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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부활」_ 톨스토이에 관해

by 비앤피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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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창작하게 된 계기는 '코니의 일화'고 그 완결을 도운 사건은 두호보르 교도에 대한 박해였습니다. 이 시작과 끝 '사이'에 진정한 집필 동기가 숨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부활>에는 톨스토이의 '말년의 양식', 혹은 '말년성'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말년의 양식'은 철학자 아도르노가 베토벤의 말년 작품들을 비평할 때 사용한 용어입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베트벤의 말년 작품들은 종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며 음악을 의미심장한 무엇에서 모호한, 심지어 자신에게도 모호한 것으로 변형합니다.

사이드는 이런 아도르노의 개념에서 출발해 '예술가들이 경력의 말년에 얻게 되는 독특한 특징이 인ㄴ식과 형식에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품고 말년성을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즉, 무르익은 성숙함과 조화와 화해를 드러낸 셰익스피어 유형과 비타협과 풀리지 않는 모순으로 불안한 긴장과 분노를 간직한 입센 유형으로 나누고는 후자를 보다 관심 있게 탐구합니다. 사이드는 "말년성은 종국에 접어드는 것, 의식이 깨어 있고 기억으로 넘치는 것, 그러면서 현재를 대단히 예민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자발적 망명"이라고, "깨달음과 즐거움 간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둘 모두를 그대로 드러내는 힘"이 그 특징이라고 언급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년성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 작가 중 한 명일 겁니다. 톨스토이는 일찍이 젋은 시절부터 말년성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두 살 때 어머니가 여동생을 출산한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해 죽고,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노상에서 살해됩니다. 서른두 살 때는 큰형 니콜라이가 폐결핵으로 숨집니다. 스물세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포병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에는 크림 전쟁에서 치열한 전투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언제라도 그나 주위 사람을 덮치기 위해 현재 안에 매복하고 있는 위협적인 복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학사에서 톨스토이만큼 집요하게 죽음을 그린 작가도 드뭅니다. 죽음의 시점에서 생을 보았기에 육체와 자연에 대한 묘사가 압도적입니다. 러시아 비평가 메레시콥스키는 톨스토이의 작품에 육체에 대한 숭배가 엿보인다고 언급하며 이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톨스토이 안에서는 결코 하나로 조화될 수 없는 죽음과 생이 격렬히 충돌하며 저마다 맹위를 떨칩니다. 죽음은 생을 질투하고 위협하며, 생은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무지와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곁눈질합니다. 이 때문인지 톨스토이가 그리고 세계에서는 생의 찬란함 사이로 몰이해와 혼돈과 충동과 의혹이 뒤섞인 어두운 심연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모두 미래를 응시하며 굳은 결의를 밝히는 남자 주인공의 내적 독백으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버지조차 흡족해하실 일을 하고 말겠다는 열다섯 살 소년 니콜렌카, 삶의 매 순간에 선의 명백한 의미를 불어넣을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레빈,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일생의 사업이 되었다는 네홀류도프, 그들의 독백은 마침내 진리에 도달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거짓된 조화와 확신의 세계를 떠나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로 가득하고 해결과 화해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미래로 망명을 떠나기 전의 기도와도 같습니다.(제정 러시아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침묵 속에서 기도를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형식에서도 톨스토이는 꾸준히 말년성을 드러냈습니다. 사이드는 물었습니다. "죽음을 의식할 때 인간은 현명해지고 성숙하는가?" 톨스토이는 죽음이 닥치기 전에 빨리 진실을 포착하고 싶다는 조급증과 평생 깨닫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외형적인 조화와 통일성에 안주하지 않고 본질과 진리에 다가서기 위한 모든 가능성을 찾아 형식의 파괴와 모순의 충돌에 온 힘을 쏟은 것처럼 보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들이 어떤 장르적 규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고, 의식적으로 장르의 관습을 뛰어넘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전쟁과 평화>에서 스토리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역사 철학적 서술,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인공인 안나가 죽은 후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의 삶이 여전히 지속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할애한 별도의 장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쓸 무렵과 그것을 탈고하기까지 그의 말년성은 보다 깊고 짙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부활>을 구상하기 6년 전(1883)에 투르게네프가, 8년 전(1881)에 드소토예프스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투르게네프와는 평생 절교와 화해를 되풀이하며 앙숙처럼 지냈지만 소설을 쓸 생각을 하기 전부터 톨스토이는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스케치>에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형지에서 톨스토이가 필명으로 쓴 <유년 시절>을 읽고 크게 감동해 작가에 대해 수소문하고 다녔으며, <작가의 일기>에서는 <안나 카레니나>를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러시아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았고, <죄와 벌>을 대단히 꼼꼼하게 탐독했습니다. 스트라호프라는 공통의 지인이 있었던 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동일한 문학잡지에 같은 시기에 연재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로 만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작품을 좋아했고, 상대의 작가적 역량을 존경한 것처럼 보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임종 소식을 들었을 때, 톨스토이는 깊이 슬퍼했다고 합니다. 동시대에 자신과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트로이카를 이룬 다른 두 거장이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또 <부활>을 쓰는 도중에 역시 러시아 문학의 주요 작가인 곤차로프와 레스코프가 1891년과 1895년에 차레로 숨을 거둡니다. 게다가 그가 아끼던 젊은 작가 체호프가 폐결핵 증상의 악화로 눈에 띄게 쇠약해져 병상에 드러눕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부활>이 출관되고 5 년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자신에게도 죽음은 이제 한층 더 가까워졌습니다. 늘 죽음을 의식했지만, 몸에서 확연히 나타나는 노화의 징후가 그의 귀에 매일같이 '소멸'을 속삭입니다. 그는 1894년의 일기에서 탄식합니다.

노년이 다가온다. 이 말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이가 상하고 주름이 생기고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심지어 모든 게 끝나기도 전에 전부 끔찍해지고 부뢔해진다. 처바른 화장품 분, 땀, 추함이 드러난다. 내가 섬기던 것은 대체 어디에 남아 있는가? 아름다움은 대체 어디에 남아 있는가? 아름다움은 모든 것의 정수이다.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삶도 없다.
19세기가 저물고 러시아 문학의 한 세기를 대표한 러시아 작가들이, 나아가 나 자신이 사라졌거나 사라지려 합니다. 한평생 죽음을 관찰하고 그 의미를 파고들었지만, 죽음에 대해, 죽음 이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죽음에 대한 스스로의 두려움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바깥세상에서는 수많은 민중이 기근으로 아사하고, 법과 제도의 터무니 없는 만행에 살해됩니다. 백작이라는 귀족 신분과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내가 이 모든 참상에 침묵한다면 얼마나 추악하고 비겁한 짓이 될까요. 그러면서 예술과 철학 속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추구하고 성경 속에서 올바른 삶을 모색한다면 얼마나 역겨운 위선일까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주절거리고 유부녀와 장교의 불륜을 미화하는 글이 이 세상에 무슨 선한 영향을 미칠까요. 아름다움이 절대 선일까요. 과연 좋은 글이라는 건 뭘까요. 저 앞에서 죽음이 날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더 깨달아야 하고, 무엇을 더 행해야 할까요.

60대라는 10여 년의 시간 동안 그는 아마 이런 고민으로 청년기보다 더 불안하고 더 혼란한 시간을 버텼을 테고, 작가로서 어쩌면 마지막 장편이 될 소설에 지금껏 해 보지 못한 시도드을 거침없이 펼치면서 스스로 좋은 소설이라고 확신할만한 작품을 창작하려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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