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아야코는 일본작가들 중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그녀는 1922년 홋카이도 아사히가와 시에서 태어나 39년 17세의 나이로 아사히가와 시립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원 생활을 시작하여 46년 태평양 전쟁 패전 이듬해까지 계속했습니다. 이 7년 동안의 교원 생활이야말로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열성을 기울인 생활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녀에게는 이성보다 아동들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 아이들을 현관까지 배웅하면 아이들은 "선생님, 안녕!"하고 그녀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란도셀을 짊어지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몇 번이나 눈물을 찔끔거렸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아무리 사랑해도 아이들에게는 역시 어머니가 더 좋은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아이들의 어머니가 부러웠습니다. 그녀는 무척 엄한 선생이었으나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녀가 교원 생활을 한당시, 그러니까 1940년에서 45년에 걸친 일본의 전시 교육이 담당한 가장 큰 과제는 '인간이 되기 전에 국민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의 교육은 천황 폐하의 국민을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미우라 아야코가 이런 교육에 열성을 기울였다는 것은 그녀의 말대로 '인간관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겁니다.
1945년 패전과 동시에 미군이 진주했습니다. 일본은 점령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제까지도 귀축으로 부르던 미국인에 의해 종전의 국정 교과서를 여러 군데 삭제해야만 했습니다.
"자, 먹을 갈아요."
그녀의 말에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먹을 갈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천진스러운 얼굴을 보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먼저 수신 책을 꺼내게 해 미군정의 지령에 따라 지시를 했습니다.
"첫 페이지의 둘째 줄에서 다섯째 줄까지 먹으로 지우세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녀의 말에 따라 교과서에 먹칠을 했습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뇌까렸습니다.
"나는 이제 교단에 설 자격이 없다. 하루 빨리 교직에서 떠나야지."
그녀는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잘못된 것일까?"
그녀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대체 어느 쪽이 옳으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교사로서 먹칠을 한 교과서가 옳은지 아니면 본래의 교과서가 옳은지를 알아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모두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시대라는 거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대란 대체 무엇인가? 지금까지 옳다고 말해 온 것이 그릇된 것으로 바뀌는 것이 시대의 의미일까?
'나는 7년 동안 대체 무엇에 전력을 기울여 왔는가? 그처럼 열심히 가르쳐 온 것이 그릇된 것이었다면, 나는 7년을 허비한 셈입니다. 아니, 잘못을 범한 것은 허비와는 전혀 다르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한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패전 후 할복 자살한 군인들처럼 우리 교사들도 학생들 앞에서 죽음으로 사죄해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1946년, 그러니까 패전 이듬해에 교원 생활을 그만두었습니다. 자기가 가르치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는 교단에 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교생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그녀는 쓸쓸했습니다. 7년 동안 힘껏 일했지만 아무런 총족감도 보람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릇된 것을 모르고 가르쳐 왔다는 부끄러움과 죄책감만이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교원 생활을 그만둔 지 한 달 남짓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40도 가까운 열이 오르고 다리의 마디마디가 쑤셔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일주일쯤 치료를 받고 나니 열도 많이 내리고 다리의 통증도 가셨으나 체중이 7킬로그램이나 줄고 미열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진찰을 받은 결과 폐결핵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패전 직후라 식량 부족으로 국민들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였으며, 결핵특효약도 아직 나오지 않아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의사는 폐결핵을 늑막이라고도 말하고, 폐침윤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편이 어느 정도 병의 증상을 가볍게 느끼게 하여 환자가 절망감에 빠져 치료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찾아간 요양소의 전문의도,
"가벼운 폐침윤입니다. 석 달 동안 입원하면 나을 수 있어요. 다만 곧 입원하지 않으면 죽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요양소에 석 달만 입원하라는 말을 들은 환자들은 그 후 여러 해를 입원해야 했으며, 반년 동안 입원하라는 말을 들은 환자는 거의가 죽어갔습니다. 요양 생활이래야 주로 안정을 취하고 영양식을 섭취하며, 포도당 주사나 가끔 맞는 것이 고작이라 병이 제대로 나을 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미우라 아야코는 결핵성 척추 카리에스까지 병발하여 깁스를 하고 침대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며 대소변도 받아 내는 투병 생활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소꿉동무인 마에가와 다다시였습니다. 그는 미우라 아야코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웃으로 이사 와 같은 학교에 다닌 2년 선배로, 아사히가와 중학교를 거쳐 훗카이도 대학 의학부에 다니는 수재였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마에가와가 문병을 온 것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마에가와와 재회한 후 2, 3일이 지나 그에게서 엽서가 왔습니다. 이것이 그 후 그가 보낸 천여 통에 이르는 편지의 제 1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때 그와 주고받은 글들을 모아 이후(73년) <생명에 아로새긴 사랑의 흔적>이라는 이름의 서한집으로 펴냈습니다.
"기독교인은 위선자들이에요. 그러면서도 정신적인 귀족으로 자부하며 우리를 가엾은 인간이라고 내려다보고 있어요."
하고 미우라 아야코는 문병 온 마에가와에게 대들 듯이 말했습니다. 그녀에게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이들처럼 싸움을 거는 묘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런 그녀의 말을 마에가와는 싱글벙글 웃어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기독교를 극구 부인하던 미우라 아야코는 병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자 마에가와의 전도로 성경을 읽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 대해 품고 있던 모멸적인 감정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것이 당시의 그녀에게는 안이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시중에 우리 일본인은 천황을 신으로 믿고 신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패할 리가 없다고 믿으며 싸워 오지 않았던가. 이제 믿는다는 것의 두려움을 뼈저리게 알았을 게 아닌가.'
전쟁이 끝나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녀는 전시중에는 교회에 모이는 신자가 별로 없었는데 패전이 되자 교회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사람들이 경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마에가와는 <전도서>를 읽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무심히 읽기 시작한 <전도서>에서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여기까지 두세 줄 읽는 사이에 그녀의 마음은 이 <전도서>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녀가 읽은 성경은 주로 '서로 사랑하라' 또는 '누구든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도 들이대며'라는 식의 교훈으로 일관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전도서>의 이 허무적인 사고는 그녀에게 기독교 전체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구도 생활은 차츰 진지해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52년, 30세의 나이로 드디어 그녀는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마에가와의 인도와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마에가와가 폐결핵으로 갈빗대를 여덟 개나 절제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수술을 받는 날 미우라 아야코는 깁스를 한 채 침대 위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에가와는 수술한 보람도 없이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그때까지 하루 속히 마에가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기도조차 그를 위해 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앞머리와 사진을 흰 종이에 싸서 사람을 시켜 마에가와의 관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 마에가와와 같은 훌륭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저와 같은 어리석은 자가 살기보다는 마에가와가 살아 있는 편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하고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녀는 어째서 마에가와가 죽고 자기가 살아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같은 기독교인인 미우라 미쓰요라는 사람이 어느 날 문병을 왔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죽은 마에가와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면의 인사를 나누면서 들으니 그 조용한 목소리까지도 비슷했습니다. 이 무렵의 그녀는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침대 위에 일어나 앉을 수 있었습니다. 미쓰요도 14년 전에 신장 결핵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나머지 한쪽 신장도 나빠졌으나 마이신 덕택에 나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미쓰요는 아사히가와 영림국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우라 아야코가,
"당신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읽어 주세요."
하고 부탁했더니, 그는 서슴지 않고 <요한복음> 제 14장 1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녀는 자기가 너무나 마에가와를 그리워하니까 하나님이 가엾게 여겨 그를 닮은 사람을 보내 주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미쓰요는 자주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차츰 알고 보니 외모나 말씨뿐만 아니라 취미와 사상까지도 마에가와를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야코는 폐결핵이 완치되고 결핵성 카리에스도 7년 동안에 걸친 깁스 베드 생활 끝에 완쾌되자 미쓰요와 1959년 드디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37세, 미쓰요는 35세의 만혼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조그만 잡화상을 경영하다 소설 <빙점>이 <아사히 신문> 1천만 엔 현상 소설 공모에 당선됨으로써 일본 문단에 데뷔해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1946년 소설 <빙점>의 당선은 일본 문단에 있어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아사히 신문사>는 창립 8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현대 문학에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려는 의도에서 1천만 엔이라는, 그 당시의 화폐 가치로는 막대한 금액의 상금을 걸고 기성 작가를 포함해 신진 작가의 소설을 모집했습니다.
그런데 7백 31편의 응모 작품 중에서 작품 활동이라고는 거의 해보지 못한 중년 부인의 작품이 당선되었습니다.
1964년 7월 10일, 미우라 아야코는 <빙점>의 당선 소식을 듣고 기쁨과 흥분을 느꼈으나 곧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 잠들기 전에 반드시 남편과 함께 성경을 한 장씩 읽었습니다. 밤 열 시에 가게 문을 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으레 자정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가게 일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1년 동안 줄곧 이 고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24세 때부터 37세까지 13년 동안 줄곧 여성의 한창 때를 병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독자의 생애에서 괴로울 때에 상기했으면 하여' 이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빙점>의 주제는 '원죄'입니다. 인간은 죄에서 벗어나 바르게 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에게는 나면서부터 죄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뿌리가 곧 원죄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괴로움에 시달리며 치유될 수 없는 영혼의 아픔을 느끼고 있는데, <빙점>은 그것을 우리에게 좀더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한 병원장의 어린 딸 루리코가 피살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루리코의 어머니 나쓰에는 남편이 원장으로 있는 쓰지구치 병원의 안과 의사인 무라이 야스오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그리하여 그와 단둘이 있고 싶어 세 살짜리 딸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낸 것이 화근이 되어 길을 지나가던 인부 사이시 쓰치오에게 피살됩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색다른 사건에서부터 소설 <빙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부조기한 상황 하에서 등장인물들은 그 일상성의 연극을 연출합니다.
어린이에 대한 애정의 눈길은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이 지닌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다. 이것은 20대를 전후하여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서 정열적으로 일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녀는 패전 후 점령군의 명령에 따라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여러 군데 먹칠을 하라고 시켜야만 했습니다. 어제까지의 진실이 오늘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전후 일본의 교육은 아이들의 목을 정신적으로 비트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살 난 루리코를 죽인 사이시뿐만 아니라 루리코를 도외시한 나쓰에도, 나쓰에를 사모하는 무라이도, 그리고 쓰지구치 병원의 원장 게이조까지도 같은 죄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게이조는 자기를 배반한 아내 나쓰에에게 복수하기 위해 루리코를 죽인 사이시의 딸을 데려다 기르게 하지만, 그 요코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나쓰에는 정신없이 요코의 목을 조릅니다. 그처럼 미워한 사이시와 똑같은 살해를 나쓰에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코는 사이시의 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쓰에가 죽이려고 한 것은 순진한 소녀 요코입니다.
일찍이 카뮈는 인간의 비극은 실존의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지만, 나쓰에는 요코의 실존을 오해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남을 오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나쓰에는 자기의 실존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의 일생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으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합니다. 인간은 이와 같이 저마다 저기는 죄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와 같은 오해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실존의 오해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요코입니다. 요코는 자기가 살인범의 딸인 줄 알게 되자 살아갈 의욕을 잃게 됩니다. 가엾은 소녀는 실연이나 실의에서가 아니라 자기 실존을 참을 수 없어 음독 자살을 꾀합니다. 그리하여 요코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 <빙점>은 끝나고 <속빙점>이 이어집니다.
<속빙점>은 요코의 재생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 주제는 '용서'입니다. 죄의 용서는 사랑(아가폐)과 표리의 관계이 있습니다. 자살을 꾀하기 전에 게이조와 나쓰에 앞으로 쓴 유서에서 요코는 간절한 심정으로 '용서'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코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의 핏속을 흐르는 죄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가 있었으면 합니다.'
저자는 "<속빙점>을 마치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코는 죄를 깊이 느끼고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려고 했다. <빙점>은 거기서 끝난다. 그렇다면 재생한 요코는 당연히 죄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코가 참된 죄의 용서를 체득할 때까지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펜을 들었다.
<빙점>에서의 요코는 얄궂은 운명 아래 태어나 쓰지구치 가에서 양녀로 자라며 갖은 구박에 시달립니다. 그러한 요코의 비참한 처지에 많은 독자들이 동정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요코가 궁지에 몰려 자살을 꾀했을 때 많은 독자들이 '요코는 죽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전보를 치고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무 죄도 없는 요코가 불행하게 되는 것을 독자들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속빙점>에서의 요코는 전과 같이 수동적일 수만은 없었습니다. 유서에 쓴 '죄의 용서'라는 과제를 어떻게 떠메고 살아가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요코는 인간에겐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기의 출생을 긍정할 수 없었습니다. 미츠이 게이코라는 요코의 생모는 남편이 출장중에 친정에 가 있었는데, 그곳에 하숙하고 있던 나카가와 미쓰오라는 학생과의 불륜의 관계로 요코를 낳았던 겁니다. 요코는 그런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의와 같은 감정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면서 '남을 정죄하는 것이 어째서 죄인가를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정죄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뿐이다. 인간이 남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정죄를 맡기지 않는 것이다. 이 교만은 일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요코에 대해 써 나갔다. 그리고 정죄하는 것은 요코만이 아니다. 등장 인물들이 서로 곳곳에서 정죄하고 있다. 나는 인간의 두려움을 자기 속에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어려운 테마를 전개하면서 <속빙점>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놓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이유의 하나는 구성의 묘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코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요. 특히 명목상의 오빠인 도오루와 그의 친구 기다하라 중 어느 쪽의 구애를 받아들일까요? 그리고 착잡한 심리상태에서 요코의 생모의 정체를 밝히려는 도오루의 행동은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빨리 알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요코의 이부 동생 미츠이 다츠야는 요코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마치 범행을 쫓는 형사와 같은 태도로 어머니의 비밀을 추적합니다. 그리하여 독자는 다츠야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미츠이 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그 결말을 고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가 이 작품에 이끌리게 되는 둘째 이유는 그 진상의 해명이 통석적인 추리 소설처럼 범인이 판명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죄의 용서'라는 테마를 풀어 나가 독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데 있습니다.
특히, 게이코의 남편 미츠이 야기치의 고백은 독자의 가슴에 자욱하던 안개를 말끔히 제거해 줍니다. 어찌하여 아내의 불륜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야기치는 게이조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 그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미츠이 야기치가 아내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에겐 아내를 책망할 자격이 없다는 죄의 자각 때문이었습니다.
<속빙점>에서 또 하나 인상 깊은 장면은 유빙이 불타오르는 광경입니다. 요코는 분명히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코가 본 것은 육안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마음의 눈에 비친 사실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때의 요코의 심정을 정성드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눈에 비친 사실은 육안에 비친 것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변혁을 촉구합니다. 그리하여 요코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생모에게 무심코 말합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요코는 이 말을 고개를 숙인 채 눈길을 걸어가던 게이코의 등을 향해 호소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저자 미우라 아야코의 생생한 육성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빙점>도 <속빙점>도 저자가 호소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모티브를 쓴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작품 전체에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그 메시지를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데 그치느냐, 아니면 요코가 추구한 과제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 하는 겁니다. 요코는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원죄와 싸워 '자기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죄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를 붙잡은 겁니다.
문학을 인간의 해명이라고 볼 때 인간의 절망을 해명한 작품, 인간의 부조리를 해명한 작품, 인간의 자기 상실을 해명한 작품 등은 많이 볼 수 있지만, 그 속에서는 인간 구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병상에 대한 진단은 있어도 그러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처방은 없습니다. <빙점>, <속빙점>에 이어 발표된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은 인간의 깊숙한 현실을 해명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제시한 구원의 문학이요, 소망의 문학입니다.
예컨대 그녀의 또 하나의 수작 <양치는 언덕>에서도 이 <빙점>과 <속빙점>의 주제가 시점을 달리하여 사랑, 즉 에로스가 아가페로 승화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주인공 나오미라는 아름다운 소녀는 전학해 온 학교에서도 여전히 창 밖만 내다보고 있을 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기가 목사의 딸이라는 것도 언짢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렇다 할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소녀의 마음속을 뒤덮고 있는 막연한 비충족감 때문입니다.
이 비충족감은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영어 선생인 다케야마 데쓰야는 이러한 나오미의 태도를 시정하려고 정성을 기울이며 이윽고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나오미도 여기 호응하는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만 그 정체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다케야마 데쓰야로서는 그녀의 동요가 조용히 성숙하는 것을 지켜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고뇌'가 시작됩니다.
한편 나오미의 친구의 오빠이고 다케야마 데쓰야의 친구이기도 한 화가 스기야마 료이치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오미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초등학생보다도 순진하고 붙임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는 참고 기다리는 데쓰야와는 달리 그녀를 정공법으로 공략하려 듭니다. 그는 여성과의 관계가 복잡하여 자기 자식을 낙태시키다가 잘못해서 상대방 여성을 죽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특색을 료이치를 통해 잘 묘사하고 있스빈다.
나오미의 아버지 히라노 고스케는 목사로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접촉해 온 제 6감에 의해 그런 료이치를 간파하고 자기 감정의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려는 딸에게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딸을 설득합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어디가 좋다는 거냐?"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사람을 정죄하지 않을 뿐더러 자기도 료이치와 같은 죄인이라는 종교적인 인간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을 친자의 단절, 사랑의 갈등, 삼각 관계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사랑을 한결 승화시킨 구원의 문학이요. 소망의 문학으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나오미는 료이치의 인간됨을 알지 못하고 다케야마 데쓰야의 사랑을 오인하며, 아버지의 간곡한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그녀는 자기의 실존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놓인 처녀들이 으레 말하는 것처럼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이 뭐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람을 죽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빙점>, <속빙점>의 나쓰애와 마찬가지로 <양치는 언덕>의 나오미도 그처럼 좋아했던 료이치를 미워하고 경멸하고 혐오스러워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파탄이 의외로 빨리 왔습니다. 일반 소설이라면 여기서 작품이 끝날 테지만, <양치는 언덕>은 그렇지 않습니다. 료이치에게서 도망쳐 친정으로 돌아온 나오미에게 아버지 고스케는 다시 '사랑'에 대해 조용히 타이릅니다.
"인간은 서로 미워하게 마련이야. 서로 배반하도록 되어 있어. 인간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서는 살아가지 못해.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하는 것야. 료이치를 탓하는 너도 자주 남에게 용서받아야 할 존재야."
여기에 미우라 아야코의 '사랑'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가 나타나 있습니다. 저자는 료이치에게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재기할 가능성을 보인 가운데 죽어 가게 합니다. 나오미는 그의 유해에 매달려 울며 그는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고스케의 고별사에서 이 작품의 의도가 분명히 독자 앞에 제시됩니다. 그것은 많은 남녀가 서로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사랑'에 대한 저자의 희망에 찬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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