 남을 걱정할 처지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림을 감상하는 이에게 요셉의 모습은 평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렘브란트는 앞서 말한 대로 2~3절과 23절에서 되풀이되는 야훼의 임재와 그에 따른 요셉의 형통함을 요셉의 표정에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렘브란트 반 레인, "자화상", 1665, 캔버스에 유채, 111x85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인생살이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런 인생의 질곡을 이겨내는 비결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또 그분과 동행하면서 모든 고난을 긍정적으로 이겨낸 요셉의 저 표정에 담겨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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