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
4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삼상31:4) |
오늘 본문에서 10년 가까이 다윗의 뒤를 쫓던 사울이 비참하게 죽습니다. 쫓기던 다윗은 망명 생활의 마지막 고비에서 큰 실패와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믿음으로 회복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사울과 다윗의 일생은 참으로 극적인 반전(反轉)과 대조의 극치를 이룹니다. 우리는 사울을 통해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의 인생이 그 과정에는 얻는 것이 많아 보이지만 끝내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잃은 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며, 반면 에 다윗을 통해서는신본주의자(神本主義者)의 인생이 늘 손해보며 사는 것 같으나 종국에는 찾은 자의 삶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기 발견의 은혜를 덧입을 뿐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요동함이 없는 바른 기독교 인생관을 확립 해야할것입니다.
시글락의 다윗
우리는 선을 행하다 낙심하기 쉬운 나약한 인간입니다. 다윗도 10년 가까운 떠돌이 생활에 지친 나머지, 블레셋의 5대 도시 국가 중 하나인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난갔습니다. 전에는 혼자서 찾아갔다가 혼쭐이 난 적도 있었으나(21:10~15),이번에는 정예군 600여 명과 함께 찾아갔더니 아기스왕은 다윗을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쉽게 받아주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다윗의 블레셋 이주(移住)는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작정 쫓기는 생활만을 하다가는 모든 힘이 소진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만약 측근들의 압력으로 사울과 일전(一戰)이라도 벌이는 길을 택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둘로 분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때로 성경 역사나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끝없는 불화보다는 서로 헤어지는 것이 나은경우가적지 않았습니다(행 15:16-41, 고전 7:10-11). 더구나 600명 군사와 그 가족들, 다윗의 친족들,사울에게 불만을 품고 온 베냐민과 유다 지파의 무리들(대상 12장 참조)로 다윗이 돌봐야 할 식솔들의 수는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더이상 버티기 힘든 때에 일시적이지만 블레셋으로 옮긴 것은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됨직한 현명한 처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살다보면 차선으로 만족해야 하거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악(次惡,lesser evil)을 택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1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삼상27:1) |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23:2-4) 하던 다윗의 자세는 어디로 갔습니까? 위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27:1), ‘그의 생각에’ (27:11) - 이것이 문제의 출발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의논하는 인격적인 대화와 교제가 끊긴 가장 확실한 증거 입니다. 그동안 아슬아슬한 위기 때마다 사울에게서 벗어난 것이 하나님의 보호와 간섭의 은혜였다는 것을 잠시 까맣게 잊은 것이었습니다(23:14,25:29 참조).
다윗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시글락에서의 1년 4개월은 다윗의 망명 생활 가운데 신앙적으로는 가장 바닥으로 떨어진 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물질적으로는 제법 수확이 큰 시기였습니다. 늘상 이스라엘에게 위협의 대상이었던 그술족, 기르스족, 아말렉족을 쳐서 그들을 털었습니다. 털되 아주깨끗이 털곤 했습니다.
9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10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삼상27:9~10) |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노획물이 많아져 소유가 불었습니다. 그들은 춥고 배고프던 광야와 동굴 생활에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잘 살아보세” 하며 한풀이하듯 재산을 모으며, 그 재산을 쌓아둘 집도 장만했을 것입니다. 다윗뿐 아니라 그의 용사들도 아내를 얻었고, 두꺼비 같은 자식들도 낳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적국이었지만 안정된 블레셋에서 식 량 걱정 없이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산과 자식들은 늘어갔으나 오히려 다윗의 신앙과 내면은 날이 갈수록 야위어만 갔습니다. 먹고 입을 것은 많아졌으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솟구쳐 뿜어나오던 꿈과 비전, 사명감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실 이방의 이스라엘 원수들을 노략한 후에도, 마치 자신이 블레셋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귀순 용사라도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치고왔다고 거짓말로 아기스왕을 속이며 곡예 부리듯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본래 타고나기를, 거짓을 참말처럼 잘 꾸며낼 줄 아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질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천재적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겠지만,그렇지 못하니 진실을 잃어버리고 때에 따라 이익을 좇아 약악빠르게 사는 싸구려 인생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잃어버리자 다윗의 삶에는 그 아름답고 영감 어린 시도, 노래도, 수금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소유는 쌓여가는데 삶은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삶의 맛도, 멋도, 골리앗을 때려 눕히던 그 용기와 박력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젊은 시절,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과 조국을 위해 송두리째 바치겠다고 사명감에 불타던 이들이 나이들면서 중산층 이상의 안정된 여유를 누리는 ‘여피 (yuppie)’ 들이 되면,그동안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삶의 둥우리의 온기에 파묻혀,젊은 날의 거짓 없는 믿음은 한때 멋모르고 가졌던 객기 정도로 치부되고 맙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모습과 직장이나 사회에서의 모습이 연극처럼 다른, 이중 생활에 그 영혼이 시들어버려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인생으로 전락하기가 쉽습니다.
다햇이 블레셋에서 세련된 술책을 쓰며 아기스왕 앞에서 가면을 쓰고 신임도 받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삶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대접전을 앞두고 다윗과 그 용사들도 아기스왕과 함께 출전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딜레마
1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삼상28:1) |
속임수로 아기스왕의 신임을 받게 된 다윗은 이제 진퇴 양난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끌고왔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다고 거짓말한 다윗으로서는 아기스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아기스왕은 다윗의 뛰어난 무술과 빼어난 능력을 높이사 자신의 경호실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블레셋의 작전은 그간 간헐적으로 행해온 국지전(局地戰)이 아니라, 골리앗의 수치스런 패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벌이는 전면전(全面戰)이었습니다. 특히 샘이 있고 비옥한 이스르엘 평지 쪽을 점령하지 않고는 국력을 키워나가기 힘든 블레셋이 치밀하게 준비한 전쟁이었습니다. 시글락에서 블레셋군 집결 장소인 아백까지는 사홀 행군 거리였습니다(30:1). 전쟁터로 나가는 다윗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공적(公敵) 제1호인 블레셋군의 1개 대대장으로, 자신의 동족을 죽01러 전장에 나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블레셋군으로 참전했다가 이스라엘과 전쟁이 시작되면, 때를 봐서 바로 공격 목표를 바꾸어 블레셋과 싸워야지.” 그퍼나 그것은 전쟁에 대해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한 작전임을 잘 알 것입니다. 다윗의 행군길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다윗은 그제서야 비로소 기도했을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잊었다가도, 위기에는 어김없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은혜를 구할 줄 아는 뿌리 깊은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전장에 온 것을 보고 블레셋 장군들이 반대해 결국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29장). 분명한 하나님의 간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발과 그 가족을 죽이는 피홀림의 죄에서 다윗을 막아주셨듯이 (삼상 25장), 이번에는 동족을 피홀리게 해야 하는 곤경에서 괴할 갈 (고전 10:13)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 땅으로 돌아온 다윗에게는 더 큰 재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앞두고 모두 북방 전선에 병력이 집결되었으므로 자연히 남방지역에는힘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 시기를놓치지 않고 아말텍은 유다와 블레셋 남부 도시를 습격해 크게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중에 시글락, 곧 다윗과 그의 용사들의 기지촌도 포함되었습니다. 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던 아말텍은 그곳의 여자들과 자녀들끼지 포로로 잡아가고 가축과 재산을 모조리 끌고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며 온 성에 불을 질렀습니다.
3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삼상30:3~4) |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리 높여 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600명 용사들이 웅성거리며 군중심리에 사로잡히자 이성을 잃고 모든 책임을 다윗에게 물어,그를 돌로 쳐죽이자고 할 정도로 사태는 무섭게 진전했습니다. 처자식을 잃은 슬픔과 분노가 증오로 변해서 속죄양을 찾는 폭발구를 찾게 된 것입니다. 격정의 화약고에 불이 당겨지자 그들은 이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니 통일 이스라엘 왕국 이니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던 믿음을 잃고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며 근처 여러 족속들의 여자들까지 죽이던 그 잔인성이 부하들에게까지 전염되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를 힘입고 회복하는 다윗
다윗의 망명 생활 10년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아무리 빨치산 생활같이 고생스런 삶이라 해도 생명을 같이 하던 아둘람굴의 동지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믿고 신뢰하며 사랑을 쏟던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반당하는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모든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하더라도 생명을 나누던 동지들의 변심,친구들의 배신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증오심으로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돌을 들고 자신에게로 몰려오는 성난 무리들의 모습 앞에서 다윗은 비로소 자신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림을 느끼며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맛보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형제보다더 믿음을 주던 친구라 하더라도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라는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를 얻었을 것입니다.
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
‘다급하다'라는 말은 밀이 트이지 않고 막히어 몹시 급하다 봅시 궁색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위기는 항상 하나님의 기회가 됩니다. 신앙이 없는 자는 시련의 돌풍에 침몰하나 신앙을 가진 자는 오히려 돌풍을 타고 솟아오릅니다. 보통 새들은 날개가 있어도 돌풍에 추락하지만 독수리가 돌풍에 오히려 더 높이, 더 빠른 속도로 치솟아오를 수 있는 비결은 그 날개의 각도에 있다고 합니다. 잽싸게 날개 각도를 기울이는 경사 조정 능력 때문에 침몰하지 않고 치솟아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의 돌풍에 치솟아오를 수 있는 신앙의 나래를 펼 줄 알았습니다.
그간 사랑을 나누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잡혀가고, 슬금슬금 모으는 재미를 주던 가산은 잿더미가 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며 동고 동락하던 동지들이 일그러진 성난 얼굴로 돌을 치켜들고 달려드는 살벌한 한계 상황에서 고독한 다윗의 영혼이 어디를 향할 수 있었겠습니까. 눈의 경사 각도를 땅에서부터 치켜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는 수밖에 철저하게 무력해진 다윗이 어디서 도움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긍훌과 자비가 풍요로운 분이십니다. 자신이 택한 종을 불쌍히 여기고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의 심연까지 내려가는 절망 속에 있는 다윗의 차가운 가슴에 소망의 불씨를 심어주셨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30:8). 다윗이 신앙을 회복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신앙이 회복되자오랫동안상실했던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도 되살아났습니다. 아말텍이 죽으라고 내어버린 병든 애굽 청년을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돌봐줍니다. 그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된 다윗과 용사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말렉을 쫓아가서 기습 작전으로 잃었던 처자식들, 빼앗겼던 양떼와 소떼들 모두를 도로 찾아왔습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30장 18-19절에 “도로 찾아왔다’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신앙을 회복하자 다윗은 빼앗겼던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 분배의 율례를 정한 다윗
지도자의 리더십은 곤경을 극복할 때 더욱 강화됩니다. 사울은 아말텍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버림을 받았습니다(15장). 반면에 다윗은 아말랙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다운 자질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600명 정도의 적은 무리들에게지만다윗은 이 사건이 전환점이 되어 왕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전쟁에 나섰던 용사들이나 피곤하여 일선에 투입되지 못하고 낙오된 후방 예비군으로 머물렀던 용사들이나 전리품을 똑같이 분배해준 것이었습니다. 일선에 나섰던 자들 중에 심술궂은 자들이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이 친구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않았으니 우리가 되찾은 전리품은 하나도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처자들만 주어서 데리고 가게 합시다"(30:22, 공동번역). 다함께 가난할 때는 이런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오히려 물질이 많아지니 인간의 탐심이 기승을부리게 됩니다.
이때 다윗은 왕과 같은 위치에서 재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보여준 다윗의 선례(先例)는 이스라엘 자손 만대의 관습법이 되었습니다.
23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24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삼상30:23~24) |
공동체 의식은 먼저 똑같이 나눠 먹는 데서 출발하므로, 그런 점에서 공동체란 본질적으로 *밥상 공동체’ 입니다. 다윗은 망명 생활에서부터 동지들에게 나눔의 공동체 원칙을 분명히 하여,복지 사회의 원리를 실천한 셈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선례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획득한 재화(財貨)가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승리의 은총으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신앙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시글락에서 재산을 모았다가 모두 빼앗겼고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때 그들은 재산을 의지하는 삶의 우매함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다시 물질이 생기자 탐심이 되살아나 또다시 쌓아두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더 능력 있어 얻은 것을 어째서 무능하여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경쟁의 낙오자들에게 공짜로 나누어줘야 하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물질의 진정한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자라는 청지기 사상,확고한 신학이 없을 때 공정한 분배란 한갓 맹랑한 망상에 그치고 맙니다.
엔돌의 영매를 찾는 사울
무당을 찾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 도대체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입니다. 날이 갈수록 착착 증강되는 수람 전선의 어마어마한 블레셋 진영을 쳐다보는 사울왕의 가슴엔 찬 서리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골리앗 이후 처음으로다시 위협적인 블레셋의 대공략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울은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찾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인격이라기보다는 초자연적 계시로 재앙을 피할 길을 알려주시는 대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간장이 타는 다급한 상황에서 사울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 것은 오직 신의 계시였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꿈을 통해서든,제사장이 지니고 있는 우림을 매개체로 하든, 아니면 예언자라는 대행자를 통해서든 절박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그 무엇’ 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불순종하며 회개하지 않은 죄인에게 제멋대로 이용당하기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각해낸 것이 자기가 인간 쓰레기라고 쫓아냈던 ‘신접(神接)한 여인', 곧 영매였습니다. 무당의 강신술(降神術,Necromancy)을 통해서라도 무슨 도움을 얻어보려고 매달립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지혜가 거대한 벽에 부딪혔을 때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를 통해 자동적인 해결을 구하는 심리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7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삼상28:7~8) |
영매의 집에서 사울은 죽은 사무엘의 혼백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의 처절하도록 절망적인 갑갑한 심정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15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삼상28:15) |
다급했을 때 다윗은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다윗은 인간 한계를 넘어선 초월자를 향해 ‘열려 있는 인생’ 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세계내적(世界內的)으로 닫혀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의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라는 말은 얼마나 처절한 고백입니까? 어쩌면 사울의 유언과 다를 바 없는 토로입니다. 이 말이 좀더 생의 전반부에서 인생 요절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지 않을 때 인생의 홍수가 몰아치면 와르르 허물어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무엘은 내일 전쟁터에서 사울과 자식들이 죽을 것이며 , 이스라엘은 패전하고 나라의 왕위는 다윗에게로 옮겨갈 것이라고 선고했습니다.
20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삼상28:20) |
'기력이 다하여 땅에 엎드러진’ 사울- 이것이 제한된 자기 자원만을 의지해 살아온 그의 인생의 바닥난 모습입니다. 영매가 차려주는 음식으로 간신히 의식을 회복해 일어선 사울왕은 구름떼 같은 적들의 위협 앞에서 “왕만 있으면 무슨 수가 있겠지” 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어리석고 순진한 백성들이 있는 길보아산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그 밤길을, 가롯 유다의 밤과 같은 그 밤을 가르며(요 13:30), 휘청거리면서 죽음의 길을 걷는사울을통해 하나님 없이 인간의 최선을다해 살아보려다가기력이 다해버린, 슬프디 슬픈 인생의 마지막을,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 없이 합리주의에 기초한 현대 인본주의 문화의 비극적 종말까지도 가슴 아프게 바라보게 됩니다.
자기 칼을 뽑아 자결한 사울
사람이 살기도 잘해야 하지만, 죽기도 잘해야 합니다. 때로 잘 살지 못했으나 죽을 때 멋있게 죽어, 인생에 합격 점수를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았을 때보다 죽으면서 더 많은 원수들을 죽인 삼손(삿 16:30)이나, 평생을 강도질이나 하다가 생애 처음이요 마지막 기도를 잘해 낙원에 제1호로 도착한 십자가상의 어느 유대인(눅 23:39-43)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성경에서 자살한 첫 인물로 기록됩니다. 그는 죽기 전, 길보아 전투에서 먼저 아들들 곧 요나단, 아비나답과 말기수아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부모는 무덤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이런 비극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사울이 ‘어떻게’ 죽는가도 강조하고 있는 듯 합니다.
3이처럼 사울의 주변에 싸움이 치열하자 그는 적군의 화살에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다. 4이때 사울은 자기 경호병에게 "너는 칼을 뽑아 저 블레셋 이방인들이 나를 잡아 괴롭히기 전에 어서 나를 죽여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 경호병이 두려워서 감히 그를 죽이지 못하자 사울은 자기 칼을 집어 칼 끝을 배에 대고 그 위에 엎드러졌다. (삼상31:3~4, 현대인의 성경) |
사울의 자살이 영웅적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블레셋이 포로에게 행하는 잔학 행위를 두려워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울의 자살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사울은 일생을 통해 자기에게 부딪쳐오는 문제들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용감히 대결할 도전으로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도피해야 할 귀찮은 것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를수록 의식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직면해서도 다만 적이 자신을 잔인하게 모독할지 모른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사울의 자기존대의식은 죽는 순간까지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자기 생명을 써달라고 기도했던 이타적인 태도와는 대조가 됩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존재입니다.
사울의 비극은 개인의 비참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족, 그의 민족 - 공동체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지도자 한사람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닫혀 있는 사람과 열려 있는 사람
사울의 생애를 되돌아보면 현대의 독자들은 몇 가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울이 그토록 나쁜 사람인가? 무슨 죄를 크게 범했다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왕을 무참히 버리실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간사하고 나쁜 짓을 많이 한 이는 다윗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공평하시지 않은 게 아닌가? 그래서 성경을 주로 문학적 시각에서만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사울은 다윗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 인물이 아닐까? 어쩌면 다윗으로 하여금 득점할 수 있도록 사울이 희생타를 날린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물론 사울에게 잔신경을 많이 쓰고 우울중에 잘 빠지는 성격적 결함도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운명의 각본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외적인 힘, 또는환경의 강요로그런 어두운 역할을 할수밖에 없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저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다윗은 비록 매너가 없고 인간들의 행동 기준에서 부족함이 많이 발견될지는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거역하고, 끝까지 자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만약에 사울이 하나님의 종 사무엘의 말씀을 받고 회개하여 하나님 뜻에 따라서 다윗을 왕위 계승자로 영접해 동역했더라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물론, 그의 생애나 가족,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는 과연 그 사람이 십계명 중 제1계명을 따르고 있느냐로 판단 기준을 삼아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후에 열왕기 사가(史家)의 준엄한 평가 기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서 전체를 통하여 인본주의자로서의 사울의 모습을 잠시 훑어보는 것이 그의 생애를 정리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본래 성실하나 영적 세계에는 무관심한 청년이었습니다(9:4~6). 또한 자 의식과 비교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으며 (10:22), 그의 행동 기준은 거의 상황 윤리적이었습니다(13:11-1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의식이 없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만 했습니다(15:9, 24). 그의 인생 목적은 철저히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15:12). 생활 태도가퍽 합리적인 것 같으나 믿음이 없었고(17:25, 33, 38), 늘 경쟁 의식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마음에 노를 품고 살았습니다(18:8) 그러므로 그의 인생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감정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24:1-2,16-22,26:21-25).
하나님 없이 자기 중심으로 사는 삶은 그의 생애에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치기’ 전까지는 그럴 듯해 보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이 바닥나는 결정적 상황에 부닥칠 때 무당이나 점쟁이, 그리고 점성가를 찾다가 그 마지막은 절망의 심 연으로 침몰하고 맙니다.
인본주의자 사울과 대조해볼 때 신본주의자 다윗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범죄하고 실수가 많았으나 결국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망명 생활의 마지막 단계에서 겪은 패배와 승리의 영적 체험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겸손을 몸에 익히는 인격 성숙의 기회가 되었고, 후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그릇으로 빚어져갈 수 있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왕위에 올랐더라면 다윗 역시 사울같이 비극적 인생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것 같으나 사실은 두 길밖에 없습니다. 신본주의자의 인생과 인본주의자의 인생, 초월자를 향해 ‘열려 있는 인생’ 과 세계 내적으로 '닫혀 있는 인생’, 위를 우러러보는 인생과 땅의 것만 바라보는 인생. 당신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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