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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하 8장~10장 _다윗의 왕도

by 비앤피 202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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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다윗 에돔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삼하8:14~15)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반,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5:5).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으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다윗의 왕도는 이스라엘을 살기 좋은 나라 로 이루었고, 지도자 빈곤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큰 도전이 됩니다.

다윗의 영토확장

살기 좋은 나라는 우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제 관계에서 평화 보존 정책이 필요합니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힘이 우선됩니다. 다윗은 먼저 내정에 힘을 써 나라에 안정을 정착시킨 후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정책을 제국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영토 확장을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보았습니다.

1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BC 2000년 경 약속하신 영토의 경계는 1000년 후 다윗왕의 정복 작전을 통해서 확보되었습니다. 당시 근동은 팔레스타인 서남쪽의 애굽과 북쪽의 앗수르가 강국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 안에서는 줄곧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군소 국가들의 지역 헤게모니 쟁탈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5장에서 다윗이 블레셋과의 독립 전쟁에서 승^한 사실을 살펴보았지만 블레셋 외에도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원수들은 롯의 후손 모압(민 25:1-3, 삿 3:11-30, 삼상 14:47), 소바왕 하닷에셀, 에서의 후손 에돔(왕하 8:20, 렘 49:7-22, 겔 25:12) 등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군사 위협을 없앤 후 주종 관계를 위해 두 가지 정책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주둔군을 두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피정복 국가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국의 군사력 유지와 행정을 위한 경비는 대부분 조공으로 충당되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평화는 국토의 안전 보장 없이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국방력과 외교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다윗은 당시 초강대국 애굽과 앗수르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완충 지대를 두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다윗의 제위 기간 동안 그토록 괴롭히던 블레셋의 침략과 같은 안보 위협에 시달리지 않고 늘 편히 살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의 정복 기록을 남기면서 두 가지 면을 강조합니다. 첫째,다윗의 승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6다윗 다메섹 아람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14다윗 에돔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6,14)

둘째,다윗이 전리품과 주변 국가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먼저 하나님께 바쳤다는 사실입니다.

10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아람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삼하8:10~12)

사울왕은 승전할 때 먼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 위해서 승전비를 세우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삼상 15:12). 전리품도 자신을 위해 남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여기며 (7:9~11) 싸웠습니다. 승리했을 때도 자기 도취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썼습니다.

메시아의 승리의 시

다윗이 영토 확보의 전쟁을 하는 동안에 남긴 시로는 시편 2편, 20편, 21편, 60편, 110편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 속에는 다윗의 신앙이 샛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는 병거나 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시 20:7).

특히 ‘메시아적 시'라 일컫는 시편 2편과 110편은 그 신학적 중요성에 비추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의 자기 확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사단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시는 메시야 시대까지 영감을 받아 예언하고 있습니다.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2:1~2, 7~8)

시편 2편은 기독론적으로 가장 중요한시 가운데 하나로, 그 주제는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의 주권과 승리입니다. 그 내용은 세상 이방 나라들의 대적함(1~3절), 하나님의 비웃음과 분노(4~6절), 하나님의 선포(7~9절), 하나님께서 세상 군왕을 부르심(10~12절) - 4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메시야는 자기 백성의 원수들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행 4:25~28, 13:33 참조). 기름부음 받은 왕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가 있을 뿐입니다. 그분은 오직 정복자일 뿐입니다. 또한 우리 크외스천들은 모두 ‘왕 같은제사장'(벧전 2:9)이며, 지상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로서 시대악과 내 속에 거하는 죄의 세력, 사단의 권세와싸울 때 항상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와 공의의 정치

살기 좋은 나라는 부정 부패가 없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으며, 혹시 있더라도 그 억울함을 호소할 때 반드시 정의롭게 해결되는 사회일 것입니다.

15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삼하8:15)

이 짧은 문장으로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의 왕도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 백성은 이 말씀을 되새기며 마음속에 울분과 부러움의 눈물이 함께 치솟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얼마나 안타깝게 다윗 같은 정치 지도자, 신뢰할수 있는 정부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사회 정의 실현은 정치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필연적인 사회 구조의 기초와 골격이 된다는 점에 그 특수성이 있습니다. 다윗이 공의로 정치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속성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는 한, 하나님의 사람은 공의롭게 살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의’ 란 개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 를 뜻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수직적 관계가 전제되어야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가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것입니다.

앤드류 커크(A. Kirk)는 성경 속에 나타난 의(justice)의 다섯 가지 측면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1. 의란 율법을 공정하게 시행하는 것이다(시 72: 1~2, 잠 29:4). 따라서 법률이 뇌물이나 어떤 위협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신 16:19~20) 백성 전체에게 예외 없이(출 18:13~26), 지체 없이(레 19:15) 행해져야한다.

2. 의는 권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사 5:7, 61:8).

3. 의는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다(시 72:4).

4. 의는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다(출 20:16-17, 23:1).

5. 의는 불경건한 자의 구원도 포함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회에서의 정의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가 의로워지기를 요구하신다(사 45:21). 다윗이 청의와 공의로 다스렸다 는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왕으로서 신정 국가 의 기본을 확고하게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따라 행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그분의 법도 공의롭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법은 형법, 민법, 가족법, 제사법과 구제법 등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법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모셔온 법궤로 상징됩니다.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은 헌법과 같이 여러 법률과 규례의 기본 정신과 방향을 규정해줍니다. 왕도 백성도 십계명의 원리를 순종할 때 사회는 정의가 뿌리내린 사회가 됩니다. 오직 정의로운 사회만이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사 32:17).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권위를 대행하는 자로서 권력 사용을 절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신 17:14 이하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구하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가사무엘의 두아들이 사사로 있을 때 돈을 탐내어 뇌물을 받고 재판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기(삼상 8:3) 때문이었습니다. 집권자가 권력을 이용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 사회는 부패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까지도 정의와 공의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됨을 알고 이렇게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1하나님이시여, 왕에게 주의 판단력을 주시고 왕의 아들이 주의 의로운 길을 걷게 하소서.
2그러면 그가 주의 백성을 바르게 판단하며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주의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시72:1~2,현대인의 성경)

경제 정의

성경은 공동체 생활에서 ‘경제 정의’ 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생산과 분배 과정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아니면 사민주의(social democracy) 어느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양 의 본질적 성격이 어떤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천지 창조 때부터 인류가 자원 활용과 노동을 통해 생산한 수확을 고르게 나누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 인간 사회에는 경제 정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제 생활의 공평과 정의를 위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무제한의 사유 재산 축적을 빙지하기 위해 가족 단위로 준 토지의 경계선을 옮기지 못하게 하며(신19:14), 이자를 받는 대여 행위를 금지시키고(출 22:25, 레 25:36, 신23:19), 성직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반드시 십일조를 바치게 했습니다(신14:22~27, 14:28, 출23:11, 레26:6).

노동 착취를 예방하기 위해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며(출20:11), 축제 기간을 설정해 휴가 제도를 주고(신 16:11, 14), 안식년 제도를 두게 했습니다(레25, 26장). 50년마다 노예 해방, 빚 탕감, 가난 때문에 팔았던 토지를 돌려 받는 '희년’을 제도화시켜 토지 공개념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심어주었고, 정의로운 나눔’ 의 원리를 실현시켰습니다.

특히 희년 제도는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田土)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사 5:8) 부동산 졸부들의 탐욕을 법적 조치로 막는 하나님의 공법이었습니다. 토지는 모든 경제 활동의 근본입니다. 아무리 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선물로 맡겨주신 땅을 이용해 모든 경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땅을 가꾸어 농사를 짓거나 땅에서 자라는 풀을 먹여 목축을 하든지, 땅 아래 묻혀 있는 자원을 이용해서 공업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땅 위에 건물을 지어 서비스업을 경영하든지, 결국 토지 소유가 부의 축적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땅을 가정 단위로 제한시켜 소유하게 함으로써 소유권을 무제한으로는 행사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23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

토지를 비롯한 모든 생산 수단의 소유권을 국가가 장악하여 경제력을 중앙 정부에 집중시키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은 성경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적 이념을 현실화시키려면 결국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는 전체주의적 국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구권의 몰락과 소연방의 해체에서 보듯이 이론은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인간의 죄성과 한계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제한의 자원 사용과 생산을 통해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려다가 환경과 인간성의 파괴, 부익부 빈익반 의 사회 모순과 갈등을 초래하는자본주의 이념도성경적인 모형이 아닙니다. 

성경은 먼저 토지와 모든 자원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원의 관리인으로서 신성한 노동력을 통해 생산한 것을 서로 공평하게 나누어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물론 균등주의(egalitarianism)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산주의처럼 더 노력하고 절약해서 더 소유하게 된 자에게까지 ‘강제로’ 빼앗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덧입어 ‘자발적으로’ 가난한자를 구제하도록 하셨습니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나누어줄 만큼 하나님의 자비를 덧입는 신앙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공정한 세금 제도를 통해 가난한 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되 정의와 공의로 행했다는 것은 성경 원리대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경제 정의를 실현했다는 뜻입니다. 로날드 사이더(Ronald J. Sder)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가난한 자를 위한 경제 정의야말로 
정치에 참여한크리스천들의 화고 관심이 되어야 힌다"

공정하고 능률적인 행정

살기 좋은 나라는 생활하기에 편하고 질서가 잘 잡힌 나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회 구조나 제도가 능률적으로 운영되는 행정력이 필요합니다. 국민생활의 안녕과 편리를 위해 행정 관리들이 효과적으로 나라 살림을 관리 운용하는 체계가서야 합니다. 예컨대 자연 환경 보호, 경찰, 교육, 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백성들의 일상 생활에 불공평, 위험, 불편함, 시달림이 없어야 합니다.

사울왕은 끊임없는 블레셋과의 전쟁, 다윗 추격 등 국방과 정권 확보의 차원에서 활동하는 것만도 벅찼습니다. 결국 다윗왕 때에 이르러서야 국가 행정이 조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뛰어난 행정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적재 적소에 인재를 잘 활용했습니다.

16스루야의 아들 요압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 사관이 되고
17아히둡의 아들 사독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 서기관이 되고
18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그렛 사람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삼하8:16~18)

다윗 정부의 조직이나 그 책임자에 대한 기록은 역대상 27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다윗은 요압을 군대 장관으로 해서 3명, 30명, 100명, 1000명, 24,000명 단위로 피라미드 형태의 군을 조직했습니다. 백부장, 천부장, 군단장(장관)을 세우고 총 28만 8천 명의 병력을 두어 국방을 튼튼히 했습니다. 각 군단 병력은 2,40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1년에 한 달씩 교대 해가면서 현역으로 근무하고, 나머지 기간은 예비군으로 있었습니다. 병역기피자가 생기지 않도록 공평하게 병역 의무를 다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정책이었습니다.

다윗은 열두 지파 중의 지방 자치 체제와 중앙 행정을 지혜롭게 조화시켰습니다. 각지파에는 행정관을 임명하여(대상 27:16~22), 국가적으로 주요 의제가 있을 때는 그들을 소집하여 의논했습니다(대상28:1). 이것은 부족 연맹에서 소제국을 건설한 당시 이스라엘 형편으로서는 지파간의 알력을 없애고 국민 총화를 이루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는 공정한 인사 정책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힘썼던 것 같습니다. 자기 혈족인 유다 지파와 망명 동지인 아둘람굴 출신, 말하자면 'JA(Judah-Adullam)사단'에 속한 자만 우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 경호원들을 열두지파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국인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 로 채용했습니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등용했습니다. 다윗 왕국의 최고위직 30명 가운데 7명만 유다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공동체의 발전에 암적 요소 중의 하나가 친척 등용 정책(nepotism)입니다. 중세의 기독교회나 제3세계 국가들의 부패 원인이 주로 혈연, 지연, 학연에 편중해 인사 등용이 이루어진 데 있습니다. '네포티즘’이란 단어는 조카라는 라틴어 ‘nepotes'(nephews)에서 왔다고 합니다. 중세 교황의 사생아들을 조카라 불렀는데, 이들이 공적 활동에서 권세 있는 명예직을 얻었던 정실인사를 가리켜 하는 말이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가족과 친척을 돌보는 것은 신자의 기본 책임입니다(딤전 5:8). 문제는 공공 기관이나 하나님의 공의가 앞서야 할 기독교회의 기관에서 친척을 중용하여 더욱 능력 있는 사람들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 사회 단체나 직장에서만 아니라 현대 한국 교회와 선교 기관에서도 친척 중용 정책아 아무 비판 없이 허용되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나 단체는 앞날이 그리 밝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세 넘겨 준 인간의 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의를 바린 안나스와 가야바의 친척 중용 정책의 죄였기 때문입니다(요 18:12 이하).

다윗은 왕이었으나 백성들이 쉽게 왕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론 수렴과 의사 소통의 통로를 열어놓았습니다(삼하 12장, 14장 참조). 독재하지 않고 백성의 지도자들과 의논해서 결정했습니다(대상 13:1-4). 모든 공을 자신이 독차지하려 하지 않고 논공행상을 공정하게 했습니다(대상 11장, 12장). 자신이 실수했을 때는 24장의 인구 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직하게 인정하고 과오를 시정할 줄도 알았습니다.

복지정책

살기 좋은 나라는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소외 당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람 대접 받으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보장된 나라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는 ‘은혜가 넘치는 나라 입니다. 다윗은 왕국이 부강해지고 번영과 안정을 누릴 때 소외된 사람을 왕자 대접하면서 은혜를 베품니다.

3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삼하9:3)

다윗이 사울의 유족을 찾아 보호하려는 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삼상 20:15, 42). 그래서 유일한 사울의 유가족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초청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사울에게 속했던 땅을 돌려주고 사울의 종 시바를 재산 관리자로 세워주었습니다.

사울에게 속한 재산이 다윗만큼 많지는 않았겠으나, 시바에게 열다섯 아들이 있고 종이 20명이나 되었던 것을 보면 상당한 재산이 있었음을 추측할수 있습니다(9:10). 다윗이 사울의 재산을모두므비보셋에게 돌려준 것은 모험적일 만큼 관대한 행위였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정권을 담당했던 자가 풍부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으면 정권을 되찾으려는 야망이 생길수 있기 때문입니다(삼하 16:3 참조). 다윗은 재산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초청하여 함께 생활했습니다.

11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삼하9:11,13)

재산도 주었고 명예도 주었습니다. 언제나 왕의 식탁에서 왕자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국가 정책의 결정 과정이나 행정 집행에도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가 두 발을 다 저는 절뚝발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을 때 므비보셋은 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가다가 이를 떨어뜨려 그때부터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삼하 4:4). 지체 부자유자를 왕궁에 두면 늘 돌보는 사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국정을 보살피는 큰일을 하는 다윗이 매우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을 평생 동안 감당한 셈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므비보셋은 사용 가차 나 능률로는 따질 수 없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과부, 고아나 나그네를 보살피며 가난한 자, 지체 부자유자나 정신 지체자들을 돌보는 일은 경제적 가치로 계산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질병과 사고로 고통 당하는 병자, 실직자나 노약자를 돕는 것은 건강과 재능의 은혜 입은 자가 마땅히 베풀어야 할 사랑의 빚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특권층이 더욱 세도를 부리도록 그들의 이익만 보장해주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찢기고 상처난 연약한 양떼를 민망히 여기며 품에 안고 보살피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값없이 그 은혜를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이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라고 말할 때의 ‘은총 이란 히브리 말로 ‘헤세드(hesed)' 인데 구약에 약 250회나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언약 관계를 맺은 자기 백성에게 향하신 신실한 사랑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는단어입니다(호2:19 참조).

다윗이 본래 착하여 불쌍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과 무한한 사랑을 덧입고 그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지 사회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나 제도 개혁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으며, 먼저 지도자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야 가능하다는 원리를 되새기게 됩니다.

국제관계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듯이 과거 나하스왕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왕위 계승자인 그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눈은 주위의 자문을 잘못 받아들여 다윗의 특사들을 모독했습니다. 남자의 수염을 반쪽만 깎아놓고 바지를 잘라 엉덩이가 다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냈습니다. 현대에서도 이런 일은 충분히 개전(開戰)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사태였습니다. 암몬은 아람에게 미리 군사 원조를 요청하여 연합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다윗은 암몬을 정복해 오히려 영토를 확장하고 국제 관계에서 영향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눈과 다햇은 국제 관계에에서 지혜로운 지도자와 어리석은 지도자를 극적으로 대조시켜 보여줍니다. 하눈은 우선 그 인격이 비뚤어져 있었고, 성숙하고 지혜로운 자문 위원들을 측근에 두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결정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손자 르호보암 같은 자였습니다(왕상 12장 참조). 결국 왕 한사람의 어리석은 외교 정책이 온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갔고, 그 결과 많은 경제적 손실과 국민적 수치를 겪으며 패배로 몰고 갔습니다. 그에게는 다윗 왕국의 힘과 동맹국 아람의 힘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대처할 수 있는 상황 판단력이 전혀 없었습니다(눅 14:31이하 참조).

반면에 다윗은 신실하고 지혜로운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모든 거래와 인간 관계, 국제 관계에서 신임할 수 있게 행했습니다. “은총을 베풀리라"는 말에서 ‘은총'이란 변함없는 충성심을 뜻합니다. 개인이나 국가간에나 신의를 지킬 수 있어야 참 명예를 얻게 됩니다. 국가간의 친선 관계, 조약 관계, 상거래의 신용도는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간에는 오직 이익과 힘의 논리만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 이익을 얻는 길은 일본같이 약악빠르게 행하는 것이 아니 라 때때로 약간은 손해를 보더라도 명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지도력

이상에서 우라는 다윗의 왕도와 그의 왕국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멋진 통치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왕도를 후대의 시인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70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편 78:70~72)

마지막 절을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And David shepherded them with integrity of heart;with skillful hands he led them(PS. 78:72, NIV)

위대한 왕은 먼저 ‘마음의 완전함 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인격자라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손의 능숙함 곧 정치 기술도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한 가지가 결여되더라도 결코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없습니다. 성실한 태도’ 만으로, 또는 타고난 정치 센스나 '감 만 가지고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타고난 자질과 인격뿐 아니라 오랜 공부와 연구, 그리고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정치가야말로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연단된 ‘프로’ 가 되어야 합니다. 군인들이 불타는 애국심이 있다고 해서, 학자들이 이론과 꿈이 있다고 해서, 또는 사업가들이 돈이 많으니까 한자리 해봐야지 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결국엔 ‘하눈 같은 정치가밖에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뛰어난 왕도,곧 완전한 마음과 능숙한 손으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타나길 기다리게 할 만큼 탁월한 다윗의 지도력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다윗은 자기 권세를 지키려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하나님과 백성을 섬기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왕도는 ‘종의 도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종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종으로서의 기본 자세와 경륜을 가지고 큰 정치, 섬세한 행정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12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삼하5:12)

다윗은 경천애인(敬X愛人)의 통치 철학을 가지고 자신을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실망 때문에 생긴 정신적 질병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 교회는 다'렷 같은 정치 지도자를 키워내는 모밭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신앙 지도자들은 다윗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현대야말로 크리스천의 리더십이 진정으로 요구되는 시대라고 말하면서 지도자에게 필수 불가결한 다섯 가지 인격적 요소를 제시합니다.

첫째, 분명한비전(vision)

둘째, 그 비전과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힘써 일하는 근면(industry)

셋째, 어떤 반대나 희생에도 굽히지 않는 불굴의 투지 (perseverance)

넷째, 군림하지 않고 종으로서 섬기는 겸손한 봉사(sendee)

다섯째,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훈련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익히는 영성 훈련 (discipline) 

교회가 국가 사회를 향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시대이지만,교회 지도자들인 목회자나 장로, 집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공신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속적인 목회자 교육, 신학생들이 자질 향상 등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 훈련에 더욱 힘써야 할 때입니다. 목회자들의 영적, 지적 수준이 평신도들의 일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는 이미 평신도들이 깨어나서 기지개를 켜면서 자신들의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일감을 찾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 집사들부터 교회 안에서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해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평신도 지도자들을 양^하기 위해 젊은시절에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학문을 익히며 기독교 정신으로 사회를 섬기려는 훈련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시켜주는 기독교 대학들의 정체성 회복, 또는 새로운설립이 요구됩니다.

특히 일반 대학생 복음 운동 단체나 교회 대학부가 전도와 교제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장차 교회에 봉사할 성가대원, 교회학교 교사 양성 등 단기적 효용 가치에 치우치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아니면 오로지 선교사가 되는 길만이 참 제자도인 것처럼 인정받는 분위기가 된다든지, 단체의 바벨탑 쌓는 일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균형잡힌 지도자 양성의 바람직한방향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제자 양성, 하나님의 모세, 다윗을비롯한지도자 양성의 지혜를 깊이 있게 배워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인류 사회의 각 분야에 크리스천들이 지도력을 발휘해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이 시대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예수님의 참 제자를 애타게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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