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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하 14~20장 _다윗과 압살롬

by 비앤피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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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삼하15:25)

우리는 앞서 다윗의 자식들간에 일어난 강간과 살인 사건을 보았습니다(13장). 입에 담기에도 거북한 이런 지저분한 사건들을 왜 거룩한 성경에, 그것도 아주자세하게 기록했을까요? 첫째, 이것이 다윗의 범죄에 대한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둘째, 먼저 이 사건을 알아야 다윗과 그의 왕궁에 뒤이어 발생한 모든 사건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성욕과 증오심을 곧바로 다스리지 않은 결과가 무엇인가를 교훈하기 위함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는 말씀의 뜻을 새롭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면에서 큰 아들 암논이나 셋째 아들 압살롬이 모두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서 자격을 잃었고,솔로몬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임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

본문의 중심 사건은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다윗은자식 압살롬 때문에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었으나, 후에 거의 빼앗길 뻔한 예루살렘과 왕권을 회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14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4)

이 말씀은 물론 직접적으로 다윗의 아들을 두고 하신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할 때 일반적으로 적용될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매, 곧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 을 맞으면서 고통을 겪는가, 그리고 후에 어떻게 영적으로 회복하게 되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그후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도하기까지 오직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하면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영적 회복, 왕권 회복의 모습은 우리의 개인적 신앙 생활에 희망을 줄 뿐 아니라, 창조- 타락-구속(회복)의 하나님의 인류 구속 역사의 구도를 보여주기도합니다.

압살롬의 양심

압살롬은 인물 연구의 대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많은 처첩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방인인 그술왕의 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이러한가정 환경 때문에 성장하면서 신앙과 인격 형성에 중대한 결함이 생긴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주 비정하고 과격한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누이 다말이 강간당한 사건 후, 2년 이상 복수의 기회를 기다리며 치밀하게 준비해 이복 형 암논을 쳐죽였습니다. 그는 3년 동안 피신하여 외가인 그술에서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13:37). 그후 요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다윗이 그를 만나주지 않아 4년 동안 따돌림 당한 채 지냈습니다(14:28). 요압의 건의로 다시 만나 서로 입을 맞추었으나 다윗과 압살롬 사이에 참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14:33). 이러한 부왕과의 불화는 결국 압살롬으로 하여금 4년 여의 준비를 거쳐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에 대해 앙심을 품게 한 것은 주로 다윗의 책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마땅히 암논을 벌했어야 옳았지만,누이를 욕보인 아들을 그대로 묵인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릴 때 그토록 ‘정의와 공의’ 를 행하던 다윗이었으나 가정은 공의로 다스리지는 못했습니다. 큰 아들에 대한 지극한 부정(父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노인이 되면서 엘리처럼 단호한 태도가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행한 죄 때문에 도덕적 권위를 잃고 마음이 연약해진 자괴심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불의를 용납하기 시작하자 가정이나 국가 모두 도덕적 질서가 붕괴되고 맙니다. 강간범 암논도 큰 죄인이지만 살인범 압살롬은 더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압살롬을 처벌하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에 데려온 것을 보면 다윗의 도덕적 감각이 무뎌져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통찰력도 흐려진 것 같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그의 왕위 계승자로 삼으실 것을 알았고 그를 세우려는 정치 구도를 가졌다면, 압살롬의 존재가 장차 무슨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내다보면서 준비시켰어야 옳았습니다.

아무리 나라의 막강한 실권을 쥐고 있는 요압의 권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왕으로서 그런 압력에 단호히 대처했어야합니다. 그리고 전에 그랬듯이(7:2), 이런 문제를 마땅히 선지자와 의논하며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했습니다. 가정과 국가의 대소사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본이 흔들리자 다윗은 결정적인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황태자로서의 특권을 빼앗긴 채 가택 연금 상태가 길어지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압살롬은 공주로 자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기의 뛰어난 외모 때문이었는지(14:25), 교만하고 정치 권력에 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정권욕을 키워왔습니다. 법적 절차를 따라 순리대로 왕위를 얻으리라는 기대를 갖기 힘들게 되었을 때,치밀한 전략을 세워 고단수의 정치 기술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중에 다윗왕은 질병을 앓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을 재판하는 일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압살롬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왕위 계승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예루살렘 지형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전차 한 대와 말들을 구하고 호위병 50명도 고용해서 허세를 부렸습니다(15:1).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성문으로 나가 소송 문제로 왕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 말했습니다.

3그는 곧잘 이렇게 말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당신이 옳고 정당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소송 문제를 들어 줄 대리인을 왕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4내가 만일 이 땅의 재판관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소송 문제를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나에게 찾아올 수 있고 또 나는 그들의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해 줄 것입니다."(삼하15:3~4, 현대인의 성경)

압살롬의 계략은 먼저 백성들에게 왕에 대한 불만을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을 향한 백성의 충성심을 가로채서 자신에게 향하도록 했습니다. 정(情)에 굶주린 백성들을 감동시키는 제스처를 쓰기도 했습니다.

5그러고서 그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와서 절하려고 하면 그러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고 입을 맞추곤 하였다.(삼하15:5, 현대인의 성경)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며 자기 세력을 키우던 압살롬은 때를 노리다가 4년 만에 헤브론으로 내려가 자기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각처에 몰래 사람들을 보내어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고 알리게 했습니다. 헤브론은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특권을 상실했다고 느끼는 유다 지파의 불만 세력의 집결지였습니다. 압살롬은 당시 지도급 인물 200명을 초청해 자기 편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압살롬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따라왔다가 분별력을 잃고 대세에 휩쓸려 이용당한 것입니다.

특히 이 반역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오랫동안 다윗의 고문이었던 아히도벨이라는 정치 거물이 압살롬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은 자기 손녀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범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의 수가 불어가면서 반란 세력이 전국으로 퍼지며 커져갔습니다(15:10~42).

민심(民心)이 천심(灰心)이라는 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민심이 얼마나 쉽게 정치적 카리스마에 의해 조작되며 이용당하는자 모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정치 의식을 발달시켜 압살롬 같은 정치인들의 술수에 농락당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영적 질서를 피•괴하는 한두 사람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 분별력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어디서나 압살롬처럼 항상 ‘으뜸되기만 원하는’ 자를 치켜 세워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울며 도피하는 다윗

자식에게 배반당하고 친구에게 배신당한 다윗의 심경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어쩌면 인간 다윗의 일생이 처절한 실패로 종지부를찍을지 모를 위기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파국을 맞게 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위기를 맞았을 때 다윗의 신앙은 새벽 별처럼 빛났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이 생생한 역사 서술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압살롬의 반역 자체보다 반란을 맞는 다윗의 태도에 더 주목하게 합니다. 누구든지 다윗의 경우에 처하면 격분해서 폭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비록 늙었지만 충성스런 군사가 있었고, 예루살렘 산성이라는 요새를 이용한다면, 반란군 진압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히도벨 같은 자만 속죄양 삼아 처단하면 민심을 돌이키는 것도 별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자신을 알았고 이 재난의 의미도 알았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켰으나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으며(12:10~11), 자녀들을 징계하며 교육시키지 못한 과오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온유와 내적 고요를 가지고 슬픔과 아픔을 감내합니다. 실패와 고통의 시기에 하나님 앞에 먼저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평안과 확신의 모습입니다.

먼저 다윗은 반역하는 압살롬과 싸우기보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편을 택합니다. 여부스 사람에게서 빼앗은 성을 다윗성이라 이름 짓고 왕궁 건축 등 웅대한 도시를 건설했던 다윗이 예루살렘을 포기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14다윗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삼하15:14)

대결보다 도피를 택한 다윗의 결단은 결코 비겁했기 때문이 아니며, 압살롬과 그를 분별 없이 추종하는 자들을 옳다고 인정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동족간의 피홀림으로 하나님의 성을 더럽힐 수 없다는 다윗의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첫째, 하나님의 영광, 둘째, 백성들의 유익, 마지막으로 자신의 안전이라는 자기 일생의 가치 체계에 따라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는 왕권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면 그를 도와 백성들의 마음을 그에게로 돌리는 데 힘썼을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은 ‘큰 물이 나서 탁류가그 집에 부딪치되’(눅 6:48)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 집이었습니다.

반역이 일어날 때는 한두 명이라도 더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자가 세력을 얻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외국인 용병인 왕실 근위대 600용사들을 지휘하는 잇대에게도 선택의 자유를 주며 오히려 새 왕을 섬길 것을 권합니다(15:19~20). 잇대는 오히려 목숨을 걸고 다윗을 더욱 따릅니다. 또한 다윗은 대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메고 온 하나님의 궤도 돌려보냈습니다.

25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삼하15:25~26)

다윗은 지난 날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던 이스라엘 장로들의 미신 행위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삼상 4:3).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실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직 "내 주여,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하며 하나님의 인생과 역사에 대한 주권을 철두 철미하게 시인하고 그분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습니다.

배신자들

대성 통곡하며 예루살렘성을 떠나 광야 길로 가는 다윗, 감람산 길로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올라가던 다윗과 그의 일행에게 가장 큰 충격은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가담했다는 뉴스였습니다(15:23, 31-32). 다윗의 심장이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다윗과 아히도벨은 평생을 함께한 친구였습니다. 아히도벨의 정치적 지략이 범상했기 때문에 그의 조언을듣지 않고서 중대한 정책을 결정한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시편 41편과 55편에는 가장 신임하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다윗의 비통함이 구구 절절 나타납니다.

9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41:9)

다윗은 아히도벨의 배신도 하나님의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 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견디기 어려운 매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한 행위가 바로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에 이 모든 것을 맡기면서 동시에 애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훌을 구합니다.

31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15:31)

압살롬이 헤브론을 장악한 후 예루살렘으로 진입할 것이 확실하므로 다윗은 옛 이스라엘의 고성 마하나임으로 피신하기 위해 험한 광야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황망하게 떠난 다윗 일행을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먹을 것을 풍성히 가지고 맞았습니다. 그는 므비보셋이 배신하였다고 모함하여 다윗에게서 므비보셋에게 속한 재산을 얻습니다(16:1-4, 19:24-30). 기회주의자의 전형입니다.

사울의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자는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리면서 저주했습니다. "살인자여! 악한이여! 여기서 사라져라!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다.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 (16:7-8,현대인의 성경) 시므이는 단지 자기 지파에 속한 사울의 왕위를 가로챘다고 생각하고 다윗을 비방하며 저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나시므이 같은 자가 있습니다. 혈연,학연, 지방색, 파벌주의 등이 사람을 이렇게 편협하게 만듭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은혜롭게 감당합니다. 그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아비새를 말리면서 말합니다.

11 다윗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삼하16:11~12)

이 한 마디 속에는 다윗의 신앙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행해진 타인의 악도 하나님의 허용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심판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한 자는 사람들의 판단이나 비방에 초연할 수 있습니다(고전 4:3-5 참조). 타인의 근거 없는 비방을 받으면 자존심이 크게 상처 받습니다. 그러나 비방을 변명할수록 더 구차해지는 법입니다. 비방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은 후, 그런 비방을 무시하고 자기 할 일만 찾아 묵묵히 해야 합니다.

다윗은 배신자들의 무리를 보며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아마 시편 12편이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면 바꾸기’ 의 세계적 거물들이 모인 우리 정치계뿐만 아니라우리 사회 전반을 보면서 다윗은 똑같은 탄식을 하지 않았을까요.

1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8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시12:1, 8)

충성스러운 자들

모두 떠난 것 같았으나 남은 자 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변절자들뿐인 것 같으나 요압과 아비새를 비롯한 충성스러운 자들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후에 전열을 가다듬고 압살롬의 군사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결국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고,왕국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온전히 다윗과 함께 한 충성스러운 사람들의 공로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 후새였습니다. 후새의 등장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15:31)라고 부르짖은 다윗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후새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의 명령에 따라 압살롬 편에 가입하는 척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간파했습니다. 당장 곤비한 다윗 일행을 공략하자는 아히도벨의 작전 계략이 달성되었더라면 다윗은 끝장났을 것입니다. 그만큼 아히도벨은 사리 판단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후새는 온 이스라엘이 먼저 압살롬에게 돌아오게 한 후, 압살롬의 과대 망상적인 심리를 간파하여 쉽게 다윗을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대안을 제시합니다(17:1-13). 압살롬이 자기 의견을 무시하고 후새의 제안에 따르자 아히도벨은 반역이 실패할 것을 뻔히 내다보고 자살합니다(17:23). 사무엘서 저자는 아히도벨의 결정 과정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다고 주석합니다.

14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삼하17:14)

아히도벨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시자 물거품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의 지략보다 후새의 충성을 귀히 보신 것입니다. 후새의 기밀을 다윗에게 전달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그의 두 아들도다윗에게 충성한 청년들이었습니다. 다윗 일행이 오랜 광야 길을 거쳐 마하나임에 도착하자 소비, 마길, 바실래가 침구와 취사 도구, 그리고 많은 음식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비록 다윗이 과거에 범죄했으나 회개했으며 아직도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 이므로 흔들림 없는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으로 모질게 매를 때리시면서도 이러한 충성스러운 사람들,모두 떠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남겨두심으로 위로해주신 것입니다. 비록 사랑하는 자식과 친구에게서 배신 당하는 때에도 충성스러운 자들이 침뱉지 않고 곤경 속에 있는 다윗을 붙잡아 일으켜준 것입니다.

압살롬의 죽음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드디어 에브라임 숲속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압살롬의 군대가 대패하여 2만 명이 전사했는데,그 전투에서는 칼에 맞아 죽은 자보다 숲에서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 아마 숲으로 유도 작전을 쓴 다윗의 장군들에게 속아 많이 죽었던지,아니면 그곳의 지형이 큰 웅덩이들이 많고(18:18), 또한 돌풍 같은 이상 기후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관심은 압살롬에게 집중됩니다.

9압살롬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삼하18:9)

압살롬은 평소 자기 외모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머리털 때문에 어떤 희극이나 비극에서도 구상해내기 힘든 모습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전투에 나가기 전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18:5)는 다윗왕의 명도거역하면서 요압은 창을가지고가서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잔인하게 찔렀습니다(18:14). 그는 자식이 없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 적이 있었습니다(1&18). 압살롬의 기념비는 후손들에게 경고도 되었겠으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울과 같이 압살롬 역시 자기 이름을 위해 부왕을 반역하는 왕권 찬탈에 나섰다가 비참하게 죽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입니다(17:14 참조). 압살롬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윗의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33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우리는 다윗의 심정을 조금은 동정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죽음, 그 죽음이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고, 그 아들 역시 불의를 행하다가 불의의 삯으로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반역자 압살롬과의 전투에서 목숨 바쳐 다윗을 위해 싸운 충성스러운 용사들의 희생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용사들은 승전의 기쁨보다 오히려 왕 때문에 패잔병 같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애바 로서의 정에 이끌려 ‘왕 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었습니다. 압살롬 역시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면,다윗은 밧세바와의 첫 아기가 죽었을 때와 같은 신앙적 자세를 가졌어야 마땅했습니다(12:20~23 참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다윗

저자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의 기록에 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기록은 간단히 다루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무너져내린 다윗의 마음을 돌이킨 것은 협박에 가까운 요압의 직언 때문이었습니다(19:5-8). 다윗은 이성을 회복하여 성문으로 나가 앉아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왕으로서의 위치를 되찾은 것입니다. 

다윗은 반역이 진압되었으나 즉시 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근신하면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다시 왕으로 모시는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때를 기다렸습니다. 특히 압살롬을 지지했던 유다 지파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왕권 회복의 시기를 늦추면서까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보내어 유다 지파를 회유하는 데 힘썼습니다(19:11-13). 회유책 가운데 하나로반란군의 사령관아마사를통일 왕국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발표는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4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삼하19:14)

드디어 유다 지파의 지지를 확인하게 되자, 다윗은 왕권은 회복하기 위해 예루살렘 환도 여행을 출발했습니다(19:15). 다윗은 자신의 왕권 회복을 당연시하지 않고, 다시 한번 임명과 백성의 승인 과정을 거쳐서 확인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통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 받을 때와 같은 절차를 스스로 택하면서 재신임을 받고자 하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5:1-3 참조).

마하나임에서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다윗은 넓은 도랑을 가진 정치가답게 배신자들에게 관용을 베품니다. 용서와 화해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입니다. 독을 품고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와 간교하게 이용했던 시바를 용서했고, 함께 가지 못한 므비보셋과 바실래에게 은총을 베풀었습니다(19:16-39).

다윗이 시므이 같은 비루한 배신족들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죄의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과오로 국난(國難)을 당해 찢기고 상처 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정치적 몸짓이기도 했습니다. 

후에 왕국이 안정을 되찾아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도하면서 시므이를 처형할 것을 명한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왕상 2:8~9).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저주한 자를 처형하지 않을 때,그것은 국가의 기강이 무너질 것을 대비한 조치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나뉘어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일은 진통을 겪으며 상당한 시간이 홀러야 했습니다.

20장에는 다시 베냐민 사람 세바의 반역 사건이 나옵니다. 다윗을 모셔오는 데 소외되어 섭섭병에 걸린 이스라엘 열 지파가 일시적이나마 세바를 지지해서 또다시 민족 분열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 영향이 크지 않아 요압과 아벨의 어느 지혜로운 여인의 도움으로 세바를 죽이고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비로소 다윗의 왕권은 확고하게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20장 마지막 부분에는 왕권 회복 후 새롭게 임명된 내각의 이름이 나옵니다(20:23-26). 이것은 넘어졌던 다윗이 다시 일어났고, 부서졌던 왕국이 중건 된 사실을 분명하게 매듭짓는 표현일 것입니다.

회복의 은총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다윗과 그의 왕국은 마치 끝이 안 보이는 캄캄한 터널을 덜그덕거리며 가는 화물 열차같이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 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압살롬 반역 전후로 다윗이 중병을 앓았다가 회복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건강의 회복, 신앙의 회복을 체험한 다윗은 예루살렘과 왕권, 그리고 다시 통일 왕국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1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시고 분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2주께서는 땅을 진동시켜 갈라 놓으셨습니다. 이제 그 틈을 메우소서. 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4그러나 주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주께서는 깃발을 주셔서 진리를 위해 그것을 달게 하셨습니다.
(시60:1,2,4,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거룩한분노의 매,연단의 채찍을 맞고는 있으나 다윗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훌을 의지하여 “이제는우리를 회복시켜주소서”라고 울부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과 승리의 깃발을 주셨다는 말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간증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의 경주를 달리다가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켜세워 달릴 수 있는 힘을 주시며, 죄로 인해 추해지고 상처 받은 인생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사죄의 은혜를 베푸셔서 본래의 모습으로 깨끗하고 건강하게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51:12, 렘 30:17, 단 11:35).

하나님께서는 다윗왕뿐만 아니라 애굽인을 살해한 후 광야에 망명갔던 모세를 회복시켜 다시 민족의 지도자로 쓰셨으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던 베드로를 회복시켜 영적 지도자의 직분을 다시 주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지도자 특히 간음한 신앙 지도자가 회개했다고 해서, 부도를 낸 사업가를 기업체에서 다시 임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다시 영적 지도자의 직분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방법,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 지도자의 회복을 잘못 다루면 자칫 죄를 경시하는 악영향이 독버섯처럼 성도들에게 퍼져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뭐,다윗도 그랬는데” 하는 식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의 심각성, 그 순간적 쾌락이 가져다주는 지속적이고 무서운 결과를 사무엘서의 저자는 신자들의 마음에 사무치도록 힘을 주어 기록한 것입니다.

신앙 지도자의 회복은 직분에 대한 회복 이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여 부서진 인격의 집이 피눈물 나는 연단의 기간을 거쳐 새롭게 중건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 다시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 외인에 게서도선한증거를 얻은'(딤전 3:2~7, 딛 1:6~9) 그 인격의 진실성이 입증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 지도자의 타락은 범죄 사건 자체보다 더 심각한 신앙 인격의 결정적 결함의 문제가내포되어 있기 때문압니다. 회개의 눈물을 홀렸다고 너무 쉽게 그 직분을 회복했기 때문에 지도자 자신뿐 아니라, 그를 신임하던 수많은 성도들, 그리고 순수성을 지키던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는 피해와 악영향이 얼마나 큰가는 근년에 미국의 TV 전도사들의 추행과 그들의 회복 과정의 문제들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일생 동안쌓은건강, 명예, 사업, 인간관계가죄나실수로 하루 아침에 무너져내리는 처절한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 깨어진 질그릇같이 되었습니다”(시 31:12,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친히 보여주셨듯이 파상 된 그릇 조각들로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와 같습니다(렘 18:1~

9). 부서진 개인의 인생, 신앙 인격, 깨어진 가정을 다시 새롭게 빚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열된 교회나 민족도 다시 자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느헤미야를 통해 중건하게 하듯 믿음의 사람들을 다시 세우고 공동체를 재건하십니다. 다윗의 하나님, 그리고 죄로 인해 인류가 '실낙원' 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락원' 할 것을 비전 가운데 보았던 존 밀턴(John Milton, 1608-74)의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위로의 아버지, 참 소망의 주님이십니다(고후 1:3-7).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35정한 때가 되어 마지막이 올 때까지 지도자들이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단련을 받아 깨끗해지고 빛날 것이다.(단11:35, 공동번역)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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