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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부활」_부활의 의미

by 비앤피 2021.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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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은 본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리스도가 되살아난 사건을 기억하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절기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겨우내 얼어붙어 있다가 소생하는 자연의 이미지와 겹칩니다. 그 절기를 봄에 기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부활>의 첫 장은 봄의 도래와 함께 시작합니다. 화자는 해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봄과 그 생명력을 찬미합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의 행복을 위해선 신이 내린 평화의 아름다움 속에서 창녀 카츄샤는 고객을 살인한 죄로 시베리아 징역을 선고받으며, 그보다 십 년 전의 봄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맺은 성관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브처럼 거친 세상으로 던져집니다. 자연의 소생과 번식은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로운데 왜 카츄샤가 상인이나 네홀류도프와 나눈 성행위는 그녀를 자연의 일부로 만들기는커녕 비참한 신세로 몰아넣은 걸까요? 톨스토이는 자연의 생명력은 찬양하면서 인간의 생명력과 번식 행위에 대해서는 험오하는 걸까요? 톨스토이는 인간의 육욕을 자연적인 본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걸까요? 하지만 네홀류도프가 부활절 밤에 카츄샤의 방을 찾아가는 장면은 마치 자연과 인간이 완전히 일체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는 서서 그녀를 보다가 무심결에 자기 심장 소리와 강에서 실려 오는 기묘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 안개 낀 강에서 어떤 노동이 지칠 줄 모르고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언가가 쉭쉭거리고 쩍쩍 갈라지고 허물어지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얇은 얼음조각들이 유리처럼짤랑거렸다.(1권, 140페이지)

안개 낀 훈훈한 밤공기 속에서 강을 뒤덮은 얼음이 깨져 유빙이 부딪치고 물이 소란스럽게 흐르는 소리는 자연이 길고 깊은 잠에서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소리 같고 생명의 분주한 활동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네홀류도프의 심장이 그 소리와 함께 보조를 맞추듯 고동칩니다. 그리고 부활절 밤에 사랑하는 네홀류도프의 욕망에 화답한 카츄샤는 새 생명을 잉태합니다. 

이들의 성교와 임신은 톨스토이가 예찬한 자연의 생명력과 다를까요? 카츄샤가 바들바들 떨며 그의 방을 나서자 네홀류도프는 상념에 잠깁니다.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고, 앞이 안 보일 만큼 자욱한 안개 사이로 이지러진 달이 떠올라 검고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음울하게 비추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나에게 일어난 건 커다란 행복일까, 아니면 커다란 불행일까?' 그는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1권, 143페이지)

톨스토이는 커다란 행복일 수도 있었을 사건이 커다란 불행의 씨앗이 된 이유를 인간이 만든 제도와 관습에서 찾습니다. 화자는 네홀류도프의 타락이 자신을 믿지 않고 타인을 믿게 된 것, 즉 자기 행위에 대한 결정권을 내려놓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며 광기의 에고이즘에 몸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군대 동료들에서 배운 대로 카츄샤의 감정과 육체를 다루었고 그들에게서 들은 대로 돈을 찔러 주었습니다. 자신의 자연적 본성에 충실한 게아니라 사회에서 익힌 가학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답습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십 년을 보낸 후 네홀류도프는 자유롭고 행복하기는 커녕 거미줄 같은 거짓과 위선에 뒤엉켜 스스로 만들어 낸 두려움과 수치와 혐오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의 부활은 캬츄샤를 통해 자기 죄의 결과를 목도하고, 그녀에게 속죄하려는 순간 "그 안에 거하던 하느님이 그의 의식 속에서 눈을 뜸"(1권, 226페이지)으로써 이루어지고, 다시 그의 내면에 자유와 활기와 삶의 기쁨과 선의 힘이 차오릅니다.

<부활>은 네홀류도프와 카츄샤의 타락뿐 아니라 사회의 광범위하고 고질적인 타락으로 시선을 넓힙니다. 네홀류도프는 '사랑'을 구하기 위해 국가 기관들을 방문하면서 점차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타락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여념이 없고, 잘못된 판결 앞에서 미안해하지 않는 재판장과 판사와 검사보, 사건의 진실이 아닌 절차의 정당성 여부만을 무심히 따지는 원로원 의원들, 죄수들의 올바른 지적을 체제에 대한 도발로 받아들여 끔찍한 독방과 구타로 보복하는 간수들, 고함을 질러도 말이 전달되지 않는 아수라장 같은 면회를 선심 쓰듯 허락하는 감옥의 간부들, 무더운 날에 장시간 도보 이동을 시켜 허약한 죄수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죄수들을 똥물 위에서 자도록 방치하는 호송병들....

이들은 특별히 가학적이거나 흉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상관과 국가에 맡겨 버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양심에 귀를 기울이거나 스스로 사유하거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며 예를 든 아이히만 부류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가장 소박한 연민의 감정조차 스며들지 않을 만큼 둔감했던 것은 단지 그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인간애가 스며들지 않았던 거지. 포장된 땅에 비가 스며들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2권 256페이지)

네홀류도프의 개인적 타락이 그의 안에서 눈뜬 하느님을 통해 정화된다면 사회의 공적인 범죄는 체제를 떠받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안에서 하느님이 되살아날 때 중단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의지에 따라 직무만 성실히 수행하는 인간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이 교회와 국가 기관을 채운다면 나라 전첼르 뒤덮는 두꺼운 얼음이 깨지고 다시 물이 흐를 수 있습니다. 적어도 황제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1억 명이상이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고백하는 러시아라면 논리상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고, 이런 종교적 회심이야말로 그 어떤 혁명 이론보다 간단한 해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러시아 대지를 뒤덮은 포장은 너무도 두껍고 견고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네홀류도프의 입을 통해 부자연스러울 만치 길게 나열된 <마태복음서>의 산상 수훈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평온함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과 분노가 느껴집니다. 지상에 '하느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고행하고 순교하는 성자가 아니라 흔들리는 인간으로도 충분할 것이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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