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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부활」_흔들리는 사람

by 비앤피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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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1863~1869, 톨스토이의 나이 35~41세)와 <안나 카레니나>(1873~1877, 45~49세)라는 기념비적인 장편 소설을 쓴 톨스토이는 1879년(51세)에 <참회록>을 발표한 후,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예술의 이상을 탐구하는 에세이에 집중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톨스토이의 문학적 재능을 사랑한 독자들 중에는 톨스토이의 생애를 <참회록> 이전과 이후, 즉 예술가로서의 삶과 설교자로서의 삶으로 나누며 후자를 앝나까워하는 이들도 많은 듯합니다.  나보코프는 이런 경향에 대해 "어쩌면 우리는 톨스토이의 발아래 높다란 연단을 치워버리고, 잉크와 종이 더미만 잔뜩 쌓아 둔 어느 외딴 섬, 돌집에 그를 가두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덕적, 교육적인 어떤 것도 그의 주의를 끌지 못하게 하여, 그가 안나의 하얀 목에 드리워진 검은 머리카락에만 집중하도록 말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투르게네프입니다. 그는 1883년에 죽음을 앞두고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내 예술을 포기하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 이제 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동시대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상당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당신에게 간곡히 마지막 청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 문학 창작의 영역으로 돌아오십시오! 당신의 천품은 바로 문학입니다. ..... 사랑하는 벗이여!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여! 내 요청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트르게네프의 말에 마음이 돌아선 걸까요. 아니면 소설의 무용성까지 주장한 톨스토이 자신이 창작에 대한 욕구를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던 걸까요. 1884년 창작을 제개한 톨스토이는 사회와 종교에 대한 수많은 저작을 집필하면서도 <이반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체르 소타나>(1889), <악마>(1889), 희목 <계몽의 열매>(1890), <주인과 하인>(1895), <부활>(1899), <신부 세르기이>(1898), 희곡 <산송장>(1900), <무도회가 끝난 후>(1903), <하지 무라트>(1904), <코르네이 바실리예프>(1905), <교회 안의 노인>(1907), 등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습ㅂ니다.

사실 그가 창작을 하지 않은 기간은 오 년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예술가 톨스토이와 설교자 톨스토이를 나눈 구분이 과장으로 느껴질 만큼 짧은 기간입니다. 아니, <유년 시절>로 데뷔한 24세 이후, 82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어떤 작가들보다 왕성하게 작품을 쏟아 낸 다작의 작가이다. 그럼에도 설교자 톨스토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탓에 <참회록> 이후에도 그가 예술가로서 고뇌하며 부단하게 작품을 집필했다는 사실이 잊히거나 후기작들이 문학의 껍데기를 쓴 설교로 폄하되곤 합니다.

하지만 나보코프와 보르헤스가 단편의 걸작으로 극찬한 <이반일리치의 죽음>과 체호프가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의 걸작으로 꼽는 <부활>은 <참회록>이후의 산물입니다. 나보코프는 톨스토이를 예술가 톨스토이와 설교자 톨스토이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 같은 이분법적 잣대를 비판합니다. 

톨스토이는 인격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한편에서 검은 흙, 흰살결, 희다 못해 파랗게 빛나는 설경, 푸른 정원, 자줏빛 뇌운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인간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허구는 죄악이며 예술은 부도덕하다고 역설하는 인간이 있어 그 둘 사이의 충돌이 특히 말년의 그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 충돌은 결국 한 인간의 내부에서 벌어진 갈등일 뿐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을 통해서건 설교를 통해서건, 톨스토이는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도달하기를 갈망했습니다. ..... 그의 예술이 아무리 섬세하고, 그의 가르침이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그가 장황한 말로 진실을 더듬어 찾았든 어느 날 마법처럼 진실ㄹ이 그의 앞에 나타났든,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그 진실은 톨스토이 자신이었고, 그 자신이 바로 예술이었습니다.

나아가 나보코프는 푸시킨,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 러시아 작가들 대부분이 궁극의 진리와 그 본질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 톨스토이도 그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나보코프의 말은 <부활>을 포함한 톨스토이의 후기작들을 러시아 문학사의 연속성 속에서, 톨스토이라는 인물의 전체성 속에서 조명하지 않으면 제대로 대면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톨스토이는 일생 동안 장편 소설을 세 작품 남겼습니다. 톨스토이가 삼십 대 후반을 바친 <전쟁과 평화>, 사십 대 후반을 바친 <안나 카레니나>, 육십 대 를 꼬박 바친 <부활>입니다. 세 작품을 비교해 보면 인물 묘사, 서술 기법, 시각 등에서 톨스토이의 서명이라 해도 좋을 만큼 고유한 특징이 면면히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각각의 작품은 구성이나 시공간을 다루는 방식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중 어느 작품을 더 선호할지는 독자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다만 작가가 소재로 삼은 현실이 변화하고 작가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쓸지에 대해 자학에 가까울 만큼 치열히 고뇌하는데도 작풍이 한결같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예술가 톨스토이와 설교자 톨스토이를 나누어 어느 한쪽만 받아들이고 인정할 게 아니라 더 나은 인간과 더 뛰어난 창작자가 되기 위해 팔십여 년 동안 불안한 어둠 속을 자기 확신과 자기 부정 사이에서, '감각적 기질과 지나치게 예민한 양심'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한 예술가 톨스토이의 연속적 변화로 시선을 넓혀야 말년의 대표작인 <부활>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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