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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빙점」에서 원죄를 묻고, 「속빙점」에서 용서를 찾다

by 비앤피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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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은 1964년 일본 아사히신문 창립 85주년 백만 엔 현상소설 공무에 당선되어 그해 12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 14일까지 연재된 작품입니다. 연재되자마자 반응이 뜨거워서 곧이어 출간된 책까지 71만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미우라 아야코는 일약 스타작가로 떠오릅니다.

쓰지구치 게이조는 아내 나쓰에의 부정으로 인해 사랑하는 딸 루리코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살인범의 딸을 친구 다카키가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잔인한 복수를 결심한다.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요코를 양녀로 입양해서 아내에게 기르게 했던 것이다. 그후 남편의 무서운 음모를 알아차린 나쓰에는 온갖 방법으로 요코를 구박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요코는 자신이 입양아임을 알게 되는데 '이럴수록 나는 바르고 정직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쓰에는 요코가 불행해지기는커녕 도루와 기타하라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며 아름답게 자라나자 끝내 "너는 살인자의 딸!"이라고 폭로해서 상처를 준다다. '죄 없이 깨끗하게 살고 있다'는 자부심에 매달려서 버텨왔던 요코는 자신의 핏줄 자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자살을 결심한다. 요코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써놓고 미에이 강변의 새하얀 눈위에서 약을 먹는다.

순간의 유혹에 빠져서 딸을 잃은 아내, 그 아내에게 살인범의 딸을 키우게 해서 복수하는 남편, 그 사실을 알고 이복동생을 사랑하게 된 아들, 나중에 사실을 알고 애지중지하던 딸을 자살로 내모는 엄마, 엄마의 구박 속에서도 밝게 버티다가 출생의 비밀을 아는 순간 자살을 기도하는 딸, 그런데 사실은 살인범의 딸이 아니었다는 반전....

독자들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빙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요코가 약을 먹고 혼수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독자들의 전화와 편지가 신문사로 빗발칩니다.

그 독자들의 소박한 바람에 미우라 아야코는 1970년 <속 빙점>으로 응답하는데, 과연 그녀답게 더 거대하고 흥미진진한 갈등의 소용돌이를 던짐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습니다.

자살을 기도했다가 살아난 요코는 자신의 진짜 부모를 알게 된다. 요코의 생모 미쓰이 게이코는 남편 미쓰이 야기치가 출정한 동안 나카가와 미쓰오와 사랑에 빠져서 요코를 임신했다가, 요코가 태어나기 직전에 나카가와 미쓰오가 급사하고 남편 야기치의 귀향 소식이 전해지자 갓 태어난 요코를 다카키에게 맡긴 것이다. 요코는 '나는 살인범의 핏줄이 아니라 해도 부정한 사랑의 열매였다'는 사실에 갈등한다. 자신의 출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정을 범한 생모를 용서하지 못한다....

빙점(물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은 얼어붙은 마음, 혹은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일본인으로서는 드물게 독실한 기독교도여서,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사랑과 평화'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빙점'이란 원죄(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지고 있는 죄)를 의미합니다. <빙점>의 주인공들은 저마 노력하며 살지만, 그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빙점과 대면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나는 빙점이 없다'고 자신했던 요코는 자신의 빙점을 깨달은 순간 자살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빙점>을 통해서 '자기 속의 얼어붙은 마음, 빙점'과 정면으로 마주친 독자들이 요코가 불행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빙점을 녹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자는 뜻밖에도 그 희망을 요코의 생모인 게이코의 남편, 미쓰이야기치의 고백을 통해서 드러냅니다. 미쓰이 야기치가 '아내 게이코의 부정과 요코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군국주의 체제 일본에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상관의 명령으로 임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죽이는 잔악한 죄를 범하고 '인간이란 수없이 잔인하고 끔찍한 죄를 용서받고 위안받을 방법이 없다'며 괴로워했는데, "아내가 한 생명을 어둠 속에 매장하지 않은 것은 구원이었으나, 그것은 또한 저에게 내린 형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소나마 안심하고 죄책감을 덜게 되었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야기치를 철저하게 파멸시켰을지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마음속에 꽁꽁 얼어 붙은 빙점을 녹임으로써 그를 살렸다는 겁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속빙점>에서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용서하지 못해서 더욱 꽁꽁 얼어붙어 가던 요코의 마음도 '활활 불타는 유빙'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하고서 녹아내립니다. 꽁꽁 얼어붙은 빙원이 핏방울이 떨어진 듯 진홍빛으로 물들고 산불이 번지듯 활활 불타오르는 대자연의 경이, 그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인간을 깨닫고 '진정한 용서는 하느님만 할 수 있다'고 깨닫고 비로소 생모에게 전화기를 듭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증오할 수밖에 없는 상대를 어떻게 하면 속죄라는 형식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저자는 이런 말로 응답합니다.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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