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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상 8~10장 _이스라엘의 체제변혁

by 비앤피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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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사무엘상10장 19절)

사무엘상 8~12장은 흔히 '성서적 국가론'이라고 불리웁니다. 이번 장은 10장까지 다루고 있지만 12장까지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다루겠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체제 변혁이 이루어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가나안 정착 이후 300여 년간 지켜오던 지방 분권적인 부족 연맹의 느슨한 체제에서 탈바꿈하여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국가 형태를 채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 친히 다스리시는 이른바 신정국가의 독특한 체제를 가졌었는데, 인간을 왕으로 세워 군주 국가가 된 것은 역사적인 분수령을 이루는 체제 개혁인 셈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이러한 체제 번역을 평가하면서 정치적 입장보다는 신학적 입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장의 내용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적 국가관, 정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장로들의 체제 개혁 요구

사무엘이 늙어 그 아들 요셉과 아비야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등리 사무엘에게 나아가 왕의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5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삼상8:5)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는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습니다. 정치 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 계층이 악을 벌하고 선을 부추겨 정의가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도와야 바른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먼저 이권에 눈이 멀어 의를 버리게 될 때 그 사회는 부패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엘리의 두 아들이 부패했을 때 무서운 민족적 재난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두 아들에 대해 예방책을 쓰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은 청렴 결백한 아버지 때문에 너무 가난에 한이 맺힌 것인지,‘돈을 탐하여 뇌물을 받고 재판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삼상8:3-현대어성경)습니다. 정치 후진국의 특징인 지배 계층의 부패는 백성들로 하여금 체제 개혁을 더욱 갈망하게 합니다.

둘째,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체제는 국내외 정치 현실에 맞지 않으므로 국가의 번영을 위해 ‘열방과 같이' 강력하고 중앙 집권적인 방향으로 체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약소 국가의 열등 의식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오랫동안 주변의 강대국,또는 경쟁국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스라엘의 장로들로서는 당연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왕을 구하는 더 깊은 동인(動因)은 든든한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 었습니다. 사무엘이 군주 제도가 백성들에게 무거운 굴레를 지워줄 것이라고 경고하자 장로들은 더욱 강경하게 우겼습니다.

19그러나 백성들은 사무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20우리는 우리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그가 우리를 다스리며 전쟁에서 우리를 지휘하고 우리를 위해 싸울 것이 아닙니까?" 하고 우겨댔다.
(삼상8:19~20, 현대어 성경)

이들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끊임없는 주변 국가의 위협, 특히 서쪽의 블레셋뿐만 아니라 신흥 강대국으로 위협 세력이 된 암몬의 침공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강력한 군주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왕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애국심과 불신앙의 교묘한 연합

 

군주 국가 설립을 요청받은 사무엘의 마음은 몹시 언짢았습니다. 일생을 바쳐 헌신해온 백성에게서 자신의 지도력이 배척받았을 때,노장 사무엘이 겪은 '버림 받은’ 충격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감정적으로 문제를 다루거나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순종할 줄 아는 성숙한 종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왕정으로의 개혁 요청은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약 350년 전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에 왕이 필요한 것을 아시고 군주 제도를 허락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여 거기서 살게 될 때 여러분의 주변 나라들처럼 여러분도 왕을 원한다면
15반드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을 왕으로 세우십시오. 그 왕은 반드시 이스라엘 사람이어야 하며 외국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신17:14~15)

장로들은 지극히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사무엘을 물러나게 하고 새로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 명분이 그럴 듯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7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백성들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은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더 이상 내가 그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8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은 계속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겨왔으며 이제 그들은 너에게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삼상8:7~8)

체제 개혁은 언젠가는 필요한 것이었으나 그 시기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 일부에 부정이 있긴 했지만,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신앙적 정치적 지도력을 통해 전에 없던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왕을 구하는 동기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주변 국가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단지 정치 체제 개혁만을 통해 더욱 정의로운 사회,강대한 국가,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족 공동체를 키우고자 투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의 부정 사건은 그들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해준 셈이었습니다.

애국심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단지 이기주의의 연장인 국가 지상주의로 발전할 때는 무서운 죄를 낳습니다. 비단 과거 군국주의적 일본이나 독일의 히틀러 정권만이 주변 국가에 해를 끼친 것은 아닙니다. 현대에도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약소 국가들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약소 국가일수록 도산 안창호 선생의 “힘을 기르소서”라는 말을 국시 (國是)로 삼아, 열방과 같이 되기 위해 모든 국민적 에너지를 집결시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강한 무신론적 민족주의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애국심과 불신앙이 교묘하게 연합하여 맹목적 애국 (jingoism 또는 chauvinism) 으로 똘똘 뭉친 자민족 중심주의 (einocentrism) 의 정치 운동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군주제도를 허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왕을 구하는 백성의 일치된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로 하여금 군주 제도를 알려주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편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만 잘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백성의 국방 문제, 경제 문제 등을 책임지셨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개인과 개인 생활에 거의 간섭하지 않고 위기 상황이나 재판이 필요한 분쟁 발생시에만 사사가 활동하면 되었습니다. 옛날 씨족 사회,부족 사회의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살던 이스라엘에 군주 국가로의 체제 개혁이 일어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왕의 제도’ 는 백성들에게 병역,노역, 공출과 납세의 의무를 요구하게 됩니다(8:10~17). 사무엘은 눈물 어린 사랑으로 마지막 경고를 합니다.

18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택한 바로 그 왕 때문에 눈물로 부르짖을 것이나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에게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삼상8:18)

자기들이 세운 왕 때문에 고통 당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역사의 빈정댐(irony)’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의 사회를 위해 제도 개혁을 했는데, 그 제도 자체가 불가피하게 불의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39절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자기백성을 노예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을 세우면 백성은 어쩔 수 없이 왕의 노예가 됩니다. 그 고통의 멍에는 무거운 것입니다. 국가가 중앙 집권적인 체제를 강화시킬수록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군주 제도를 허용하셨습니다. 백성들의 요구가죄악된 동기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한데도 왜 허용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세 차례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8:7, 9, 22)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참 민주적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만 합니다. 백성들의 요구가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탕자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허용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유 선택권을 존중하십니다. 자유 의지야말로 인간의 기본권이므로 하나님께서도 침해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기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가까이는 초대 왕을 세운 후(삼상 14장 이후), 그리고 후에 솔로몬이나 르호보암 시대에 겪은 백성들의 무거운 멍에를 생각해볼 때,그것이 개인적 선택이든 국가적 선택이든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얼마나 신중한결정이 요구되는가깨닫게 됩니다

또한 백성의 요구대로 왕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실 수있는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마치 강물이 때로는 거꾸로 흐르는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드넓은 대양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외국 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뱀의 운동처럼 때로 과정 속에서는 꾸불꾸불 딴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듯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당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움직여가고 계십니다 러므로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찾기란 제한된 머리를 가진 우리들로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기르부음 받은 초대왕 사울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이스라엘은 초대 왕을 세우게 됩니다. 그가 사울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사울왕의 즉위를 세 단계로 기록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무엘을 개인적으로 만나 기름부음 받는 사건(9:1-10:16), 그 다음 백성들이 제비뽑아 왕으로 세우는 사건(10:17-27),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길갈에 모여 왕으로 공식 인정받는 사건(11장)입니다. 이런 절차와 과정을 거치는 동안 백성들은 군주 국가 체제로 개혁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경험을 통해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 받은 사울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라는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났고(9:1),이스라엘 자손 중에 더 준수한 청년이 없을 만큼 인물이 출중했으며, 키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착한 품성의 소유자요,잃은 암나귀를 찾기 위해 온 이스라엘 땅을 두루 다닐 만큼성실했습니다(9:4). 주의 종을 대접하는 예의가 있었으며 (9:7), 사환의 말도 받아들일 만큼 겸손했습니다(9:10). 입이 가볍지 않아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은밀성이 있었고 (10:6), 남의 허물을 품는 관용성도 있었습니다(10:27).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사모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9:20).

1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삼상10:1)

나귀를 어디 가면 찾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사울에게 사무엘은 특별히 대접한 후 머리에 기름을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왕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알려준 것입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이나(출 29:7) 예언자(왕상 19:16), 또는 왕을 성별시키는 예식에는 대개 소뿔에 담은감람유를 머리에 부었습니다. 감람유는 하나님의 은총,축복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별되어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심을 뜻하는 예식입니다. 히브리어로 'meshiach' 곧 기름부음 받은 자 는 후대에 이르러 주로 왕을 가리키게 되었는데(수4:14),‘메시아 ‘그리스도(희랍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사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6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삼10:6)

사울은 기름부음 받음으로 '카리스마' 를 가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믿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모두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고후 1:21). 러나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특별히 택함 받은 자에게만 성령님이 일시적으로 임했습니다. 사울은 성령이 임하자 예언을 했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새마음'을 주신 것입니다(10:9). 새 사람이 된 사울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에 어떤 변화가을지 자못 기대됩니다. 

여기서 잠시, 좋은 공동체를 이루는 데 제도가 중요한가, 아니면 제도를 관리할지도자가 더 중요한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쉽게 대답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정치 선진국일수록 제도의 역할이,후진국일수록 지도자 개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이것은 군주 제도를 채택하고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이스라엘을 통해서도 확인될 것입니다. 사울을 기름부어 개인적으로 먼저 왕으로 택함 받은 사실을 알린 후, 사무엘은 온 백성을 불러 초대 왕 즉위의 공적 행사를 가집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이지만 백성이 제비뽑아확정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어떤 점에서 민주 국가의 선거 제도와 유사합니다. 백성이 투표를 통해 통치자를 뽑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든지 질서 유지를 위해 권력 행사를 위임받은 통치권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권력에는 부패의 본성이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John Acton, 1834-1902)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어 왔습니다. 권력 남용을 막는 제도적 장치 가운데 하나가선거 제도입니다. 크리스천들이 공명 선거 운동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보면 이스라엘이 제비뽑아 사울을 세운 것은 백성의 선택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백성들이 확인한 절차로보아야 할 것입니다.

24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삼상10:24)

드디어 이스라엘은 군주 국가로 체제를 바꾸었습니다. '열방과 같이' 왕을세웠습니다.

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사무엘

역사의 격변기에 사무엘은 ‘킹 메이커’ 역할에 충성합니다. 그는 공동체의 앞날을 위해 역사적 선례를 만듭니다.

25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삼상10:25)

이것이 성문헌법(成文憲法)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기록을 보관할 줄 알았다는 것은 그의 역사 의식의 증거 입니다. 사무엘이 기록하여 성소에 보관한 ‘나라의 제도’ 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714-20절에서 이스라엘이 군주 체제를 채택할 때를 예견하고 미리 ‘나라의 제도’ 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헌법은 왕이나 백성의 합의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즉 아래로부터 의 헌법’ 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헌법’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열방과 달리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없도록 미리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의 왕과 같이 전횡을 휘두르며 말,아내들, 은금을 탐하지 못하도록 못박아놓았습니다(신17:16~17). 장로들은 ‘열방과 같은’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허락하되 '열방과 다른' 왕을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17:18~20)

하나님께서는 왕이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하여 통치해야 함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의 군주 제도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왕권(王權)과 마찰하는 갈등 관계가 되지 않도록 질서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또한 뒤에 오는 모든 기독교 문화권의 입헌 군주 국가나 입헌 민주 국가의 정치 원리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러더포드(Samuel Ru仕lerford, 1600-1661) 목사의 유명한 정치 원리 인 '법과 군주의 관계 (Lex Rex, The Law and the Prince)' 가 본문에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왕이 국가 권력의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최고 권위를 가지며,법 앞에 왕이든 필부든 만민이 평등하므로 왕은 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1688-1690년 영국의 명예 혁명은 제임스 2세의 전제주의로부터 입헌 군주제로 의 피 없는 혁명을 이룰수 있었는데,그것은 바로 법이 곧 왕 이라는 'Lex Rex’ 의 원리가 구체화된 열매였습니다.

어느 사회나 헌법이나 정관이 필요한 이유는 권력의 횡포나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부가 국가 기본법인 헌법과 배치되는 법률이나 규례를 제정하거나,교회에서 교회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목사가 독재하거나 노회나 당회, 제직회 결정으로 교회가 운영될 때 그 폐해가큽니다. 사회의 법질서가 무너져 탈법, 무법,불법,편법 행위가 만연할 때 모두 체제에는 위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유토피아

‘왕만 있으면 ‘군주 국가로 체제 개혁만 이루어진다면’ -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민족적 이상이요,국가적 목표였습니다. 마치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이 통일만 된다면’ 정치 체제만 바뀐다면’ ‘한국 경제가 일본만 따라 잡는다면 하는 바람과 같을 것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모두 추구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것만 구하면,저것만 이루어지면 하나님나라도 이루어질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을 빼놓은 다른 어떤 것도 인간에게 참 만족을 준 것은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면에서도 애써 추구하는 것을 얻었는데, 얻은 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가? '선악과만 먹으면' '애굽으로 이민만 가면', '왕만 세우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행복하리라고 기대했으나 그 후에 오는 것들은 환멸과 고통뿐이었습니다.(창3장, 출1장, 왕하 12장 참고) 대학에만 입학하면, 좋은 직장만 얻으면, 멋진 배우자만 얻으면, 해외에만 나가면, 아파트만 사면, 출세만 하면 하고 노력해서 얻었는데 과연 영혼의 진정한 만족을 얻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계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자유만 얻으면, 과학과 기술만 발달하면, 교육만 잘 시켜놓으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경제적 평등만 얻으면, 복지 국가만 이루면, UN만 제 역할을 잘 해주면 유토피아가 지상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점에서 인류 역사는 그 시대마다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이 만큼 진보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유포티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상은 책상머리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성은 없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편해지고 풍족해진 것이 많은 반면, 그로 인해 공해와 자원 고갈, 인간성 파괴가 얼마나 극심해졌습니까? 동구권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는 하나님을 빼놓은 메시아적 프로그램이 좌절될 수밖에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실 세상에 사는 동안 언제나 우리의 지혜를 다해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제도를 개선해 나가도록 허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북구형 사회 민주주의 체제냐, 극좌냐, 극우냐, 또는 대통령 중심제냐, 내각 책임제냐, 공화정이 옳으냐, 왕정이 옳으냐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공동 가치, 공동선, 곧 자유,평등,정의의 실현에 가장 적합한 체제를 상황에 맞게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선택권과 창조적 지성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단지 기억할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전하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이 개인이나 공동체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와 사망이 해결된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죄와 사망의 권세를 파하고 친히 통치하시는, 초월적이며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임하였으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흔들리지 않는 나라'(히12:28)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영원한 나라를 절대 기준으로 삼아 이 세상의 모든 가치, 모든 정치 체제들을 상대화시키기 위해 어느정도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어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정치 이론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장로들에게 지적한 근본적인 과오가 무엇이었습니까?

12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삼상12:12)

이 말씀은 하나님나라를 정치 체제 개혁만으로 이루려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의 은닉된 배도(背W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정치가 우상 숭배가 될수 있다"는 말을 깊이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정치 체제나 국가를 상대화시킨다고 해서, 사회 참여에 소극적이 되거나 정치적 냉소주의의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일진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크리스천들이 늘 형평을 유지해야 하는 기독교 신앙의 초월성과 역사성의 긴장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씀하십니다.

33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
(마6:33,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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