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은 그 정신적인 면모로 볼 때,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그다지 많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의 소설들속에서 날씨에 대한 묘사를 발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날씨에 대한 묘사가 일단 나오면, 우리는 그 안에 언제나 정신 상태에 대한 묘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배경과 마찬가지로 자연 현상은 인간의 내면에만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7월 초 찌는 드시 무더운 날"에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는 도시를 헤매고 다닙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그는 조용히 편안한 마음으로 네바 강과 선명하게 불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93페이지) |
범죄를 저지른 다음 날, 경찰서로 출두하러 가는 길에 살인자는 또다시 태양 빛에 눈이 부심을 느낍니다.
거리는 여전히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더웠다. 최근 며칠 사이에 비가 한 방울이라도 내렸다면 좋았을 텐데, 다시 먼지, 벽돌 그리고 석회, 또 다시 노점과 선술집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 끊임없이 오가는 주정꾼들, 핀란드 출신 행상들, 반쯤은 부서진 마차들이 보였다. 햇빛이 그의 눈에 정면으로 내리쬐어서, 앞을 보면 눈이 아팠고, 머리는 현기증으로 인해 핑핑 돌았다. 그것은 햇볕이 강렬한 날, 열병 환자가 거리에 갑자기 나왔을 대 흔히 겪게 되는 느낌이었다.(140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밤의 사나이입니다. 그의 작은 방은 언제나 어둡습니다. 그는 어둠에 속한 오만한 영혼이며, 지배를 갈망하는 그의 꿈은 그 어둠 때문에 좌절됩니다. 태양이 내리쬐는 지상의 삶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으며, "낮의 의식"은 그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바로 "사상"이 이론가를 행동하도록 부추깁니다. 그 사상으로 인해 그는 추상적인 사유의 어스름에서 빠져나와 삶에 뛰어들고, 거기에서 현실과 부닥뜨리게 됩니다. 대낮의 햇빛은 야행성 조류들의 눈을 멀게 하듯 그의 눈을 멀게 합니다. 추상적인 사고의 냉정함에서 벗어난 그는 여름의 빼쩨르부르그, 무덥고 악취 나며 숨이 막히는 도시 위에 서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예민한 신경은 자극을 받아 발병하고 맙니다. 태양은 그의 무기력과 허약함을 폭로합니다. "그는 제대로 죽일 줄도 모른 채"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다가, 불나방처럼 곧바로 뽀르피리 빼뜨로비치의 그물 속으로 날아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태양은 사산된 이론을 이기는 "살아 있는 삶"의 상징입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석양에 환하게 비치는 노파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무서운 생각이 어른거립니다.
그때도 이렇게 해가 비치겠지......!(17페이지) |
태양 앞에서 느끼는 범죄자의 공포에는 파멸에 대한 예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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