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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죄와 벌」도스토예프스키 - 작품평(5)

by 비앤피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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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비극의 세 번째 일치인 행위의 일치는 비극 소설의 구성을 결정해 줍니다. <죄와 벌>은 한 가지 사상, 한 사람, 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인물과 사건들이 라스꼴리니꼬프의 주변에 배치됩니다. 그가 역공적인 사건의 중심점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빛이 반사되며, 반사된 빛은 다시 그에게로 돌아옵니다. 소설 속의 41개의 장면 중에서 그가 나오는 장면은 38개에 달합니다. 두 개의 이차적인 줄거리, 즉 마르멜라도프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라스꼴리니꼬프의 여동생인 두냐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주정뱅이 관리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선의 무력함과 고통의 무의미함에 대한 사상을 구현합니다. 이 가족의 품에서 소냐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소냐는 주인공의 선한 천사입니다. 두냐도 역시 희생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빠의 사상을 구현합니다. 두냐는 라스꼴리니꼬프 가족의 품에서 등장하여, 주인공과 신비하게 연결된 스비드리가일로프라는 인물을 작품속에 끌고 들어옵니다. 그는 주인공의 사악한 천사입니다. 살인자의 영혼 속에서 진행되는 선과 악의 투쟁은 두 개의 대립되는 개성, 즉 소냐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대립으로 체현됩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의식은 세 가지 국면으로 펼쳐집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선한 천사와 악마 사이에 존재하는 중세 신비극의 인물처럼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소냐가 마르멜라도프의 가족에서 분리되어 주인공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되자, 이 이야기의 구성적인 기능은 그것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이야기보다 먼저 종결되며, 두 번에 걸친 감동적인 파국을 통해 대단원을 예고합니다.(제 2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마르멜라도프의 사망과 제5부의 끝에 나오는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의 죽음). 이 세 줄거리가 결합되는 때는 단 한 번뿐입니다. 그것은 마르멜라도프의 추도식에서 두냐의 전 약혼자인 루쥔이 소냐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우고, 라스꼴리니꼬프가 그녀를 변호하는 장면에서입니다.(제5부의 뒷부분) 제6부에서는 부차적인 줄거리가 이야깃거리를 잃어버립니다. 마르멜라도프 부부는 죽고, 두냐는 라주미힌과 결혼을 하며, 남는 것은 오로지 주인공과 두 명의 신비한 동반자, 소냐와 스비드리가일로프뿐입니다.

구성의 원칙은 세 가지 사건, 하나의 중요한 사건과 두 개의 부차적인 사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중요한 사건은 한 가지의 중요한 사건(살인)과 내면적인 사건들의 긴 연결고리들(사건의 내적 체험과 인식)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차적인 사건은 소란스럽고 감동적이며, 극적인 외적 사건들의 집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들 속에서 마르멜라도프는 말에 짓밟혀 죽고,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반쯤 미쳐서 거리로 나가 노래를 부르다가 피를 토하며 죽습니다. 루쥔은 소냐를 도둑으로 몰고, 두냐는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총을 쏩니다. 중요한 사건은 비극적이며, 부차적인 사건은 멜로드라마적입니다. 중요한 사건은 파국으로 끝나고, 부차적인 사건들은 파국의 패러디인 스캔들로 종결됩니다. 그런 예로 들 수 있는 사건은 두냐와 루쥔의 결별과 마르멜라도프의 추도식 장면입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설 속에서 구성의 중심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중심이기도 합니다. 비극은 그의 영혼에서부터 시작되며, 그의 외면적인 행동은 그의 정신적인 갈등을 드러내 줍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분열을 통과해야 하고, 자의식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 속에서 찬반의 근거를 끌어내야만" 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깊은 자아 속을 들여다보고,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 앞에서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을 시험하고 체험하면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나의 힘은 위대한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모든 소설의중심에는 자신의 개성이 간직하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려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라스꼴리니꼬프, 미쉬낀 공작, 스따브리긴, 베르실로프, 이반 까라마조프)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예술적인 세계는 통일된 "자의식"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과정의 외피는 심리적이지만, 그 아래로는 인간의 내면 속에 있는 신의 형상, 개성의 불멸, 자유, 죄의 문제 등과 같은 존재론이 펼쳐집니다. 자기 자신을 파악한 인간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리학자들이며, 천리안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뽀르피리 삐뜨로비치가 라스꼴리니꼬프를 살피는 것처럼, 포만감을 모르는 탐욕스러운 심정으로 주인공들을 살핍니다. 주인공은 다른 등장인물들이 보기에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각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나름대로 새로운 특징들을 조명하게 됩니다. 즉, 자의식의 과정이 인식의 과정에 의해 보강되는 것입니다. 그 예로 <죄와 벌>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즉 어머니, 누이동생, 라주미힌, 뽀르피리, 소냐, 스비드리가일로프, 자묘또프, 등이 라스꼴리니꼬프에 대해 나름대로의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악령>의 등장인물들 역시 스따브로긴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모두 정신적입니다. 이들은 순수한 의식들입니다. 이들은 상호 간에 비극적인 고립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제를 나누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서로를 꿰뚫어 보면서 상호 간에 투쟁합니다.

자의식의 과정 속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두 개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즉, 그는 그 주어진 과제(신의 형상)로 보았을 때는 위대하고, 주어진 모습(악)으로 보았을 때는 무기력한 개성입니다. 이 개성 속에 내재하는 신의 형상은 자유 속에서 나타나지만, 그 자유에서 멀어지면 곧 악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드미뜨리 까라마조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신과 악마가 겨루는데, 그 전투의 장은 인간의 마음이다"

자의식은 투쟁의 수용이고, 선과 악의 생생한 체험이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비극 소설'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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