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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사무엘상 24~26장 _광야의 다윗

by 비앤피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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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 광야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삼상26:1)
23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삼상26:23)

본문에서도 쥐를 쫓는 고양이같이 다윗을 향한 사울왕의 추격은 집요하게 계속됩니다. 특히 마온 황무지에서 다윗은 독 안에 든 쥐 신세였으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잡았다고 생각했는데,블레셋의 침공으로 아쉽게 기회를 놓친 사울왕은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24:2)을 대동하고 다시 엔게디 황무지로 토벌하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마치 사울을 비꼬기라도 하듯 하마터면 고양이가 쫓기던 쥐에게 물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24장과 26장에서 두 차례나 사울이 다윗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극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사울을 살려준 다윗의 태도는 원수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광야의 사람으로서의 깊은 신앙과 범상한 정치적 경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손자인 르호보암 때 이르러 왕국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는데, 이스라엘의 경우 약 300년 동안에 무려 열두 차례나 폭력적인 내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국은 예외적으로 건국 초기 1세기 동안 전혀 내전이나 혁명이 없는 정치 안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부족 연맹 체제에서 갓 출발한 왕국으로서 놀라운 정치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통일과 안정이 가능했겠습니까?

그것은 다윗의 하나님 중심의 통치 원칙이 이 스라엘 공동체의 기초를 든든하게 형성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는'(24:6, 26:11)것이라는 원칙을 굳게 지키면서 사울왕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위해 불의를 따를 수 없다"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3세계의 여러 신생 국가들이 독재 정권이나 무능한 정권을 타도하고 민생고에 시달리는 백성을 살리고자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동기는 그럴 듯했지만 그 결과 어떤 혼란을 겪었는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혼란과 갈등을 겪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는 다윗과 사울의 관계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사울왕을 아끼는 다원

자기들의 은신저인 굴 속으로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제 발로 들어왔을때,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견해는 서로 달랐습니다 신학적 해석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4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삼상24:4)

다윗의 사람들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토끼를 잡아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느냐는 논리였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24장 4절 말씀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23장 17절에서 요나단이 말하는 중에 다윗이 사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을 뿐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한 노처녀가 자기 마음에 드는 한 청년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게 저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셨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자기 기분을 계시화시켜서 한 소리였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사울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내심 피난살이에 시달릴 대로 시달렸기 때문에 이런 천우신조의 기회를 통해 끝장을 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생명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권면이 매우 신앙적으로 들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달리 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사울을 회개시킬 증거를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기회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죽일 수 있었지만 살려주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사울의 옷자락만 살며시 베었습니다. 그리고 볼 일을 보고 굴에서 나가는 사울을 향해 자신의 무죄함과 사울의 생명을 아끼는 충정을 담대하게 알렸습니다. 다윗은 어떻게든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0오늘 여호와께서 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삼상24:10)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너그럽고 정이 많아서 다윗이 그토록 포악해진 사울을 관용한 것은 아닙니다. 25장에서 나발에게 격분하여 부하들에게 칼을 차게 하고 씨를 말리겠다고 나섰던 사건을 보면 다윗은 자존심도 강하고 성깔도 있는 청년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아끼는 유일한 이유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입장은 하나님께서 성별하여 세우신 왕이므로 내가 직접 피홀려 보복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신다는 것이 었습니다. 왕 자체보다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직분과 그 권위의 신성함을 존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칙의 사람 다윗

다윗은 결코 ‘나와 사울 이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만 문제를 보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한 기본적 존경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신학적 원칙을지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의 신앙 양y이 확신하는 바였기 때문에 통치 기간 중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받쳐주는 지지 세력들의 집단적 압력에도 대항해야 했습니다. 600명 동지들 모두가 원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횡포에 굴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만 본다면 다윗은 의회 민주주의의 신봉자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중, 민중’ 말은 많이 하지만 개념화 된 민중이 아니라 현실적 실체로서의 민중이란적지 않은 경우 원칙 대신 이익과 편의(便宣)를 따르는 줏대없는 무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51%가 100%를 장악하는 민주주의 곧 'democracy'는 마귀주의 곧 'devil-cracy'가 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현실의 이 익을 좇는 기회주의자나 편리에 따라 타협하며 사는 편의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원칙의 사람'이란 말이 시대 상황에 대한 유연성을 버린 고집 불통이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역사를 일관하는 원리를 붙잡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현실적으로 손해가 나더라도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바른 길을 선택하는 용기를 갖춘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첫째,그는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였습니다.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을 두고 다윗이 ‘마음이 찔려’ (24:5)라고 표현한 것은 ‘양의 가책을 받아 라는 뜻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악을 구분할 수 있도록 태어날 때부터 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양심이 타락 후 부패한 인간 본성과 죄악된 문화의 영향으로 더러워질 수 있고 화인맞아 마비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딤후 4:2). 마치 나침반 곁에 자석을 놓으면 자침의 방향이 본래의 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석이 끄는 쪽으로 끌려가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악한 양이 순수성을 회복하게 됩니다(히 10:22). 깨끗한 양심을 찾게 된 사도 바울은 벨렉스 총독 앞에서 자신을 이렇게 변호한 적이 있습니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24:16)

둘째,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의로운심판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개인이나 사울의 일생을 주관하시는 분이며,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사건을 통치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악한 사울 정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숨은 계획을 두고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역사 철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없다면 우리는 끝내 타협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히 3: 12-19 참조), 하물며 연약한 인간의 선행과 인내에 한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역사의 과정에서 인과 응보의 법칙이 나타나든지,아니면 역사의 종말에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보응이 있다는 믿음이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용기 있는 사람, 원수를 관용하는 큰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24:12)
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억울
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삼상24:15)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 기준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 존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 분노로 하시리라
(롬2:6~8)

다윗은 비록 사울을 죽이는 것이 정당 방위였고 공동체에 유익한 행위로 합리화할 수 있었겠지만,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대행자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내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동지들이 뭐라고 하든 요동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가 ‘섭리적 인도하심’ 같이 보일 때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순간순간 염두에 두고 자기 행동의 방향플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울며 후회하는 사울왕

다윗이 말씀대로 사는 것과는 달리 사울은 ‘마음대로’ 사는 인생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를 죽일 수도 있었으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려준 다윗 앞에서 포악해졌던 사울도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말을 마치자마자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24:16) 고 소리 높여 울며 다윗을 칭찬했습니다.

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삼상24:17)

그리고 장차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자기 자손들을 잘 돌봐주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선하고 자기가 악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야 나라가 든든해질 것도 인정했습니다. 마땅히 다윗 추격을 중지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바람직하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본래의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죄로 오염된 감정과 탐심의 지배를 받고 있는,자신을 상실한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사울은 주위 사람들의 설득이나 압력에 따라 사는 자신을 도둑맞은 인생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마음에는 전혀 하나님이 없고,따라서 진정한 회개’ 도 없었습니다. 아니면 '회(梅)’ 는 있는데 '개(改)' 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울며 불며 감동적인 연극을 했던 사울은 다윗과 아무런 기 약도 없이,구체적으로 아무런 달라짐도 없이 자신은 왕궁으로, 다윗은 광야에 그냥 남겨둔 채 서로 갈라졌습니다.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간 것입니다.

22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삼상24:22)

나발과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

25장의 나발과 아비가일 사건은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살려주는 24장, 26장의 유사한 사건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재미 있지만 역사 서술의 맥을 끊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기록이 망명중에 다윗이 아내를 얻은 역사적 의미도 있겠고 다윗과 600명 사람들의 병 문제에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엘서 저자가 이 사건을 통해 주려는 메시지는 더욱 의미 심장한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 나발의 운명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사울의 운명을 넌지시 말해주는 한편,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을 통해 다윗이 망명 생활중에 무죄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며, 또한 신앙적 위기를 맞아 다윗이 어떻게 결정적인 성숙을 맛볼 수 있었는가를 보껴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3그 사람의 이름 나발이요 그의 아내 이름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삼상25:3)

살다보면 영 어울리지 않는 부부를 만날 때가 있는데, 아마 갈멜의 졸부 나발과 아비가일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나발은 구약의 ‘어리석은 부자 로서(눅 12:15-21 참조), 큰 재산도 아리따운 아내도 소유했으나 지혜가 없는 자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나 고용원들에게조차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실상은 빈곤한 자였습니다(25:17, 25). 당시 ‘양털 깎는 날 은 추수하는 날 같은 큰 잔치여서 어떤 사람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때였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간 나발의 양떼와 소유를 보호해주었고, 그 대가로 식 량을 공급받아온 것 같습니다. 물론 현대처럼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손님 대접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던 근동아었고 이런 일은 하나의 사회적인 통례(通例)였습니다.

그런데 호의를 구하는 다윗의 사람들에게 나발은 졸부의 거드름을 피우며 거절합니다. 그는 다윗 같은 야당 지도자에게 정치 헌금을 줄 수 없다는 둣이 말했으나 사실은 인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한 인격적 모독을 받은 다윗은 꾹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여 나발의 씨를 말려야겠다고 작정하고 400명 용사를 데리고 복수의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습니다. 하마터면 놉의 제사장들을 죽인 사울처럼(22:18-19), 동족의 피를 직접 홀림으로써 과거 광주 사태를 일으킨 민주 정의당 두령들같이

다윗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길 뻔한 위태로운 순간이었습니다.나발의 총명한 아내 아비가일은 자기 종들에게서 다윗이 출동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민첩하게 대책을 세워 수습에 나섰습니다. 격분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돌격 앞으로!” 하며 달려오는 다윗을 도중에서 만난 아비가일은 황급히 나귀에서 내려 그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간청합니다.

24절부터 31절까지에 나오는 아비가일의 말 300 단어는 성경에 기록된 여자의 말로서는 가장 긴 말입니다. 그녀의 지혜, 그 신앙,그 비전에 범상한 여인의 수다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패에 맞는 말 (잠 15:23)의 위력을 엿볼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톰 휴스턴은 여기 기록된 아비가일의 말이야말로 섭외 활동(PR)의 교본으로 사용할 만하다 했습니다.잠시 성경을 펴놓고 본문을 같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①상대방을 비판하기 전 당신 자신의 실수를 먼저 인정하고 말하라(24-25절). ②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할 때는 완곡하고 간접적으로 말하라(26절). ③상대방께게 과오를 시정化 것은 아주 쉬운 것이라고 느끼게 하라(27절). ④정직하게 상대방을 인정해주라(28절) ⑤상대방을 높이 평가해주고 그 수준에 맞추어 행동할 수밖에 없게 하라(28~29절) ⑥상대방이 체면을 세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라(30~31절). ©상대방이 당신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해주라(32-33절).

아비가일은 외모도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용기와 지혜, 그리고 덕을 함께 갖춘 여자였습니다. 여자의 침묵이 항상 덕이고 금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이 먼저는 가정을 돌봐야겠지만,아비가일같이 그 잠재력을 한껏 발휘해 교회와 사회에서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활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아질 것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나발과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다윗의 생애에 일관하는 삶의 원칙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심판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직접 사람을 심판하고 보복하지는 않는다’고 했던 다윗도 하마터면 나발 때문에 그 원칙을 깰 뻔 했으나 아비가일의 시의 (時宣)적절한 결정적인 도움을 입어 고수할 수 있었습니다.

37-38나발이 아침에 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아내가 일어난 일을 그에게 말하자 그는 갑자기 심장 마비를 일으켜 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는 약 10일 동안 전신이 마비된 채로 누워 있다가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결국 죽고 말았다.
39다윗 나발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를 찬양하세! 하나님은 나발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내가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셨구나. 결국 나발은 자기 죄에 대한 대가를 받고 말았다." 그런 다음 다윗 아비가일 아내로 삼고자 그녀에게 사람을 보내 그 뜻을 전하도록 하였다.
(삼상25:37~39)

이 사건은 심리적으로 다윗에게 큰 확신을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그간 "선으로 악을 이겨야지”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끝까지 악인을 보복해서는 안 되지” 一 몇 번이나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도저히 수그러들 줄 모르는 사울의 집요한 핍박에 시달릴 때, 내가 혹시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슬며시 일어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손대지 않았으나 나발을 하나님께서 친히 징벌하심을 경험했을 때 다윗은 더욱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대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감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다윗은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과 확신을 갖게 되고, 그녀의 지혜로운 내조에 힘입어 골치 아프게 하는 수백 명의 아둘람굴 동지들의 인간 관계나 앞날의 계획 등을 다듬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사울왕올 소중히 여긴 다윗

쫓기는 입장에 있는 다윗이 다시 한번 사울왕을쉽게 처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자신을 추격하러 온 사울왕의 병영에 다윗과 아비새가 살며시 들어가보니 사울왕과 군사령관 아브넬이 경호원이나 보초도 없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때 아비새가 다윗에게 속삭이듯 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26:8) 그러니까 간단히 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했습니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아비새도 자기가 하나님심판의 대행자가 되겠다고 자청한 것입니다 다윗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나발 사건을 체험한 투 더욱 혼들림 없는 신념을 가지고 그는 말합니다

9다윗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삼상26:9~10)

다윗은 증거물로 사울의 머리 맡에 있는 창과 물병으 가지고 떠난 후, 군사령관의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는 아브넬을 책망했습니다.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고 또다시 감동하며 내가 범죄하였도다 …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726:21)라며 용서를 빌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잘못을 쉽게 시인하면서도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그의 일생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23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삼상26:23~24)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믿고 생명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원수 사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보복을 허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며 원수 갚음은 하나님의 권한임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일반 사회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바울은 역설합니다.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19~20)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높은 수준의 사랑을 명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다윗은 소극적이며 수동적으로 사울의 핍박을 참고 견디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은 후에 이렇게 고백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4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109:4)

다윗은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원수를 패배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라는 진리를 순종했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에게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벧전 2:23-24) 원수 사랑의 참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같은 폭군의 위협을 끝까지 참고 그 생명을 존중한 다윗의 태도를 타락한 일반 세속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히틀러 같은 자에게는 된수 사랑 의 원리를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서는 반드시 ‘원수 사랑의 비범성’ 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연적인 인간 본성으로는 불7뉴하기 때문에 다윗은 오직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롬 5;5)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리나 이방인들의 자연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의 단계에서 올라가 원수 사랑의 단계까지 이를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마 5:4&48),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인격적으로 체험하고 덧입지 않고서 단지 인간의 의지적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주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원수 사랑을 통해 이스라엘이 겉모잉은 세속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그 속알맹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담아 하나님나라의 윤리를 실천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에 사울의 베냐민 지파까지도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쁜 마음으로 추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놀라운 다윗의 사랑이 밑받침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시시 각각으로 느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이 이처럼 혼들림 없는 내적 확신과 비범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다윗의 광야

사울에게 쫓기는 10년 가까운 긴 세월을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비바람 치는 거친 광야와 들짐승 울음 소리 황량한 동굴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지리적 위치는 주로 예루살렘의 서남쪽이나 정남쪽 방향에 있었습니다.

14-15다윗은  광야 산간 지대에 숨어 있었는데(삼상23:14, 현대인의 성경)
다원이 엔게디 광야로 갔다(24:1, 현대인의 성경)
그후에 다원은 바란광야로 내려갔다(25:1, 현대인의 성경)
다윗이 광야로 돌아와(26:1, 현대인의 성경)

저자가 광야 지형을 자주 언급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남기고 피난 생활의 힘들고 두려운 생활 환경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또 한편 팡야의 고난을 겪고 난 후에 찾아올 다윗의 영광을 교훈하려는 의도가 숨겨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윗의 광야 생활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시험의 나날이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시험이요,유혹의 시험이었습니다(약 1:2, 14).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은총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광야는 사물(事物)과 인간들 A]시에서만 바쁘게 생활하다가 자신을 상실하기 쉬운 다윗이 절대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었습니다 팡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누가 뭐래도 혼들리지 않는 생의 목적과 사명을 찾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장소적 중요성 이상의 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와 신구약 중간 시대, 그리고 신약 시대를 한결같이 꿰뚫는 광야라는 신학적 주제는 멀리 이스라엘의 쐐년 광야 생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광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시험에 빠져 범죄했으므로 인간에게 부정(不淨)함, 질병, 죽음의 위협이 있는 말하자면 마귀가 활동하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광야는 하나님께서 현현하는 계시의 장소요, 자기 백성에게 물과 만나를 공급해주고 불기둥’ '구름기둥’ 으로 인도해주시는 은총의 장소였으며, 비전이 보이는 곳(계 17:3, 행 8:26)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귀가 활동하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도 하는 상반된 개념을 이해하려면 논리적 접근보다 광야에서 얼마나 줄기차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했으며,반면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그들을 용서하고 은총으로 보살펴주셨는가 하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설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의 이중 시민권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과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있는 우리의 발가벗은 실존적 정황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로 갈수록 광야는 특별히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으로 이해되었습니다(호 9:10, 11:1, 12:10, 13:4). 또한 종말론적 구속 사상과 합쳐져서 메시야는 광야에서 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습니다(사 40:3, 렘 31:2, 겔 34:25). 그래서 선지자 엘리야 시대부터 시작하여 광야와 동굴에서 가까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메시야를 고대하던 경건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조금 전에 쿰란 동굴에 공동체를 이루어 살던 엣세네(Essenes)파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었고’ (눅 1:80), 그가 후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회개의 복음을 전하며 메시야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확신도 모두 광야에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2안나스 가야바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그러므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이 광야에서 출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성령의 충만함을입어 팡야에서 사십 일동안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신 후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가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히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기록을쓴 역사가요, 신학자인 누가는 마귀의 시험 전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 4:1)라는 말과,성령의 권능으로’ (눅 4:14)라뉴 말을 강조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은 도서관이나 서재의 사람들이 라기보다 광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38(이런 사람은 세상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8)

‘다윗의 시, 유대 팡이께 있을 때에’ 라는 제목이 붙은 시편 63편을 보면 다윗에게 ‘팡야 는 ‘성소 였습니다. 팡이께서 다윗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았으며,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광야떠나 이방 땅으로 망명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이르렀을 때 , 다윗은 조국 강토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애절한 슬픔을 호소하면서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삼상26:19)

'여호와의 기업’ (출 15:17, 34:9)이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이 사는 땅올 뚯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자신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신앙 고백이 담긴 항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심판에 대한 내적 확신, 현실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원칙대로 살 수 있었던 용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 생의 의미와 사명을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찾는 지혜, 원수까지도 품을 수 있었던 그 놀라운 사랑一 이 모든 내면의 부요함은 그의 척박한 광야 생활에서 얻은 영적 축복이었습니다 사울의 궁전 교육만으로는 도저히 터득할 수 없는 보배로운 영적 축복이었습니다. 광야는 다윗의 성소요,수도원이요, 신학교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감으시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참으로 시끄러운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은 주로 미국의 영향으로 번영의 신화 에 미혹당해 풍성한 물질 문화를 이루었으나, 정신적으로는 더욱 빈곤해져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교통과 통신, TV와 잡지를 비롯한 대중 매체의 발달은 우리로 하여금 교묘하게 기계 소리와 사람 소리만 들으며 살기를 강요합니다. 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들을 기회도, 명상의 여유도 없이 여론에 조작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며 바쁜 것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소유욕에 속아 존재를 상실하는 안타까운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시대일수록 고독한 광야게서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세미한 소라 를 들을 수 있는 자, 골방에서 방해받지 않고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기도할 수 있는자, 곧 제자의 은밀성을 지킬 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비범성을 가지고 확신에 찬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늘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부끄럼 없이 이땅 위에서의 삶을 간증할 수 있도록 진리의 길을 똑바로 걸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4, 6, 18)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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