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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상 21~23장 _다윗의 아둘람굴 공동체

by 비앤피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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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22:1~2)

이제부터 다윗의 고달픈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다윗은 자신을 체포해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부모 형제와 아내 미갈,그리고 생명같이 아끼던 친구 요나단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국민적 영웅의 위치에서 밀려나, 이제는 국왕을 반역한 정치범이요, '법외방치자'로서 절박한 추격을 받는 긴장의 세월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이 시련의 기간에 다윗은 정금 같은 신앙 인격의 연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 코스였습니다. 고독한 다윗은 황야의 무법자가 되어 쫓기는 생활 가운데 오히려 평생 동지들, 곧 후에 통일 왕국의 기둥과 대들보가 될 인재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아둘람굴 동지들이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사는 다윗의 신앙과 그의 공동체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되는 위기 가운데서다윗과 ‘그의 사람들’ 의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 속인 다윗

그동안 사무엘서에 등장한 다윗은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며 사람들 앞에서 흠없이 살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일한 변호자요 보호자였던 황태자 요나단과도 작별을 고한 후,다윗은 당황하여 신앙마저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그는 먼저 사울의 추격에서 비교적 안전한 놉의 제사장 아히멜텍을 찾아갑니다. 당시 놉은 실로가 블레셋에게 파괴당한 후 제사장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으므로,다윗은 혹시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 앞날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자 했을지 모릅니다. 아히멜텍은 다윗이 혼자 찾아온 것이 뭔가 이상해서 떨며 물었습니다.

1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삼상21:1)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자 다윗은 재빨리 자신은 왕의 특명을 받아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라고 둘러댔습니다(21:2).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성소 안 우편에 차려두었다가 후에 제사장만이 먹는 '진설병' 곧 거룩한 떡을 여러 덩이 얻었습니다. 아마 세상에 가장 속이기 쉬운 부류의 사람들이 성직자인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황급히 나오느라 무기도 못 가지고 나왔다며 박물관용으로 보관해두었던 골리앗의 명검(名劍)까지 얻습니다. 칼과 빵을 얻었으니 우선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 셈이었습니다.

다윗의 행동이 특별히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쟁중에는 거짓말이 반드시 악일 수 없습니다. 사울과의 준전쟁 상태에 들어간 다윗이 극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했으니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그의 임기 응변은 오히려 칭찬받을 만합니다(막2:25 이하참조).

그러나 저자의 견해는 분명합니다. 다윗의 기만 행위는 자신의 이익만 위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없어서 저지른 과오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중에 자기 죄를 인정했으며(22:22), 다윗의 거짓말은 얼마 후 제사장들의 참혹한 대학살의 직접 원인이 되었습니다(22:18-19). 믿음이란 과거에 어떠했든지 간에 매순간마다 새롭게 하는 영원한 현재형입니다. 다윗에게서 믿음이 없어지자 진실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말합니다.

19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언12:19)

지도자에게 ‘진실한 입술'의 소유라는 도덕적 자질처럼 중요한 자격은 없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한 이유도 바로 거짓말 때문이었고, 반면에 아브라함 링컨이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가 된 것도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 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진실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기스왕 앞에서 미친 체하는 다윗

국내에 머물러 있다가는 아무래도 생명이 위태롭겠다고 판단한 다윗은 외국으로 망명처를 찾아나섰습니다. 가장 안전한 길이 사울의 원수인 블레셋의 가드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기스왕을 찾아갔습니다. 당시는 신문이나 TV 같은 매스 미디어도 없었을 텐데,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의 얼굴을 알아보았습니다. 더욱 놀랄 일은 유대 땅에 유행하는 팝송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가 그곳에도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노래는 정말 국경이 없습니다. 당황한 다윗은 재치 있는 촌극을 꾸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12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삼상21:12~13)

다윗은 본래 장난기가 심한 청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연극은 그의 문학적 천재 기질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드로 가면서 자신의 정체가폭로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력을 발휘해 미리 각본을 만들어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정신 이상자는 모두 악신 들린 것으로 여겨 터부시했으므로 왕궁은 물론 마을에서도 멀리 쫓겨났었다고 합니다.그러니까 다윗이 미친 체한 것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였고 멋진 연기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다운 믿음 있고 품위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윗도 이 사건은 회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건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왜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일까요?

10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아기스에게로 가니(삼상21:10)
12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삼상21:12)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저지른 수치스런 행동이었습니다. 다시 잠언 기자의 말을 새겨봅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다윗이 훌륭함은 신앙 생활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잊어버리지 않고 거기서 귀중한 교훈을 발견하고 글로 남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많은 시가 이러한 영적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 신앙의 선배들이 ‘영혼의 일지'를 기록하는 삶의 유익을 강조합니다. 과 가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윗은 시편 34편 같은 귀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 시편에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12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시34:12~13)

참말만 하고 살아도 부족한 인생인데, 왜 내가 비굴하게 거짓말을 하고 미친 체하는 거짓 행동을 취했었던고.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믿음이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신앙에 대해 다짐합니다. 이 시는 다시 계속됩니다.

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시34:18~20)

‘인간의 전공은 실수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전공은 용서해주시는 것’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산다고 해도 우리는 늘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 해도 하나님의 걸음 폭은 너무나 커서 우리 연약한 인간은 자주 실족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이란 늘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입니다. 늘 빗나가지만 다시 방향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생활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가 실수 없는 완전한 삶을 산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수했을 때 속히 일어나서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신앙을회복하고, 실수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과 자기 자신, 세상을 아는 지식이 한 단계씩 성장해간 데 있습니다.

아둘람굴 골동체

도피 생활의 출발부터 맛본 쓰라린 아픔을 딛고 일어선 다윗은 이방인에게로 피난가지 않고,자기 혈족인 유다 지파의 땅에서 가깝고 지형이 험준해 은신처로 알맞은 아둘람굴로 옮겨갔습니다. 어떻게 다윗의 소문이 퍼졌는지 모르나 다윗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상처 받은 자들이 한사람씩, 한가족티 모여들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굴에 머문 기간이야말로 통일 이스라엘을 창출하는 배태기(强胎期)였습니다. 본문은 짧은 두 절로 요약되어 있지만,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 (22:6, 23:3, 5,13,24)은 사무엘서의 마지막까지 계속 한 동아리가 되어 일합니다. 그러므로 그 중요성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둘람굴에는 장차 통일 왕국을 이룰 인재들이 모여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인재’ 라 부르기엔 너무나 짓눌리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22:1~2)

사울의 폭정 아래서 극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모든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울의 긴급 명령 위반자, 국가 보안법 위반자,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여 억눌려 지내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가진 자들의 착취 때문에, 또는 교육 기회가 없어 무식하거나, 가족 중에 환자가 있어서, 또는 사기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파산하여 빚지고 갚을 길이 없는 극빈자들도 모였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상처 받아 마음이 원통한 자들, 폭력 정권에 불만을 품은 유유상종後從)의 무리들이 모인 것입니다. 오합지졸들의 모임이었으나 그 수가 400명이나 되었고, 아둘람굴은 사울 정권에 소외 당한자들의 난민촌이 되었습니다.

착하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도 400명 정도가 모여서 같이 살자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젊은 다윗이 상처 많은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 고통은 쉽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해심과 인내심, 겸손과 너그러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그들을 정신적으로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는 영적 권위도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고 헌신하게 하는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지도력이 형성되려면 한없는 지혜와 희생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소외 당하는 고독과 슬픔이 무엇이며,오해받고 빼앗기는 아픔이 무엇이고, 쫓기며 도망하는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또 가난이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상처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상처 받은 자를 동정하며 치유해주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문제 많은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훈련시켜 먼저 사람을 만들고, 믿음을 키워 비전을 심어주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 충성하며, 자신에게 헌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다윗 왕국을건설할지하 운동권, 임시 정부군정예 부대를 양성한 것입니다. 마치 패잔병과 부상병들까지도 훈련시켜 독일군을 물리치는 용맹스런 군사를 만들었다는 2차 대전의 영웅,패튼(G. S. Patton, 1885~1945) 장군과 같습니다.

다윗은 폐인이 되기 십상이었을 400명의 무리를 펄펄 나는 용사들로 키웠습니다. 무술, 물매질이나 활쏘기, 창검술, 전술학 등을 훈련시켰습니다. 장차 블레셋을 비롯한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백전 백승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장군들이 망명 시절에 연마된 것입니다. 상처 많은 그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지휘자를 세워 음악을 가르치고, 합창을 하게 하며 수금과 비파를 가르쳐 오케스트라도 구성했을 것입니다. 코고는 소리, 요란한 동굴과 바람 소리, 세찬 광야로 쫓기며 도피하는 중에도 다윗은 새벽녘이나 황혼 깃든 저녁에 많은 시를 썼습니다.〈다윗의 시〉라는 제목이 붙은 시만 해도 시편 32, 52, 54, 56, 57, 59, 63,142편이 있습니다. 어떤 시의 제목에는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 등의 설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교훈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현악기에 맞춘 노래’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수많은 작시를 했으나 작곡해서 가르치기 힘들 때는 익숙한 이스라엘 민요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고 합니다.

수많은 교훈시로 하나님을 알렸고 신앙과 인생, 민족과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노래로 배웠으니 기억력이 나쁜 자들도 잘 따라 불렀을 것입니다. 동굴이라는 열악한 환경, 언제 어디서 원수들이 덤벼들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공동 생활하며 훈련받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홀로 서기와 모듬살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군사 훈련으로 힘을 기르고, 예술 교육으로 정서를 순화하며, 지식 교육으로 지성을 개발했던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삶 자체를 나누는 공동 생활 훈련이었습니다. 열등감이 있거나 과거에 상처를 많이 받아 한이 쌓인 사람은 그 성격이 모가 나 조그만 오해에도 쉽게 화를 냅니다. 어쩌다식사 당번이 실수해서 다른사람에겐 고기 두 점,자기에겐 한 점만 주었다면 아마 큰일이 날 것입니다. 속에 쌓인 울분을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내보내 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둘람굴에서도 코피 홀리며 싸우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을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힘든 훈련 중에 하나가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가치 있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만 있을 때는 자신이 자기를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힘든사람과 같이 살아보면 자신이 어떠한 인격의 소유자인가를 더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사랑 없고 참을성 없고 교만한가 등을 깨닫게 되어,공동 생활로 연단된 자는 참으로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도 아마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 같은,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 같은 더불어 사는 훈련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가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두레’ 를 만들어 서로 도우며 함께 일하며 나누어 먹지 않고서는 살수 없었지만,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산업 정보 사회에서는사람들끼리 아무런 인격적 관계 없이 컴퓨터나 기계 앞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사회의 기계적 조직체의 구성원은 될 수 있으나 인격적 관계를 이루며 서로 유기적인 지체로서 살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성도가 서로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도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수직적 개인 경건 생활은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할 정도인데,수평적으로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잘 몰라 성숙하고 균형잡힌 신앙 생활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가정과 학교, 사회 어디서도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서로 상처를 주고, 남의 말을 잘 옮기고, 공과 사를 조화 시키지 못해 괜히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므로, 몇 번 ‘형제 자매’ 로 지내보려다가 피곤해서 포기하고쉽게 교회를 옮깁니다.

신앙 생활에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확고한 자립 신앙과 자립 생활, '홀로 서기’ 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순종하는 신앙의 기초가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영적 성숙은 어떠한신앙 공동체에 속하여 있느냐에 따라크게 달라집니다. 신자들은 거듭날 때 하나님의 독자나 무남 독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인 형제 자매로 태어나는 것이므로 ‘모듬살이'의 훈련도 쌓아야 합니다. 한 몸에 기능과 역할이 다른 여러 지체가서로 필요하듯, 교회에서도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극복하고 자기의 은사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해주며, 각자 그 은사를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 은 거짓없는 사랑이 충만한 성숙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합니다(롬 12장, 고전 12-14장,엡 4:1-16 참조) 

현대 교회에서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교회 같은 공동체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1년에 몇 차례라도 수양회 같은 모임을 통해 공동 생활을 하는 것은 성숙한 크리스천을 훈련시키는 데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익힌 크리스천들의 지도력을 통해 국가 사회도 공동체 의식을 키워갈 때 지역 감정,극단적인 과소비,교통 혼란 등도 점차 해소될 것입니다. 이기심과 가족 이기주의로 살면 피차 괴롭게 되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모듬살이의 지혜를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둘람굴 생활을 통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장차 이스라엘의 역사를 변혁시킬 '창조적 소수'들로 성숙해갔습니다.

생명이 결탁된 동역자들

사무엘서 부록 가운데 한 부분인 삼하 23장 8~39절에는 다윗의 3대 명장과 30명 용장들의 공적이 실려 있습니다. 그중에는 아둘람굴 시절 다윗과 3대 명장들의 생명이 얼마나 뜨겁게 목숨을 거는 사랑으로 묶여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사건이 나옵니다.

15다윗은 지브 광야 호레스에 있을 때 사울이 자기 목숨을 노리며 나섰다는 것을 알았다.
16그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 다윗을 찾아 호레스까지 와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그를 격려해 주었다.
17"걱정 말게. 아버님의 손이 자네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네. 결국은 자네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일세. 그 때 나를 자네 버금가는 자리에 앉혀주게. 아버님도 그리 될 줄로 아신다네."
(삼하23:15~17, 공동번역)

3대 명장,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와 다윗이 이처럼 서로 목숨을 건충성심으로 하나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30명의 용장들이 후에 다윗 왕국의 핵심 인물로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대상 11:10). 다윗 말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실의 운명이 풍전 등화 같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했습니다. 은혜 입은 여러 사람들이 변절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30 용사들은 다윗의 무서운 범죄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왕권을회복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습니다.

다윗과 생명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의 수는 후에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6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선지자 갓이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합류했으며(22:5), 제사장 아비아달도 다윗을 찾아왔습니다(22:20). 따라서 다윗의 망명 임시 정부는 하나님 편에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세무서원,열혈 당원 등 열두 명과 3년간 공동 생활을 하며 그들의 인격과 신앙을 훈련시켰습니다. 걸핏하면 “누가 크냐"로 다투던 소망 없는 제자들이었으나(막 9:34),발 씻김도 받으며 예수님의 '서로가 함께’의 실천 훈련을 마친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게 되자 세상을 뒤엎는 복음의 용장으로 온 세계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본회퍼 (Dietrich Bohnhoefer)는 2차 대전이 터지기 전 히틀러의 시대악에 도전할 때 먼저 신앙으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고백 교회'의 불법 신학교로 시작해 후에 핀켄발데 (Finkenwalde)에 세워진 이 공동체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책들이 바로「신도의 공동 생활」과 「나를 따르라」입니다.본회퍼와 그의 동지들은 2차 대전중 조국과 인류를 위해, '미친버스 운전사 같은' 히틀러를 암살하는 저항 운동에 몸을 바쳤습니다. 결국 본회퍼는 1945년 4월 9일 처형당했으나 그의 복음 정신은 죽지 않고 세계 악과 싸우는 수많은 크리스천을 지금도 깨우치고 있습니다.

1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다윗의 이 시는 삼천 년 후 본회퍼에게 영감을 준「신도의 공동 생활」의 첫 문장이자, 오늘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다윗

22장 6~19절에는 신앙으로 결탁된 다윗의 동지들과는 달리, 이권(利權)으로 결탁된 사울과 도엑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굴과 숲에 있던 다윗에게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왕궁에 있던 사울에게서는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다윗을 추격하러 에셀나무 아래 지휘 사령부를 둔 사울왕이 자기 신하들에게 불평하는 말은 독재자의 외로움을 잘 보여줍니다.

8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삼상22:8)

“하나도 없도다’를 반복하는 사울의 심경은 소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사울에게도 ‘한 사람 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양떼를 돌보는 에돔 사람 도엑이라는 간악한 자였습니다. 도엑은 아히멜텍이 다윗에게 떡과 무기를 준 것을 일러바쳐 일등 공신이 되고자 했습니다. 복수심에 찬 사울왕의 명을 받아 도엑은 낫으로 풀을 베듯 아히멜텍과 85명의 제사장들,그들의 젖 먹는 자녀들끼지 모두 쳐죽였습니다. 제사장의 하얀 에봇은 붉게 물들고,그 땅은 독재자에게 무고하게 희생당한 자들로 인해 그 피가 땅에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며 당을 지어 불의를 따르는 (롬 2:8) 사울과 도엑으로 말미암아 주의 종들과 양민이 학살당하는 비극이었습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제사장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피해온 것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사울이 행한 불의를 볼 때 그는 이미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로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할 합법성을 상실했음이 분명해졌으며, 그를 대신해 왕이 되어야 할 자는 다윗밖에 없음을 알려준 사건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둘람굴에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그일라에 블레셋군이 침략해서 1년 먹을 양^을 추수해놓은 타작 마당을 탈취하고 있다는 긴급 뉴스가 들어온 것입니다. 마땅히 왕인 사울이 도와야 했으나 다윗의 유다지파에 속한 땅이어서 아마 푸대접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데모를 막으러 보낼 경찰력은 있으나 강도 잡을 경찰력이 없는 형편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다윗은 망명객의 입장에서 돕기도 힘들고,그렇다고 자기 지파인 유다 백성이 고난 받는데, 600명의 정예 용사를 갖고 있으면서 모른 체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윗의 타고난 기질로는 소식을 듣자마자 용사들을 완전 무장시켜 출전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놉과 가드에서의 실패 후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호홉을 같이 하듯 가깝게 대화하는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2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 구원하라 하시니(삼상23:2)
4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상23:4)

성경 어디서도 다윗처럼 하나님과 가깝게 구체적으로 의논하면서 행하는 인물을 찾기는 힘듭니다. 수많은 시편의 기도시가 좋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했다가 무고한 제사장들의 죽음을 본 다윗은 그것을 모두 자기의 책임으로 받아들였습니다(22:22). 기도 없는 행동은 설령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님을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무척 바쁘실 테니까 자기가 대신 모두 결정해놓고 나서 “하나님,도와주세요” 하는 태도가 왜 잘못된 태도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신자의 생활은 기도(pray) -> 계획 (plan) -> 실천(practice)의 3P의 우선 순위가 확실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꾀나 능력을 의지하던 생활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종’ 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출전한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그간 연마한 전술과 무술을 마음껏 실전에 써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23:4).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사울의 다윗 추격은 조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점점 조여왔습니다. 전국에 비밀 정보망을 구축하여 다윗의 소재를 알리도록 긴급 명령도 시달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은 배은 망덕하게다윗이 자기들에게왔다고 사울에게 보고했습니다. 다윗은 살아가면서 이처럼 은혜를 모르는 자들의 배신을 받으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간사한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지혜도 배웠습니다. 피난을 떠나면서도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일라에서 피했습니다(23:12-13).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원수가 어떻게 손댈 수 있겠습니까?

14다윗 광야 요새에도 있었고 또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23:14)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피난 다니기에는 이미 수가 너무 많아져서 숨어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둘람굴에서부터 한때 증조 할머니 롯의 고향 모압으로도 갔었고(22:3_4),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황무지와 숲, 동굴 요새지로 피해 다녔습니다.

하마터면 다윗이 사울 군사들에게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헬리콥터 구출작전이 없는 한 체포될 수밖에 없는 숨막히는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광야 남쪽 마돈 황무지 아라바에 있을 때였습니다. 이곳은 깊은 협곡과 메마른 개울, 그리고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지형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거의 절망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바로 그 시각에 블레셋군이 이스라엘을 다시 침략해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울은 어쩔 수 없이 다윗의 추격을 포기하고 블레셋군과 싸우러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신기한 방법으로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어 임했습니다. 하루만 블레셋이 늦게 침공했더라도 다윗은 체포되어 처형당했을 것입니다. 블레셋이 침공한 그 사건 자체는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었으나,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간섭해 다윗을 보호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친히 다윗을 인도하고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다윗이 지쳐 낙심할 때 요나단을 보내어 용기도 주셨습니다.

16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23:16)

다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진 다윗과 요나단이 다시 십 광야 수풀에서 만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많은 눈물을 홀렸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살다가 자기 아들에게도 버림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에 순복시키며 살 때,하나님께서는 동역자들과 친구 요나단을 보내셔서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다윗은 이 기간중에 시편 31, 54편과 같은 귀한 시를 남겼습니다.

3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시31:3~4)
2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3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
4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54:2~4)

다윗과 그의 동역자들을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한,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책임지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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