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은 서막과 에필로그가 있는 5막짜리 비극입니다. 서막(제1부)는 범죄가 준비되고 실행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수수께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은 하숙집 여주인을 두려워하고, '우울증과 비슷한' 병적인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은시계를 고리대금업자 노파에게 맡기러 가면서 어떤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서, 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 .... 정말 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12페이지) |
그러나 '살인'이라는 단어는 발설되지 않았습니다.
오, 맙소사! 이 모든 게 얼마나 혐오스러운 짓인가! .... 정말로 내 머릿속에서 그렇게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단 말인가? .... 무엇보다도 더럽다. 불쾌하고 추악하다, 추악하다....!(20페이지) |
그가 방구석에서 한 달 내내 심사숙고한 '추악한 꿈'은 그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팽팽한 갈등 상태에 놓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제시됩니다. 그는 자신이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느낍니다. 그의 사상은 순전히 이론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지껄이는 버릇이 생긴 것은 최근 한 달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누워서.... 있을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망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12페이지) |
그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몽상가는 실제적인 면에서 자신이 보이는 무능력을 경멸하고, 낭만주의자는 살인의 '추악성'을 미학적인 측면에서 수용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분열은 주인공의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 됩니다. 선술집에서 마르멜라도프와 마주 앉은 장면에서는 두 가지 모티프가 나타납니다. 그 모티프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인 슬픔과 희생의 무의미함(소냐)에 대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편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미룰 수 없는 결정을 내리도록 부추깁니다. 그의 여동생은 실무적이지만 경멸스러운 루쥔에게 몸을 팔아 자신을 희생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소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소냐, 소냐 마르멜라도바, 세상이 존재하는 한, 소냐는 영원하리라!(70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그 희생은 그를 위한 것입니다. 그가 그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까요? 만일 그가 그 희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가난일까요, 굶주림일까요? 파멸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삶을 아예 거부하든지!"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렇게 소리 질렀다. "있는 그대로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활동하고 살고 사랑하는 모든 권리를 거부하고, 자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목 졸라 죽여 버려야만 한다!(72페이지) |
모순은 아주 첨예한 형태로 제가됩니다. 기독교적인 도덕률은 순종과 희생을 설파하지만, 라스꼴리니꼬프는 신앙심을 잃은 신을 믿지 않는 휴머니스트이므로, 그에게서 옛 진리는 이미 거짓이 됩니다. 그는 순종과 희생이 인간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그 파멸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과연 인간은 '생명에 대한 권리'를 지니지 못하는 걸까요? 과거의 도덕적인 법칙을 파괴하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면, 과연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은 도덕적인 일이란 말인가요?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온갖 종류의 슬픔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속에서 싹튼 후 자꾸 자라고 쌓여 요즘에 와서는 거부할 수 없이 해결을 요구하는 무시무시하고 강렬하고 환상적인 질문들의 형태로 집결되고 성숙해져서 그의 마음과 이성을 괴롭혔다(72페이지) |
어머니의 편지는 주인공의 운명에 전환점 역활을 합니다. 지금까지 누워서 추상적인 문제만 해결했던 그에게 이제는 삶 자체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몽상가에게 가해진 불의의 습격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달 동안 그는 '환상적인 사상'으로 자위했지만, 이제 그의 의식은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런데 지금..... 지금은 그것이 돌연 망상이 아닌, 무언가 전혀 낯설고 새롭고 무서운 것이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이것을 대번에 알아챘다. 그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고 눈도 아득해졌다.(73페이지) |
사상은 이제 실현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곧장 새로운 존재로 완전히 변화되지는 못합니다. 이성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지만, "본성"은 아직도 낡은 도덕적인 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추상적인 몽상은 점차로 의식을 지배해 가고, '본성'은 절망적으로 그 의식과 싸우며, 공포에 질린 채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려고 애씁니다. 본성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작가는 병의 모티프를 도입합니다. 주인공의 병적인 상태는 끊임없이 강조됩니다. 살인 이후에도 그는 나흘 동안이나 신경성 열병에 걸려 눕고, 그림으로써 그의 병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이렇게 라스꼴리니꼬프는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스스로의 예를 통해서 증명합니다. <범죄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그는 '범죄의 실행은 언제나 병을 동반한다'고 확언하지 않았던가? 병만이 좌절한 낭만주의자의 '본성'을 꺾고, 살인의 '추악함'에 직면하여 유미주의자의 혐오감을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마침내 '본성'은 '추악한 모상'에 총공격을 가합니다. 말에 대한 꿈에는 라스꼴리니꼬프가 겪은 모든 고통, 아픔, 세계적인 악에 대한 공포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미꼴까는 허약한 말의 눈을 채찍으로 때리고, 마침내는 말을 쇠지렛대로 죽여 버립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봅니다.
소년은 울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눈물이 쏟아졌다. ..... 소년은 군중 속을 헤치고 적갈샐 말에게로 달려가, 죽은 말의 피투성이가 된 머리를 붙잡고, 말의 눈과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92페이지) |
악행 앞에서 느끼는 신비스러운 공포가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대수학적인 기호로서가 아니라 흘린 피로서의 살인을 눈으로 목격하고 뒷걸음질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미꼴까처럼 누군가를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끈적거리는 따뜻한 피를, 그러므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오, 하느님! 그래도 난 결행할 수 없다! 난 감당하지 못할 거야.... "주여!" 그는 기도했다. "제게 갈 길을 보여 주소서, 전 그 저주스러운.... 몽상을 버리겠나이다...(93페이지) |
어린 시절에 대한 꿈은 유년 시절에 그가 자녔던 신앙을 부활시켜서, 신을 믿지 않던 그로 하여금 신에게 기도하도록 만듭니다. 그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렴, 사랑스러운 아들아, 아직 네가 어리고, 네 아버지도 살아 계셨을 때, 네가 내 무릎에 앉아서 종알종알 기도하던 그때 그 시절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말이다!(63~64페이지) |
'본성'은 라스꼴리니꼬프로 하여금 독, 즉 범죄에 대한 생각을 버리게 하고, 그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것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자유 자유! 그는 이제야 그 주문, 그 마술과 마력,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93페이지) |
그러나 선의 승리는 확고하지 않습니다. 사상이 아직 그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지 못했기 대문에 최후의 폭발적인 반항이 지나가자 원동력, 즉 '운명'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조절하지 못하고 범죄에 끌려 들어갑니다. 신비하고 우연한 사건들이 살인자를 희생양에게로 집요하게 이끕니다. 그는 우연히 센나야 광장을 지나다가 거기서 우연히 '내일 7시경'에 노파가 집에 혼자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가 처음에 느꼈던 놀라움은 점차 공포로 뒤바뀌었고, ....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또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갑자기 더 이상 자신에게는 판단의 자유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이 느닷없이 움직일 수 없도록 결정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96페이지) |
살인을 저지르는 날에도 그는 기계적으로 행동합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잡아, 반박할 여지도 없이 맹목적으로, 반항하지도 못하게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옷자락 끝이 바퀴에 휘말려서, 그도 함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인에 대한 의지는 인간을 맹목적인 필연성의 권세에 내줍니다. 그는 자유 의지를 잃어버리고 몽유병자처럼 행동합니다. 모든 일들이 뜻하지 않게 우연한 형태로 일어납니다. 그가 미리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도끼는 부엌이 아니라 경비실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리자베따를 죽이고는, 문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훔치는 일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잠든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몽유 상태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잠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망각 상태에 빠져 버렸다.(130페이지) |
살인으로 서막은 끝을 맺습니다. 주인공도 우리도 아직은 범죄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로 남게 됩니다. 비극의 제1막(제2부)은 범죄가 범죄자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무서운 정신적인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신경성 열병에 걸려 거의 정신 착란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며 자살하려고 합니다.
정말로, 참으로 시작된 것일까? 징벌의 시간이 도래한 것일까?(135페이지) |
그는 기도를 하려고 하다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터뜨립니다. 웃음은 곧 절망으로 변합니다. 여주인에게 꾼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서에서는 그를 호출합니다. 그는 범죄가 폭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실을 고백하리라고 마음 먹습니다. 경찰서에서 그의 신경은 그런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마침내 그는 기절하고 맙니다. 이 사건은 그의 운명에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살인자가 사무관 자묘또프의 관심을 끌었으므로, 그는 이 이상한 대학생에 대해 예심 판사인 뽀르피리 빼뜨로비치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기절로 인해 그를 향한 공격의 포문은 열리게 되고, 예심 판사가 그의 주변에 친 포위망에 걸려들게 됩니다. 살인을 저지를 때 몰려든 감정과 감각의 파도 속에서 라스꼴리니꼬프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감정은 오로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괴롭고도 끝없는 고독감과 음울한 소외감이 갑자기 뚜렷하게 그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153페이지) |
그는 양심의 가책에서 오는 형벌을 기다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그를 찾아옵니다. 그것은 인류라는 가정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신비로운 의식입니다. 살인자는 도덕적인 법칙보다도 더 큰 무엇, 즉 정신적인 세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그 어떤 것을 파괴한 것입니다. 훔친 물건들을 돌 밑에 숨기고 난 뒤 그는 갑자기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제기합니다.
만일 정말로 네가 이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바보스럽게 어쩌다가 그냥 저지른게 아니라, 만일 진정으로 어떤 일정하고 확고한 먹적이 있었던 거라면, 너는 왜 지금까지도 지갑을 들여다보지 않았고....(162페이지) |
휴머니스트이자 몽상가인 그는 좌절을 겪습니다. 실질적으로 일을 저지를 때 그는 완전히 무능력을 드러낸 겁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거듭 실수만 저지르다가 완전히 당황해 버립니다. 만약 그가 실제로 강도 짓 자체만을 하기 위해 살인했다면, 왜 그는 훔친 물건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걸까요? 만약 강도 짓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이 일은 어쪄다가 '바보스럽게' 저질러진 일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본주의적인 동기라는 것도 구실에 불과합니다. 그의 의식 속에서 일어난 사고의 이런 '급변'은 사흘간의 의식 불명 상태로 인해 더욱 강조됩니다. 주인공이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의 내면 속에는 옛 사람, 즉 '인류의 친구이자'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모습은 이미 죽은 상태입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무한한 고독감을 느끼지만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 순간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가위로 도려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169페이지) |
사람들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극도로 흥분해서 외칩니다.
나를 내버려 둬! 나를, 모두 다! .... 언제쯤 나를 내버려 둘거야, 이 고문자들아! 나는 너희들 따윈 두렵지 않아! 나는 아무도, 아무도 이젠 두렵지 않아! 저리 나가! 난 혼자 있고 싶어, 혼자 있고 싶다고! 제발!(223페이지) |
강한 개성, 악마처럼 교만하고 고독한 개성의 새로운 의식은 이렇게 해서 탄생됩니다. 공포와 소심함, 병은 사라집니다. 주인공 속에 존재하는 무서운 에너지가 일깨워지고,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으며 자신의 뒤를 밟는다고 느끼면서도 환희를 느끼며 그 투쟁에 뛰어듭니다. 선술집에서 자묘또프를 만난 그는 그에게 대담한 도정장을 냅니다.
그런데 만일 노파와 리자베따를 죽인 사람이 바로 나라면 어떻게 하겠소?(240페이지) |
그는 참을 수 없는 쾌감이 뒤범벅된 어떤 동물적이고 신경질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는 노파가 살던 아파트에 들어가서, 종을 울리고는 피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그리고 그 집을 떠나면서 경비원에게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남깁니다. 그의 내면에서 타기 시작한 새롭고 강력한 영혼은 그의 육체를 굴복시킵니다. '본성'의 저항은 꺾여 버립니다. 경멸감을 느끼며, 무서운 것을 모르는 투사는 공포와 섭리에 대해서 희상합니다. 그는 탄성을 지릅니다.
내겐 인생이 있다! .... 그 늙은 할망구와 함께 나도 죽은 것은 아니다! 천당에서 고이 잠드시길, 그걸로 된 거다. 노파도 이제 평안히 쉬셔야지! 이성과 빛의 왕국이 도래했다.... 의지와 힘의 왕국이 온 거야.... 어디 두고 보자! 한번 겨뤄 보자고!(274페이지) |
그는 어떤 어두운 힘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 힘을 일깨우듯이 이렇게 오만불손하게 선언합니다. 비극적인 주인공은 운명에 도전합니다. 새롭고 '강한 인물'은 '짐승과 같은 교활함'을 부여받고, 전무후무한 대범함과 삶에의 강한 의지 그리고 악마적인 교만함을 얻게 됩니다.
제2막(제3부)은 강한 인물의 투쟁에 대한 막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받은 이런 새로운 인상을 간접적인 인물 묘사의 방식으로 공고화시킵니다. 라주미힌은 친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로쟈를 안 지는 1년 반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둡고 음울하고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친구예요. .... 때로는.....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정할 때가 있어요. 정말로 그에게는 두 가지의 서로 대립되는 성격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자기 자신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그게 또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예요. ....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312~314페이지) |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폐병에 걸린 하숙집 여주인의 딸과 결혼하겠다던 아들의 환상적인 계획에 대해 말합니다.
그 애가 결혼을 강행하지 않은 것이, 내 눈물과 내 애언과 내 병과 그리고 괴로움에서 올지도 모를 내 죽음과 우리의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애는 그 모든 장애물을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뛰어넘었을 거예요.(314~315페이지) |
이렇게 첫 번째 성격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라스꼴리니꼬프의 '두 번째 성격'이 밝혀집니다. 즉, 그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 죄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는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마저 '평온한 마음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인 겁니다.
주인공은 뽀르피리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는 무위와 미지의 상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는 '서로의 힘을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는 참을 수 없습니다. 예심 판사 뽀르피리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비범인'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서술합니다.
'비범한'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즉,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뿐입니다(377페이지) |
라주미힌은 이 이론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포스러운 부분을 간파합니다.
네가 한 모든 말 중에서 정말로 '독창적인 것'은, ...... 내 생각에는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네가 '양심상' 유혈을 허용한다는 점이야(383페이지) |
무서운 것은 라스꼴리니꼬프의 이론이 기독교적인 도덕관을 단순히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반기독교적인 도덕관을 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는 '피를 허용하는 나름대로의 양심'이 있습니다. 오만한 악마는 고독한 위대함을 느끼며 슬퍼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위대한 슬픔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385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신(人神)의 모든 비극은 바로 이짧은 말 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후 갑자기 좌절이 그의 뒤를 따릅니다. 뽀리피리와의 첫 만남 이후에 주인공은 완전한 자기 비하를 겪게 됩니다. 한 상인이 그에게 와서 '조용하지만 또렷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그가 '살인자'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이며,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렇다면 물증이 있단 말일까요? 그렇다면 그는 제대로 죽일 줄도 몰랐다는 말이 될 겁니다.
나 자신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 자신을 예감했으면서도', 나는 어떻게 도끼를 들고 온몸에 피를 적실 수 있었을까!(398페이지) |
아니, 그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어서 뛰어넘고 싶었다. ....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죽인 것이다! 나는 원칙을 죽였지만, 도저히 그것을 뛰어넘을 수가 없어서, 아직 이쪽에 남아 있는 것이다. .... (399페이지) |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시뫄 자신의 힘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 그의 수치스러운 연약함을 증명합니다. 아니, 그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살해당한 이 보다 더 추악하고 더러운, 미학적인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 저속함이여! 오 비열함이여....! 오, 나는 칼을 들고 말을 탄 선지자의 심정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알라신이 며하니, 복종하라. '떨고 있는 피조물이여.! (400페이지) |
위기는 무서운 꿈으로 완결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노파의 정수리를 도끼로 내리치지만, 노파는 고개를 속인 채 온 힘을 다해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자제하며 남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소리를 죽여 웃기 시작합니다. 희생자는 살인자를 비웃습니다. 희생자는 살아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도끼를 내리치고 또 내리치지만, 그녀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질 뿐입니다. 그는 노파를 죽일 수 없습니다. 노파는 불멸의 존재인 겁니다. 얼마 전만 해도 라스꼴리니꼬프는 조롱하듯이 그 노파와 다음과 같이 영원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노파도 이제 평안히 쉬셔야지!(274페이지) |
그런데 지금은 그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 있고, 죽은 노파는 살아 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마치 가위로 도려내듯이' 떠나 버리지만, 그 노파와는 헤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피로.... 영원히 결합되어 버린 겁니다.
비극의 제3막(제4부)은 라스꼴리니꼬프의 투쟁이 절정에 이르는 부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인공이 승리한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승리는 승리가 아닌 패배입니다. 그는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의 앞에는 그의 누이를 괴롭히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서 있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비극적일 정도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두 개의 서로 대립되는 성격'이 존재합니다. '강한 사람'은 몸부림을 치며, 그의 내면 속에 있는 '휴머니스트'와 싸우고, '원칙들'과 '이상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합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꼴리니꼬프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지만, 이미 온갖 선입견으로부터 완전히 교정을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주인공이 앞으로 겪게 될 만한 운명들 중 하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형이상학적인 유사점이 존재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는 같은 들판에 열린 딸기라고 했던 겁니다." 그들은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꼴리니꼬프보다 더욱 자유롭고 더욱 용감하며 갈 데까지 간 사람입니다. 대학생은 '한계를 뛰어넘어', '양심상 유혈을 허용하지만', 어쨌든 '휴머니즘', '공의', '고원하고 아름다운 것'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있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영원한 삶이란 것이 그에게는 '시골집의 목욕탕'과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곳에 거미들 혹은 그 비슷한 어떤 것밖에 없다면 어떨까요.(423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혐오감을 느끼며 묻습니다.
정말 당신 머리엔 좀 더 위안이 될 만하고, 지당한 다른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단 말인가요!(423페이지) |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비웃습니다. 살인자인 그가 공정성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가 도덕성을 설교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 얼마나 위선적인 행동이란 말인가요. 왜 라스꼴리니꼬프는 두냐를 모욕한 사람의 돈, 1만 루블을 그녀에게 전달해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가!' 라스꼴리니꼬프는 낡은 도덕률을 폐기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움, 고상함, 강렬한 인류애적인 잡동사니에 얽매여 있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더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선과 악은 상대적이고, 모든 것은 허용되며, 모든 것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남이 있는 것이라고는 세계를 둘러싼 권태와 속악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권태로움을 느낍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즐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기도박도 하고, 감방에도 들어가고, 3만 루블의 돈을 갚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에게 팔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갈지도 모르고, 북극 탐험을 하려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다른 세계의 파편들은 유령이 나타나지만, 이 또한 얼마나 추악한 일인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권태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입니다. 극단은 서로 일맥상통하며, 선과 악에는 차이가 없으니, 남은 것은 어리석은 무한성과 무차별과 무의미함뿐입니다. 스비드가일로프는 악한이 아닙니다. 그는 관대하게 두냐를 풀어 주고 돈을 나눠 주며, 마르멜라도프의 가족들을 도와줍니다. 그는 악행에서 자신의 자유를 시험하고, 그 자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두냐에 대한 사랑은 일시적으로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는 권태로 말미암아 자살합니다. 초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의 힘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멸시키고야 맙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색욕가입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무서운 범죄들 때문에 양심에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 범죄란 부인을 살해 한 일, 하인 필립이 자살한 일, 그에 의해 능욕당한 14세 소녀가 자살한 일들입니다. 그는 더럽고 음탕한 삶을 사랑하지만, 그의 양심은 평온하며 혈색마저 좋습니다. 그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어두운 분신으로서 그의 옆에 서 있습니다. 그는 주인공의 악몽에서 파생된, 즉 그의 꿈에서 나온 인물입니다. 주인공은 라주미힌에게 묻습니다.
너 그 사람을 본 게 확실한 거야? 정말 제대로 봤어? ... 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들어... 이 모든 게 환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야(430페이지) |
이반 까라마조프도 그처럼 악몽을 꾼 다음, 알료샤에게 방문객을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악마'입니다. 분신과의 만남은 주인공의 의식 변화에 새로운 단계로 작용합니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는 현실감각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제 플롯은 대단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와의 장면은 소냐와의 장면에 대립됩니다. 악한 천사에 선한 천사가 대립되고, '거미줄로 가득 찬 목욕탕'은 나사로의 부활과 대립됩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악마적인 삶의 길이 그를 허무의 권태로 이끌어 준다고 말합니다. 소냐는 딴 길을 보여 주며, '내가 길이다'라고 말하는 이의 형상을 비춰줍니다. 다만, '기적'만이 살인자를 구할 수 있으므로, 소냐는 그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와의 대화처럼 소냐와의 대화도 형이상학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희생의 무의미함과 동정의 무익함, 파멸의 피할 수 없으에 대한 주인공의 논지에 대해 소냐는 기적에 대한 믿음으로 대답합니다.
하느님이 그런 무서운 일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래요? 어쩌면 하느님은 안 계실지도 모르잖소.(469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는 갑자기 소냐에게 복음서에 나오는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소냐는 읽습니다. 그녀는 '이 사람, 마찬가지로 눈이 멀어서 믿지 않는 이 사람 역시도 이제 듣게 될 것이고, 그 역시 이제 믿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 이제 곧!'이라고 믿습니다. 낭독이 끝나자 라스꼴리니꼬프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무언의 질문에 해답을 얻습니다.
어떻게 된 셈일까? 혹시 그녀는 기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발광의 징후들은 아닐까?(473페이지) |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인자는 여전히 부활을 믿지 않고, 소냐가 나흘 만의 부활을 믿는 것은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냐를 '위대한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은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자기 몸에 손을 댔고, 스스로를 죽여 버렸어.... "자기 생명"을 말이야. (어차피 마찬가지야!) (482페이지) |
이 무서운 말, 괄호 안의 (어차피 마찬가지야)라는 말은 악마적인 거짓이자 증오로 가득 찬 말입니다. 친구들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희생하는 것이 가까운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행동이라고 보다니! 소냐는 공포를 느끼면서 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 "어떻게 하느냐고?" 부숴야 할 것은 단번에 때려 부수어 버려야해, 그러면 돼. 그리고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거야! 뭐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나중에 이해하게 되겠지...... 자유와 권력,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권력이야! 떨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모든 개미 군단들에 대한 권력...!(482~483페이지) |
복음서의 낭독은 악마적인 오만함을 폭발시킵니다. 부활에 파괴가 대립되고 (모든 것은 부숴야 한다), 순종에 권력욕이, 신인(神人)의 얼굴에 인신(人神)의 형상이 대립된다.
뽀르피리 빼드로비치와의 두 번째 결투는 범죄자의 오만한 도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형식을 갖춘 신문'을 요구합니다. 예심 판사는 살인을 저지른 이후의 그의 행동을 자세히 분석하고 그의 실수들을 열거하며 '그가 심리적으로 도망칠 수 없다'고 증명합니다. 신문을 당하는 사람의 증오심은 매 순간마다 증폭됩니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512페이지) |
그는 절규합니다.
이 저주받을 어릿광대 같으니! .... 너는 거짓말을 하면서 나를 조롱하고 있는 거야. 내가 스스로 정체를 폭로하도록...(512페이지) |
그러나 갑자기 반전이 일어납니다. 뽀르피리는 그를 상인과 대질시킴으로써 그가 살인자임을 폭료하려고 하지만, 갑자기 칠장이인 니꼴라이가 라스꼴리니꼬프를 대신하여 자기가 노파를 살해했다고 자백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예심 판사의 함정과 그가 말하는 '서로 다른 끝을 가리키는 심리학'을 비웃습니다.
이제부터 또다시 싸워보자(525페이지) |
그는 오만하게 외칩니다. 제4막(제5부)은 대단원에 이르기 전에 플롯의 진행이 늦추어지는 부분입니다. 제4막의 대부분은 마르멜라도프의 추도식 장면에 할애됩니다. 소냐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는 강한 인간의 자의식이 마지막으로 조명됩니다. 휴머니증에 입각한 범죄 동기의 잔재는 경멸스럽게 버려집니다.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죽인거야(615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는 경험을 통해 자기 개성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했던 겁니다.
나는 그때 알고 싶었던 거야. 어서 알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이'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말이야. 내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아니면 넘지 못하는가! 나는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615~615페이지) |
그는 인간 '무리'에 대해 엄청난 경멸감을 느낍니다. '벌벌 떠는 피조물'은 강철 같은 의지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강한 사람은 세계의 질서에 대항하여 일어납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 불합리한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꼬리를 붙잡아 던져 버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리고 왜 지금도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태양처럼 명백하게 떠오른 거야! 그래서 나는.... 내가 감행하고 싶었어. 그래서 죽였어....(615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지하 생활자의 반항을 계승하고, 대심문관에게 독재의 길을 열어 줍니다. 힘의 도덕률은 폭력의 철학으로 발전합니다. 초인은 지상의 공작으로서 적그리스도임이 판명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경멸 어린 말투로 결론을 내립니다.
난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죽였어.....(609페이지) |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합니다. 자기가 권력을 잡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그 권리를 지니지 못한 것이며,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라는 사실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노파를 죽인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죽였어.(616페이지) |
하느님은 당신에게 벌을 내려 악마에게 내어 주신 거예요....(614페이지) |
살인자는 기꺼이 그러한 설명을 받아들입니다.
악마가 나를 유혹했어. ..... 노파를 죽인 것은 악마이지. 내가 아냐....(616페이지) |
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자기의 패배가 누구 탓인지, 신의 탓인지 아니면 악마의 탓인지에 대한 문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가 만일 '이'라면 누군가가 그를 조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소냐는 그에게 대지에 입 맞추고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고통을 받아들이고, 죄를 속죄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고통도 속죄도 믿지 않습니다. 소냐의 사랑은 그의 마음속에 '쓰디쓴 증오심'만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는 자수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가 '겁쟁이이고 비열한'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는 결단코 온순해지거나 회개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시 그의 마음속에는 교만한 마음이 폭발합니다.
어쩌면 나는 '아직' 사람이지, "이"가 아닌지도 몰라. 너무 조급하게 자신을 비난했어.... 나는 '아직은 더' 사워 볼 거야.(618페이지) |
힘과 권력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그는 거절하지 못합니다.
소냐는 이런 음울한 교리 문답이 그의 믿음이자 법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613페이지) |
제 5막은 (제6부) 대단원입니다. 작가는 두 명의 '강한 개성', 라스꼴리니꼬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파멸을 평행적으로 묘사합니다. 살인자는 자신의 종말을 예감합니다. 그는 반쯤 의식을 잃은 채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가 하면, 선술집에 앉아 있끼도 하고 관목 숲에서 잠을 자기고 합니다....
나는 출구가 없는 답답한 공간에서 숨을 허덕이고 있었다.(656~657페이지) |
뽀르피리 빼드로비치의 방문은 그의 이런 긴장감을 풀어 줍니다. 예심 판사는 '범죄의 모든 심리적인 과정'을 분석하고, 그에게 역사적인 규정을 내려 줍니다.
이건 환상적이고 암울한 사건, 현대적인 사건, 인간의 마음이 혼미해진 시대, '피가 맑아진다'느니 하는 말이 인용되고, 편안함이야말로 인생의 전부라고 선전되는 우리 시대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는 탁상공론, 이론에 자극을 받은 심리가 보입니다.(671페이지) |
라스꼴리니꼬프는 숨을 겨우 몰아쉬며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누가.... 죽은 거지요?(671페이지) |
뽀르피리 빼뜨로비치는 예기치 못한 질문에 깜짝 놀란 듯이 의자의 등반이로 몸을 젖힙니다.
"뭐라고요? 누가 죽였느냐고요....?" 그는 자신의 귀를 못믿겠다는 듯이 되받아 물었다. '당신이' 죽인 겁니다. 로지온 로마노비치! 당신이 죽였어요.... (672페이지) |
"강한 개성"의 패배 이후에는 그 개성의 폭로가 뒤따릅니다. 뽀르피리 빼뜨로비치는 스비드리가이로프로 대치됩니다. 뽀르피리 빼뜨로비치가 라스꼴리니꼬프의 이론적 실수를 증명했다면(탁상공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의 도덕적인 위선을 드러내 줍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 소리가 아니에요. ..... 아니, 내 말은 당신이 계속 한숨만 내쉽다는 말입니다.! 당신 속에서 끊임없이 실러가 혼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 문에서 엿듣는 건 안 되지만, 자기만족을 위해서 아무거나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노파를 죽이는 건 된다고 확신한다면, 어서 어디든 미국으로라도 떠나십시오! 도망을 치세요. ..... 이해합니다. ....... 당신이 지금 어떤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이지요? 시민과 인간으로서의 문제이지요? 그런 것들일랑 옆으로 치워 버리세요. 지금 그런 게 무슨 소용입니까? 흐흐! 여전히 시민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렇게 주제넘게 나설 필요도 없었지요. 공연스레 남의 일에 손댈 필요도 없었던 겁니다.(715페이지) |
분신 -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분신 - 악마가 이반 까라마조프를 웃음거리로 만들 듯이 라스꼴리니꼬프를 조롱합니다. 이 두 존재는 강한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구현해 주는 형상들입니다. 주인공에게는 권총 자살을 하든지, 경찰서에 출두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는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자수하고야 맙니다. 그러는 이유는 그가 회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심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죄에 합당한 징계는 '불필요한 수치'와 '의미 없이 당하는 고통'이 됩니다. 그는 경멸 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는 내가 생각도 없이 그들 모두 앞에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 깊은 신념으로부터 굴복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인가!(767페이지) |
독기에 가득 차고 기분이 우울한 라스꼴리니꼬프는 십자가를 받디 위해 소냐를 찾아옵니다.
이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의 상징이로군, 흐흐!(770페이지) |
그의 웃음은 신성 모독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치욕적인 파멸로 자신을 보내는 소냐에 대한 증오심의 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민중들에게 절하라'고 한 말을 상기하고는 네거리에서 무릎을 꿇지만, '내가 죽였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경찰서에 들어가서도 그는 그냥 되돌아 나옵니다. 마당에서 소냐를 보고 나서야 그는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 마침내는 선언합니다.
바로 제가 그때 고리대금업자 노파와 그의 여동생 리자베따를 도끼로 살해하고 돈을 훔친 사람입니다.(783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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