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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하 5장 4절~7장 _다윗의 왕국, 다윗의 신앙

by 비앤피 202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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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삼하5:12)
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6)

1945년 해방의 감격을 안고 작사 작곡했다는 현제명의〈희망의 나라〉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찬 곳 희망의 나라로.” 살기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 생을 즐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일까요? 자기는 고생하고 있지만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남겨주기 위해 땀홀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보람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무엘하 5~10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이 생애의 절정에서 어떻게 뛰어난 왕도(또道)를 발휘하면서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 후무한 황금기인 다윗 왕국을 건설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본문의 분량이 많아편의상 ‘다윗의 왕국, 다윗의 신양 과 ‘다윗의 탁월한 리더삽 이라는 두제목으로 나누겠으나, 내용상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 말솜은 다윗이 먼저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성서 이스라엘’ 의 기초를 이루는 역사를 중심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다윗의 왕도와 그의 왕국은 이스라엘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메시야 신앙을 태동시켰습니다. 메시야 신앙이란, 인류의 구세주는 ‘다윗의 자손 으로서 다윗 같은 사랑과 평강의 왕이시며, 메시야가 다스릴 하나님나라는 다윗왕국처럼 ‘공평과 정의의 나라 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간직하는 믿픔시었습니다(사 9:6-7, 11:1-9, 눅 1:32~33). 그래서 사무엘하 7장은 신학적인 면에서 구약 성경의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윗성정복

다윗 왕국의 건설은 먼저 새로운 수도를 정하여 국민적 일체감을 갖게 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통일 왕국을 이룬 다윗으로서는 분단이 가져다준 민족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징적인 정치 행위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백성의 정치 의식의 초점을 과거에서 빼내어 신바람 나는 미래의 겨레상으로 집중하게 하는 정치력을 발휘합니다.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이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천도한 것은 신기에 가까운 정치 기술이었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의 유다 지파와 사울의 베냐민 지파의 경계가 되는 중립 지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어느 지파도 소외 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백성들 모두가 새로 정착해 새 나라 건설의 꿈에 부풀게 만든 도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파간의 일력이 해소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수아 이후 300여 년간 정복하지 못한 채 가나안 땅 여부스 족속이 차지한곳이었습니다(삿 1:21 참조). 따라서 예루살렘 정복은 이방 족속의 마지막 흔적을 가나안 땅에서 말끔히 닦아내는 역사적 업적이기도 했습니다.

6다윗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들을 치고자 그의 군대를 이끌고 올라갔을 때 그들은 "네가 절대로 이리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장님이나 절뚝발이라도 너를 막아낼 수 있다!" 하고 큰소리쳤다. 이것은 자기들의 성이 침공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7그러나 다윗과 그의 군대는 그들을 공격하여 시온 요새를 점령하였다. 지금은 그것이 다윗성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삼하5:6~7, 현대인의 성경)

군사적 천재인 다윗은 시온산 위에 세워져 있고 3면이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요새지 예루살렘을 기막힌 ‘수구(水□) 침투 작전’으로 점령했습니다. 1867년, 워렌(Warren) 일행이 예루살렘을방문하여 다윗과 그의 군대가 들어간 수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본래 장교요 등산가 출신이었는데,그가 기혼 못가에서 머리 위에 있는 바위에서 구멍을 발견하고, 약 12m를 수직으로 절벽을 타서 기어올라가니 좁은 통로가 나왔습니다 거기서부터 손과 무릎으로 포복해 어느 둥근 천장 비슷한 곳까지 갔더니 거기에 오래되어 부서진 토기 그릇들이 있었습니다. 약간의 빛이 스며나 오는 곳을 향해 바위틈을 비집고 기어올라가니 , 예루살렘 한복판에 들어온 것입니다. 바로 다윗의 수구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1910년 고고학적으로 더욱 정확하게 조사를 한 결과 이 수구는 약 BC 2000년 전부터,그러니까 다윗의 군대가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이미 예루살렘 산성을 꿰뚫고 있었다고 합니다.다윗은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점령할 산성이 있습니다. 너무나 견고해서 감히 도전하기 어려워보이는 산성에도 수구와 같은 틈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 문제든 아니면 민족의 통일 과업이든 ‘수구 를 발견하고 점령할 수 있는 다윗 같은 지혜와 용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루살렘은 순전히 다윗과 그의 개인적인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다윗이 거하면서 확장했기 때문에 ‘다윗성’ 이라고 불리운 것 같습니다. 이곳에 두로왕 히 람이 보낸 건축 자재와 기술자를 통해 왕궁을 세우고 많은 건설을 했으며(5:11), 국방을 위해 성을 둘러쌓았습니다(5:9).

10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5:10)

민족 통일의 상징이 된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본래 아브라함 시대부터 멜기세덱이 다스리던 왕성이요(창 14:18), 후에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도성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계 21:2-3). 다윗성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통일 조국의 수도를 세계에서 가장 자연 보호가 잘 되었다는 군사 분계선 안의 비무장 지대에 새로 건설한다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은 어떻습니까?

독립 전쟁의 승리

다윗이 유다왕으로만 있을 때는 블레셋이 다윗을 자기들의 봉신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가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온지파의 왕으로 즉위했다는 정보가 들어가자 더 커지기 전에 잡아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르바임 골짜기에 군사를 집결시켰습니다.

그 당시엔 왕의 첫 의무가 전쟁에서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전쟁이 바로 외세에 종속되었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자주권을 되찾는 참으로 중요한 독립 전쟁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중요한 전쟁에 승리를 주실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믿었습니다. 5장 17-25절의 전쟁 기록은 다윗이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전쟁에 임했는가를 보여줍니다.

19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하5:19)

두 차례에 걸친 다윗은 하나님의 작전 명령을 따라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언제나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해온 블레셋군이 처음에는 예루살렘 가까운 르바임 골짜기까지 쳐들어와 위협했으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아(5:20) 흩으셨습니다. 그후 다윗은 아예 블레셋의 본거지인 게바에서 게셀까지 군사를 이끌고 가서 평정하고 옵니다. 다윗 왕국을 다시는 넘보지 못하게 이스라엘을 자주 독립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자주'없이는 민족 국가가 설 수 없고 참 평화가 없음을 다윗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다시 한번 독립 전쟁의 승리가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순종하는 다윗의 믿음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표현을 반복합니다. 이것은 사울과 다윗의 근본적인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원이 여호와께 여쭈니(삼하5:23)
이에 다원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삼하5:25)

법궤를 들여오는 축제

그 궤는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삼하6:2)

다윗은 왕국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으로 온 백성이 하나 되는 나라,기쁨이 넘치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애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면서 다윗이 최우선적으로 한 일은 법궤를 들여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위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궤는 바알레 유다(또는 기럇여아림, 삼상 7:2)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사울의 신앙을 미루어볼 때 놀랄 일은 아니지만 백성들의 신앙을 위해서는 심히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법궤 중심의 신앙은 위험성도 있으나 이미 A]무엘과 다윗의 지도력 아래 말씀 중심으로 백성의 신앙이 정립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영광의 상징인 법궤를 모셔오는 것은 국가의 최우y을 어디에 두는가를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도 있는 것이 었습니다.

다윗은 망명중에도 늘 생각했을 것입니다. “후일에 하나님께서 나를 왕으로 세우시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가까이 모셔야지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와 달리 법궤 안에 담겨 있는 계명으로 국가의 기초를 삼아 말씀으로 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법궤틀 국가의 상징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모두 함께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뿔뿔이 나뉘어지기 쉬운 열두 지파를 하나로 모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 임을 분명히 하고, 예루살렘을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일은 백성들과의 합의를 거쳐 이루거졌으(5:1,2) 첫 단계에서는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그것은 열심만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과 백성들은 법궤를 옮겨오는 일에만 홍분하였지, 하나님의 규례를 차분히 살펴보고 그대로 행하는,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습니다.

법궤는 반드시 레위 지파 가운데서 뽑힌 고핫 자法들만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으며, 결코 성소를 들여다보지 말라는 규례가 있었습니다(민4:5, 15, 20)그런데도 그들은 오랫동안 성경을 때 않았기 때문에 전에 볼레셋인들이 옮긴 방식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새 수레로 옮기려 했습니다. 그러가 도중에 법궤가 흔들리자 궤를 붙잡은 웃사가 그만 즉사하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다윗은 무서워 궤를 모셔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두었는데, 그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을 보고서야 다시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지난번에 자신의 무지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해 이번에는 말씀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막연하게 감정적으로 좋아하거나 자기 열심으로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구체적으로 계명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요 14:15, 23).

12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삼하6:12~15)

이 장면을 마음속에 한번 그려보십시오. 얼마나 벅찬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국민적 축제입니까! 다윗은 택한 백성과 기름부은 종을 축복해주시는 은총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성가대가 노래하고 오케스트과가 연주하는 가운데 힘껏 춤을 추었습니다. 춤추는 데는 아무래도 왕의 복장이 거추장스러웠는자 제사드릴 때 제사장이 입는 에봇만 입고서 온 몸을 흔들며 다윗은 자신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춤은 시인이요 음악가인 다윗이 기쁨을 나타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성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함께 찬양하며 기쁨으로 순례의 대행진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에는 국민적 일체감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후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다니는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다함께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민족애로 혼연 일체가 되어 기뻐 춤추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나라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나라는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하는데, 그것은 메시야가 다스리시는 나라,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교회, 말씀대로 사는 나라에 이런 기쁨이 넘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꽃 피는 문화 예술

법궤를 들여오는 축제를 위해 다윗은 주옥 같은 몇 편의 시를 썼는데 (시16, 68, 24편), 그중에서도 백미를 이루는 노래가 24편입니다. 이 노래는 예루살렘성으로 올라가면서 성가대가 부른 시라고 합니다. 후에는 성전에서 매주 안식일 다음날, 즉 주일 아침 예배 때 불려지던 시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서 있는 시온성의 언덕 기슭에서 제1성가대가사편 24편 1-3절을 부르면 제2성가대는 4-6절을 부릅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성문 앞에 도달해서는 제 1성가대가 7절, 저12성가대가 8절 상반절을 부릅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이때 제1성가대가 8절 하반절로 응답한 후, 제2성가대가 9절, 제2성가대가 10절 상반절, 그리고 제 성가대가 10절 하반절을 부른다고 합니다.

강하고능한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 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다윗은 미리 성막을 쳐서 마련해놓은 자리에 여호와의 궤를 모셔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후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모여든 백성 모두에게 각자 떡 한덩이, 고기 한 조각, 건포도떡 한 덩이씩을 나누어주었습니다(삼하 6: 17-19). 먹을 것을 똑같이 나누어먹는 백성들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다윗과 온 백성이 궤를 메어오며 이토록 환호성을 지르고 춤추며 기뻐하는데, 성 안에 이를 못마땅해 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었습니다. ‘미갈의 미소' 一 이것은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영적인 의미, 역사적 의미를 모르는 데서 오는 냉소였습니다. 그녀는 다윗에게 '매너’ 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순진 무구하게 춤추는 그의 신앙적 엑스터시(ecstasy)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의 노여움을 산 미갈은 자식을 낳지 못해 사울의 씨는 끊기고 맙니다(6:20-23).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국을 떠나 다니엘같이 유학 생활을 할 때나 포로 생활을 할때도 하나님의 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단 6:10, 시 137:1~5). 궤가 있는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된 것입니다. 시인들은 성전을 그리워하며 주옥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1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10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84:1,10)

시인 왕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은 문화가 융성해갔습니다.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 예술이 발전했고, 예술의 꽃인 문학이 발달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시대에 시편, 아가서 등의 시 문학뿐아니라 열왕기, 역대기 등 역사서의 기초 자료 편찬, 그후 잠언과 전도서 같은 불후의 작품들이 인류의 정신을 부요하게 했습니다. 다윗의 후원으로 많은 악기가 발명되었고,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모집해 정교하고 아름다운 예배 음악이 발달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진선미를 추구하는 성품을 타고난 인간이 학문과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고상한 문화를 이루지 못하면, 저급한 본능적 쾌락만을 좇는 짐승 문화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준 권면을 새롭게 생각해보십시오.

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3:16)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인생을 멋있게 사는 비결은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삶이요, 아름다운 교회와 나라를 이루는 길도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다윗 왕국은 법궤를 중심한,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진 성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의 꿈

왕권이 확고해지고 왕국은 태평 성세를 이루게 되자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성전 건축의 부푼 계획을 의논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호화로운 왕국에서 편안히 지내는데, 하나님의 궤를 그냥 천막에 모시다니 죄송해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7:1-2 참조).

어떤 이들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제안하는 동기가 사실은 딴데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당시 근동의 왕들은 자기 업적을 과시하는 기념물로 자기네 신들의 사원을 짓는 것이 관례였는데,다윗도 주변 국가 왕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아니면 성전 예배와 활동이 커지고 성가대장 아삽과 성가대원, 오케스트라 당원, 제사장들, 성전 관리하고 심부름하는 사람 등 전임 일꾼들의 수가 증가했으므로 실제적 필요 때문에 성전 건축 계획을 세웠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동 시절에는 양떼와 함께 들판에서, 망명 시절에는 아둘람굴이나 광야에서 들짐승 울음 소리 들으며 머리 둘 곳 없아 살던 다윗이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지은 화려한 왕궁에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분명한 사람이 하나님보다 먼저 자신을 위해 시간이나 돈, 재능을 썼을 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지자 나단도 다윗의 제안을 듣고 찬성했습니다. 그날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을 다윗에게 알려주셨습니다.

5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11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삼하7:5,11)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지으려는 ‘잡 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지으시려는 ‘집’은 다릅니다. 물론 히브리 말로 똑같은 'bayith(집)'이지만

그말은 왕조’ 그리고 성전’이라는뜻도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다윗의성전 건축을 허락하시지 않은 이유를 본문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조 건물 안에 제한될 분이 아니시므로 불필요하다고 하시는 것 같기도하고(7:6~7) 아니면 성전 건축이 언젠가는 필요하겠으나 아직 정복해야 할 원수가 남아 있으므로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말씀 같기도 합니다(7:11).

역대상 22장에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위업을 맡기면서 들려준 말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8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9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대상22:8~10)

성전 건축을 하려던 자신의 꿈은 하나님의 거절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다윗은 솔로몬 시대에이루어질성전 건축을 위해금과 은을 모으며 힘을 다하여 예비’하기 시작했습니다(대상 29:2).

다윗은 그의 왕국이 자신이 집권중인 당대에만 대과(大過) 없이 번영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통치하는 단견(短見)을 가진 왕이 아니었습니다. 먼 후 대를 바라보면서 ‘국가 백년 대계’ 를 세워 후손을 위해 현 시점에서 자신이 담당해야 할 일감을 찾아 미리 준비하는 경륜 있는 통치자였습니다. 다윗 왕국은 후손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빚을 지게 하는 나라가 아니라,조상이 준비해둔풍성한물질적 정신적 유산을물려받으며 태어나게 하는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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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솔로몬 이후 계승되던 다윗 왕조는 BC 587년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집과 그 나라,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은 도대체 어떻게된 것입니까?

이 다윗 언약이 결국 성경적 ‘메시야주의’ 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다윗 언약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를 대망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장차 올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며,메시야 왕국은 다윗 왕국 같은 공평과 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시2편, 사9:6-7, 11:1-9, 렘 23:5, 겔 34:23).

신약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가브리엘 천사의 메시지에 데시야가 ‘다윗의 왕위’를 이을 분이시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다윗의 뿌리’ 라고 했습니다(계 5:5).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언약하신 지 약 1000년 후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다윗의 자손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메시야를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된 인류를 대속하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다윗과 그리스도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을 따라 섬기다가 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행13:36~37)

결국 썩느냐 썩지 않느냐의 차이였습니다. 다윗은 죽음을 이길 수 없는 인간이며 그의 왕국도 쇠망을 막을 길이 없는 세상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뛰어난 인걸(人傑)도 왔으면 가야 하고, 그 어떤 강대한 제국도 홍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오는 법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파하심으로 영생하는 왕이 되셨으며,그의 피로 세운 하나님 왕국은 고통이나 썩음이 없는 영원 무궁한 나라입니다.

언약 영접 기도

사람의 참 모습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받고서 다윗은 영접 기도를 드립니다(7:18-29). 다윗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그의 겸손한 인격,민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다른 어떤 외적 행위보다 확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통일 왕국을 이룬 후 많은 사건과 눈부신 통치 업적의 나열만을 좇다가자칫 잃기 쉬웠던 명상의 여유를 갖게 해줍니다.

성전 건축의 이상은 좌절되었으나 오히려 더 큰 축복의 언약을 받은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7:18). ‘여호와 앞 이란 다윗이 궤를 모셔둔 상막을 뜻합니다. 다윗이 떨리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올린 기도의 첫마디는 무엇입니까?

18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7:18)

세상에 교만을 떨어도 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다윗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까지의 업적이 자기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것을 아는 겸허한 사람이었습니다(5:12). 다윗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산 (7:8) 하나님 앞에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를 잊지 않는 한 그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며(7:19), 세계 만민 중에서 그의 나라가 누리는 축복을 기억하며 찬양합니다(7:23).

22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23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26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삼하7:22~23, 26)

하나님께서 친히 출애굽 역사와 가나안 정복 역사를 이루고,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온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뜻을 기리면서,다윗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다윗 왕국을 견고하게 하실 언약을 믿음으로 영접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는 전능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주제입니다.

21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25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8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삼하7:21,25,28)

다윗 왕국의 영원성 , 곧 메시야 통치에 대한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의 불변성과 그 신실한 성취에 있습니다. 다윗 이후 이스라엘이 어떤 역사의 암흑기에도 메시이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근거도 다윗의 등불 (왕상 11:36)을 지키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다릿 왕국과 메시아 공동체

다윗 왕국의 역사와 언약을 공부할 때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첫째, 다윗 왕국을 국가 공동체로 보고 이상적 국가의 모형 (paradigm)을 배우는 접근 태도입니다. 둘째, 다윗 왕국을 신앙 공동체로 보아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그분의 통치가실현되는신약 교회, 곧 메시야적 공동체의 예표(type)로 이해하는 접근 태도입니다. 셋째, 다윗 왕국의 다윗 언약을 메시이의 재림과 함께 종말에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 곧 종말론적인 공동체에 대한 구약의 예언으로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다윗의 왕도를 통해 실현되는 다윗 왕국의 국가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 교회가 과연 종말론적이며 , 메시야적 공동체로서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것입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몸’ 인가, 혹시 한국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유기적 공동체로부터 변질되어 교권 행사와 제도와 상업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단체’ 로 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괴로운 질문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시대를 섬기는 크리스천의 고민이 있습니다.

대형 교회에서 예배를 즐기는 청중’ 의 수는 증가하지만, 종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사권이 얼마나 깊어지며 횡적으로 성도들과의 사귐이 지체 의식을 가질 만큼 긴밀해지고 있는가 의문을 가져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왕의 공동체’ 이며메시야 공동체입니다. 메시야 공동체는 장차 다가올 초월적인 그리스도의 통치를 기대하면서, 그 통치를 선구적으로 역사 안에서 실현하며 선포해나갈 사명을 가진 공동체인 것입니다. 다윗 왕국이 세상 만방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선포하는 ‘이방의 빛'이 되어야 했듯이,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땅 위에 실현해야 할 ‘세상의 빛’인 것입니다.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진리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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