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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서를 시작하며...

by 비앤피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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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무엘상하를 공부해야 할까요?

시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21세기 크리스천들에게, 무려 3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 존재했던 어느 나라의 고대사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구원받은 크리스천으로서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하는 삶을 살기도 빠듯한데, 많은 시간을 들여 곰팡이 냄새 나는 구약 시대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사무엘서 공부는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의 보편적인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 분위기와도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서를 펴드는 까닭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크리스천들의 애타는 물음들에 대해 사무엘서만큼 명료하고 포괄적인 답을 주는 책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무엘의 역사 서술을 따라가며 이 답답한 시대에 크리스천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감히 찾아보려고 합니다. 오직 성경속에만 개인과 공동체의 살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사사시대에서 군주시대로 전환하는 1세기(BC1100~1000년경) 정도의 과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이 과도기는 공동체의 역사 발전에 결정적인 시기가 됩니다. 과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공동체는 역사의 찬란한 진보를 이룰 수도 있고, 아니면 비참한 후퇴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도기의 크리스천들은 마땅히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분단 77년의 수치스러운 민족사를 청산하고 통일 민족 국가를 이루어 현대사를 새롭게 창조해나가야 할 민족사적 대과업을 눈앞에 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과도기적 혼란이 극심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다급한 시대적 과제의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사회 과학자들을 비롯한 지각 있는 이들을 통해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역사의 대원칙과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성경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역사의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도 배우고 싶습니다.

삶에 대한 이해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곧 엘리, 한나, 사무엘, 사울, 다윗, 요나단, 압살롬, 시므이, 등은 그 어느 소설보다 더 감도적으로 묘사된 인간 군상들입니다. 그들의 삶에 얽히 희로애락, 야망과 좌절, 우정과 배신, 범죄와 회복, 사랑과 미움, 성공과 실패,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예술로 창조되어가는지 눈여겨볼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조롭기 쉬운 인간의 이해가 더 깊어지고 폭이 넓어지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멋진 예술로 가꿀 수 있었으면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서의 중심 인물 사무엘과 다윗을 통해 그 시대에 어떠한 인물이 하나님께 쓰임 받았는가, 반면 사울을 통해 어떠한 사람이 버림 받았는가를 깨닫고 싶습니다.

권력에 대한 이해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국가 권력 구조의 변화, 곧 신정적인 부족 연맹에서 군주 국가로의 체제 변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기로하고 있습니다. 군주 체제에 대한 찬반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사무엘과 사울 사이의 권력 분할, 사울과 다윗의 권력 투쟁, 다윗파와 사울파의 분열과 화합, 토지 재산권 문제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암투, 남과 북의 지리적 혈연적 다툼, 관료 제도의 성립, 엘리트 그룹과 관료 계층의 등장 등 국가 공동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문제들이 다루어집니다.

정치 이념과 권력 구조, 등 체제 문제의 갈등으로 반세기 가까이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우리들이, 정치 권력 문제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며, 통일과 함께 닥쳐올 시대적 과제를 '세상의 빛'인 크리스천답게 대처할 수 있는 슬기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섭리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사무엘서에 나타난 하나님 역사의 주권적 섭리를 이해하는 눈을 뜨고 싶습니다.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숱한 개인의 생사, 화복뿐만 아니라, 민족 공동체의 선택과 책임, 지도자의 세움과 버림, 사회 내부의 갈등과 전쟁, 분열과 통일 등 - 모든 현상적 사건 너머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눈여겨볼 것입니다.

섭리(providence)라는 단어는 영어의 'provide'와 라틴어의 'provideo' 즉 '미리(pro)'와 '보다(video)'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주권을 가지고 자기 백성의 앞날을 미리 보고, 역사에 개입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친히 인도하고 다스리시는 섭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The Lord reigns)"는 소식이야말로 기독교 역사관의 요체이며, 개인 형편과 시대 상황만을 보며 절망에 빠지기 쉬운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대상16:31, 사52:7)

초월자이지만 역사에 내재하면서 자신의 뜻을 펴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는 너무나 신비러워서 우리의 제한된 머리로 다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이 공부를 통해 믿음으로 영접하고 기독교 역사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보다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시대에 대한 이해

다윗의 생애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다윗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다"라고 말했습니다.(행13:36) 그 시대에 자기 자신과 공동체에 두신 하나님의 듯을 발견하고 그 뜻을 섬기는 생애 -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들의 삶의 의미일 것입니다.

시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시대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어느 시대를 구분하여 "그 시대는 이런 시대였다"라고 그 시대성을 규정하거나, 한 시대의 전체 문화를 집중 일관하는 지도적인 젓인적 경향을 알아내어 그 시대 정신을 파악한다는 것은 '시간 안의 존재'인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과제일 것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투철한 역사 의식, 명료한 선지자적 통찰력을 가지고 그 시대를 꿰뚫어보며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무엘서 저자의 영적 통찰력을 빌어 우리도 이 시애들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형식적 종교 행위와 개인 경건에는 열심이지만, 역사 의식과 시대 감각이 없던 종교인들을 통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

이스라엘의 한 시대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다윗이 그 시대에' 하나님을 섬겼듯이 '우리도 이 시대에'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무엘상하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해석할적 틀

성경을 읽을 때, 특히 구약의 역사서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먼저 바른 '해석학적 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틀이 네모난 것인가 둥근 것인가에 따라, 또는 거친가 정교한가에 따라 그 틀에서 나오는 모습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으면서 어떠한 해석학적 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본문(text)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며, 해석에 따른 적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서는 설화체(narrative), 곧 문학 작품의 성격을 띤 역사서입니다. 역사서를 읽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체 속에서 부분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본문 속의 어느 한 사건, 예를 들어 한나의 기도(삼상 1장)를 읽을 때 "나도 기대해야지"하고 그 사건이 주는 개인 신앙적 수준의 의미와 교훈을 찾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단계 높여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전 역사 가운데 한나의 기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속, 종말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의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하나님의 계획의 구도를 염두에 두고 본문의 각 사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약 시대의 크리스천으로서 본문의 한 사건을 바르게 보는 시좌(perspective)가 확보될 것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천들이 구약 역사서를 잘못 해석하거나 치우친 해석을 하기 쉬운 몇 가지 위험을 짚어보겠습니다. 예컨대 역사서나 예언서까지도 오로지 개인의 경건이나 도덕적 교훈만을 찾으려는 경건주의 일변도의 편협한 접근 방법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신학적 교리만을 찾는 근본주의적으로 굳어버린 접근 방법, 또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단지 신약의 '교회'로만 이해하고 역사서의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외면해 모든 사건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으만 영해하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또 코끼리의 다리나 배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이렇다"고 주장하는 앞 못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예표할 뿐 아니라 역사에 실재한 국가 공동체이므로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나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모형(paragigm)으로 보는 통전적이고 균형잡힌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성경의 의미가 더욱 풍성해지며 '오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복음주의 신학을 토대로 구약 윤리에 바르게 접근하기 위해 포괄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해석학적 틀을 제시한 라이트(C. J. H. Wright)의 도표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근래 사무엘서를 연구하는 성서 신학계는 문학 비평과 사회학적 연구 경향이 강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신학적, 언어학적, 역사적 연구에 집중되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그만큼 성경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연장이 다양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기 주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본문을 포괄저그로 이해하지 못하는 '축소주의(reductionism)'의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서를 공부할 때는 신학적, 사회학적, 문학적 접근 방법이 종합되는 정교한 해석학적 틀이 필요합니다.

해석자의 솜씨와 영성

성경 본문 해석의 두 가지 목표는 첫째로 원저자가 처음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했는가"하는 원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고, 둘째로 본문의 말씀(text)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하는 실존적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해석의 틀이나 연장이지만, 그 연장을 바르게 이용하는 '해석자의 솜씨'도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여기서 '옳게 풀어주어' 또는 '옳게 분변하여'라는 희랍어 원어는 '바르게 자른다'라는 뜻이며 '일꾼'은 목수나 석수 같은 '장인'을 뜻합니다. 어떤 공예품을 만들 때, 한 치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자르거나 깎아내는, 그런 솜씨를 길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장인의 경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오랜 교육과 실제 경험으로 숙련되어야만 이를 수 있습니다. 이 권고는 진리의 말씀을 '틀리게' 풀어서 부활의 교리를 부인하던 거짓 선생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악형향의 '암처럼 퍼져가서' 여러 어린 성도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경고하는 문맥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지 강조하고 있으며, 일반 평신도들도 그 솜씨를 가늠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바른 해석자가 되기 위해 꾸준히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인간 저자가 쓴 '사람의 말'이면서, 동시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3:16) 그러므로 인간의 말로 접근하기 위해서 해석의 틀과 해석자의 솜씨가 필요하듯,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최후의 해석자이신 성령님의 조명(요14:26)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해석자의 겸손과 기도를 포함하는 영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한 몸에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것처럼, 성경도 두 차원의 저자가 있으므로 신성과 인성의 양면적 접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려운 작업이지만 귀납적이고 인간적인 접근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연역적인 성령님과 신학적 교리의 도움을 받아, 팩커(J. I. Packer)가 제시한 '해석학적 나선형)'을 그리며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간다면 '더 풍성한 의미'를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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