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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죄와 벌」도스토예프스키 - 작품평(4)

by 비앤피 202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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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일치"는 이 비극 소설에서 "장소의 일치"만큼이나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에서 시간을 재는 방법은 현실 세계에서의 방법과는 다릅니다. 그의 주인공등른 수학적인 시간이 아니라, "현실 지속"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베르그송) 그의 세계 속에서 시간은 무한하게 늘어나거나 축소되고, 거의 사라지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의 정신적인 긴장도에 따라 시간의 조각들은 크고 작은 분량의 사건들을 담아 냅니다. 발단 부분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진행되지만, 시간의 진행이 고조되는 부분에서는 시간이 점차로 빨라지다가, 절정 바로 직전에는 회오리치듯이 빨라집니다.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철저하게 의인화되어 영혼을 부여받습니다. 즉, 시간도 "인간 의식의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죄와 벌>에 대한 계획안에서도 작가는 까뜨꼬프에게 라스꼴리니꼬프가 "범죄 직후부터 결정적인 파탄에 이르기 직전까지 거의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쇄본에서는 이 기간이 더욱 축소됩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실은 소설 속에 나오는 온갖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단 2주일이라는 기간 안에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이야기는 아주 갑작스러운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저자는 "7월 초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이라는 말로 하루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날에 주인공은 전당포를 털 "시험"을 해보고, 마르멜라도프와 알게 됩니다. 둘째 날에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은 다음, 도시를 헤매고 다니다가 센나야 광장에서 우연히 노파가 다음 날 저녁 7시경에 지베 혼자 있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 부분에서 제 1부는 종결됩니다. 제1부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 즉 살인의 준비와 실행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2부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시간에 대한 의식이 흐려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병이 들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듭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누워 있는 지가 한 달이 넘은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모든 일이 바로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난 것 같기도 했다.(173페이지)

나흘이 지나서야 주인공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옵니다. 시간의 리듬은 급속도로 빨라집니다. 제3부와 제4부의 사건들의 고작 이틀 안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대단원에 이르기 전에 주인공은 또다시 시간적인 질서에서 일탈합니다.

라스꼴리니꼬프에게는 이상한 시기가 도래했다. 안개가 갑자기 그의 앞에 드리워져, 빠져나갈 길 없는 음울한 고독 속에 갇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 그는 그때 많은 것을, 이를테면, 몇 가지 사건의 시간과 날짜를 마구 혼동하고 있엄음에 틀림없었다.(645페이지)

세계는 자신의 실재성을 상실하고, 시간적이고 인과적인 연관 관계는 범죄자의 의식 속에서 흐려집니다. "죽어 가는 사람의 병적인 무관심 상태와 흡사한" 그의 무기력은 존재 밖의 의식 작용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초시간 속에서의 방황을 대비시킨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섬세한 예술적인 기법입니다. 사상가이자 이론가인 라스꼴리니꼬프는 시간의 밖에서 존재하고, 활동가로서의 라스꼴리니꼬프는 시간의 밖에서 존재하고, 활동가로서의 라스꼬리니꼬프는 시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의 범죄는 사상과 현실의 접합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범죄는 정확한 시간의 측정하에 저질러지도록 결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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