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꼴리니꼬프의 비극은 에필로그로 완결됩니다. 범죄자는 감옥에서 1년 반을 보내고, 소냐는 그의 뒤를 따라 시베리아까지 가지만, 그는 그녀를 경멸하듯이 거친 태도로 괴롭힙니다. 그가 변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고독하고 음울하며 오만합니다.
그는 자신을 엄격하게 재판했지만, 그의 굳은 양심은, 자신이 저지른 지난 사건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이외에는 다른 어떤 특별히 무서운 범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나의 행동의 어디가 그들에게는 추악하게 여겨지는 것일까?(800페이지)
그는 자문자답합니다.
그것이 악행이라는 것 때문에? <악행>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언인가? 나의 양심은 편안하다(800페이지)
'나의 양심은 편안하다'라는 말 속에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마지막 진실이 순간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초인으로서 패배당하지 않는 승자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고 싶은 마음에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그는 도덕률이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이 선과 악의 저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양심은 편안한 겁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고립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에 파멸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오만한 고독을 사랑합니다. 그는 신경이 견뎌 내지 못했디 때문에, 본성이 항복했기 때문에 파멸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황당무계한 일입니다.
그에게 힘이 조금만 더 충분했더라면, 뽀르피리가 그를 두려움이 없는 전사라고 생각한 것은 근거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도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상당한 냉소주의자로군요. 적어도 그럴 소지가 아주 많아요. 당신은 많은 걸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많은 걸..... 그리고 많은 것을 실행할 수도 있고요.(712페이지)
라스꼴리니꼬프가 파멸한 것은 뽀르피리가 '서로 다른 양 끝을 가리키고 있는 심리학'으로 그를 포위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는 뽀르피리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와서야 자신이 파멸한 이유를 깨닫습니다.
그는 자신, 즉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사람이 맹목적인 운명의 판결에 의해서 이렇게 맹목적으로 희망도 없이, 소리도 없이, 어리석게 파멸당했다는 사실이, ..... 부끄러웠던 것이다(799페이지)
이런 특징이 그의 위대한 형상을 완결 짓습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걸맞는 맞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유일한 적은 운명입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비극적인 주인공처럼 맹목적인 운명과의 싸움'에서 파멸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작가가 '까뜨꼬프'와 같은 온건한 잡지에 새로운 사람에 대한 대담한 진실을 60년대 독자들에게 보여 줄 수있었을까요? 그는 이 진실을 지혜로운 덮개로 가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막이 끝날 무렵에야' 서둘러서 부주의하게 해치워 버리고 맙니다. 병이 완쾌된 다음, 주인공은 감옥에서 소냐의 발아래 몸을 던집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 병들어 창백한 얼굴에서는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노을,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서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사랑이었고,(800페이지)
작가는 조심스럽게 덧붙입니다.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시작되고 있다(810페이지)
소설은 주인공의 '갱생'에 대한 막연한 예견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예견은 약속일 뿐이지 독자에 의해 확인되는 사실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경건한 거짓말'을 믿기에는 라스꼴리니꼬프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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