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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부활」_네홀류도프와 까쮸샤

by 비앤피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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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발표한 후 30년, <안나 까레니나>를 완성한 후 20년이라는 시간적 단절을 깨뜨리고 세상에 내놓은 작품입니다. 긴 침묵의 시간 동안 톨스토이의 세계관은 변했고, 그의 시선은 사회악이 만연한 현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90퍼센트의 국민인 문맹인 상황에서 현실을 방관하는 문학은 그에게 단지 지식인들의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예술 의식의 변화는 1880~1881년의 정신적 전환기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1899년 1월 21일의 일기속에서 그는 <전쟁과 평화>와 <안나 까레니나>를 포함한 자신의 이전 작품들이 '의식 없는 작품들'이었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그에게 예술적 과제란 가면을 쓴 사회악을 과감히 폭로하는 것이었으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상에서 탈고까지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창작된 <부활>은 투철한 사회의식과 예술 정신이 충실히 반영된 톨스토이의 마지막 역작인 셈입니다.

<부활> 창작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친구이자 사회 활동가이며 빼쩨르부르그 법원의 검사였던 꼬니 A. F. Koni가 톨스토이에게 직접 들려준 법정 실화였습니다. 꼬나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낯선 사내가 찾아와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낯선 사내는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했는데, 그가 맡은 사건은 창녀촌에서 돈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로잘린 오니'라는 여인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니라는 여인은 그 낯선 사내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꼬니의 이야기에 강한 인상을 받은 톨스토이는 그 소재를 곧 소설화하기로 마음먹고 작품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의 창작 과정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톨스토이에게 이 소설은 단순히 꼬니의 이야기를 창작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계층의 추악함을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서사적인 작품이 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작품 직필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사와 다른 세계의 체험이 필요했습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쓰게 된 또 다른 계기는 기독교 공산주의 교파였던 두호보르 교인들을 캐나다로 이주시킬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인 예배와 법 준수와 군 복무를 거부하던 도호보르 교인들은 수천 명이 피살되는 등 숱한 정치적 박해를 받아 오다가 마침내 정부로부터 해외 이주를 허가받았떤 겁니다. <부활> 속에서 이교도들의 소송 대리인이었던 네홀류도프처럼 톨스토이는 두호보르 교인들의 캐나다 이주에 발 벗고 나섰고, <부활> 원고료 전액을 기부함으로써 5천 명이 넘는 두호보르 교인들이 러시아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집필 전부터 흥미로운 창작적 배경을 가진 <부활>은 1899년 잡지 <니바>에 연재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톨스토이의 통렬한 사회 비판에 긴장했으며, 거침없는 설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독자들은 매달 <부활>의 연재를 고대했고, 행여 연재가 중단되기라도 하면 애를 태웠습니다. 톨스토이가 병에 걸려서 불가피하게 잡지 31호와 41호의 연재를 쉬었을 때 잡지사에는 독자들의 성화가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사회적 반응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톨스토이는 하루도 쉬지 않고 집필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잡지 연재가 끝나면서 <부활>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즉각 영어, 불어, 독어로 번역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부활>의 구성은 수많은 에피소드와 등장인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꺄쮸샤 마슬로바와 네홀류도프라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을 유기적으로 보여주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인생의 교사이자 현대 사회와 국가 체제의 비판자를 자임하는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서 이 두 주인공을 자신의 정신적, 사상적 대변자로 삼았습니다. 네홀류도프는 철저히 이분화된 계급 사회 속에서 귀족들의 타락상을 폭료하고 까쮸샤는 민중들의 현심을 생생히 전달하면서, 두 주인공은 작가가 부여한 대로 각자의 운명과 현실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주인공의 역할은 소설 속에서 중심적이며 또 절대적입니다.

톨스토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성의 원인을 지배 계층의 사회적 착취에서 찾았으며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지배 계층을 대표하는 네홀류도프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소설 속에서 작가의 시선은 시종일관 네홀류도프의 변화하는 의식과 행위를 따라갑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네홀류도프는 소박하고 공상적인 인물로 묘사되기 시작하여 점차 귀족 계층의 전형적인 방탕아, 그리고 권태에 빠진 지식인 청년으로 이미지를 바꿔 나갑니다. 그러나 까쮸샤의 타락이 네홀류도프의 기만에서 비롯되었듯, 네홀류도프의 본질도 처음부터 악하고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의 순수성과 청춘의 생명력도 왜곡된 사회적 현실 소에서 변질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본연의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변증법적 과정이 아니라 영혼의 충격이 필요했고, 네홀류도프의 정신적인 깨달음은 법정에서 꺄쮸샤를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까쮸샤와의 만남은 네홀류도프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무절제한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지만, 후회와 자기반성의 시간에도 네홀류도프의 내면에서는 진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이기적 자아와 까쮸샤를 타락시킨 가해자로 스스로를 자각하는 이타적 자아가 고통스럽게 충돌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실로 회개하는 첫 단계에 네홀류도프에게는 다른 세계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까쮸샤의 석방을 돕는 동안 교도소에서, 거리에서, 꾸즈민스꼬예와 빠노보 마을에서 민중들과 접촉하게 되고 그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에 눈뜨게 되며 사회 정의가 농민들의 실생활과 얼마나 유리되어 있는지 발견합니다. 민중들의 고통을 확인하면 할수록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대한 네홀류도프의 혐오감은 깊어집니다. 고위 관련, 귀부인, 노장군, 사제, 장관, 법관, 군인, 경찰은 이제 네홀류도프의 눈에 고통받는 민중들의 박해자이며 착쥐자로 비칩니다.

네홀류도프는 귀족적 삶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까쮸샤와 운명을 같이하기 위해 그녀가 가는 고행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는 이미 까쮸샤와의 결혼도, 시베리아 생활도 기꺼이 실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수치심을 잊고 꺄쮸샤는 물론 주변의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지를 거듭 공표합니다. 정신적으로 부활한 네홀류도프에게 남은 과제는 오직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발적으로 정치범과 형사범들의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갑니다. 소설의 끝부분에 이르러 네홀류도프는 영국인 선교사와 함께 시베리아 유형지와 교도소의 실태를 조사합니다. 통계 자료에 의존하는 영국인은 죄수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이해하며 러시아 현실ㄹ의 구언에 한계를 드러내지만, 유형수들과 까쮸샤에 의해 이미 죄수들의 실상을 이해한 네홀류도프는 구원의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지배 계층임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홀로 복음서를 읽으며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강조하며 계급 간의 화해를 요구하는 톨스토이식 교훈의 실천가로 남습니다.

소설 구성의 다른 축에는 까쮸샤 마슬로바라는 민중 출신 여인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녀는 귀족 청년에게 버림 받은 평범한 민중 출신의 처녀였지만 현재는 법정으로 끌려 가는 미결수, 재판을 받는 독살범, 수치심을 모르는 가장 추악한 창녀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 대면에서 네홀류도프의 눈에 비친 까쥬샤의 모습도 이미 영적으로 사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까쮸샤의 본질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있었고 그것은 네홀류도프의 회상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납니다. 청순했던 그녀가 정신적인 불구 상태에 빠지고 영적으로 사망하게 된 계기는 임신한 몸으로 네홀류도프를 만나기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가던 그날 밤의 모욕과 절망, 그리고 8년간 지속된 창녀 생활의 결과 일뿐입니다. 까쮸샤는 비록 영적으로 사망한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구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현실의 희생자이긴 하지만 교활하지 않고 신실하며 천성적으로 착하고 욕심 없는 민중적 특성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꺄쮸샤가 부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적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정신세계를 가진 그녀에게 그 과정은 길고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깨닫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힘겨웠으며 내면에서는 네홀류도프에 대한 애증이 혼재해 있었습니다. 무고하게 수감된 민중들과의 접촉을 통해 왜곡된 현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또 한 장의 가족사진을 통해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도 꺄쮸샤의 부활은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완전한 영적 부활이 일어난 것은 정치범들과의 생활을 통해서였습니다. 의식이 성숙한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러시아 민중의 비극이며, 그녀의 부활은 민중의 부활이었습니다. 네홀류도프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청혼을 거부하고 정치범 시몬손과 운명을 같이할 때 이미 그녀는 네홀류도프의 과거의 여인도, 희생자도 아니며 무고한 민중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깨어난 민중이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보상이 아니라 네홀류도프와의 진정한 화해뿐이었습니다. 각자의 길에서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가는 네홀류도프와 꺄쮸샤는 완전히 부활한 존재들이며, 작가는 이 두 주인공을 통해 민중들이 진정으로 부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70세 고개를 넘기며 쓴 <부활>은 작가의 모든 삶과 사상과 예술적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이 소설에는 법정 소설, 폭로 소설, 피카레스크 소설, 구도 소설, 심리 소설, 사회 소설의 특징이 두루 갖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소설의 전개와 결말에만 익숙한 독자나 비평가라면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꺄쮸샤 마슬로바와 네홀류도프의 사랑은 감상주의 소설처럼 비극적 결말로 매듭짓지도 않으며 멜로드라마처럼 해피 앤딩을 맞지도 않습니다. 또한 판결의 부당성이 밝혀지거나 사랑의 장애가 제거되는 순간 주인공은 명예 회복이나 원상 복구와 같은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으며 정의롭지도 않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작가는 다만 자신이 목격한 대로 작품을 전개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어느유형의 소설보다 현실적이고, 사회적이며, 이념 지향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러시아 리얼리즘이 추구했던 문학적 가치를 최고로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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